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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빤스런 사건, 윤일병 사건, 그리고 임레이너 사건까지 관심가지고 읽어준 게이들에게 너무 고마워.


 군대 관련 사건사고 내용을 알려주려고 쓰기 시작한 글인데 많은 게이들이 '필력좋다, 꿀잼이다' 이렇게 말해줘서 개인적으로 너무 뿌듯하다.


 군대관련 글을 그만 쓰려고했는데 계속 써달라고 하는 게이들이 많고, 그리고 내 글을 재밌게 읽어주는 게이들도 많아서 진짜 마지막으로 써보려고 해.


 그 보답차원에서 전에 세글은 솔직히 설명하기 귀찮아서 대충 쓴 부분도 있었는데 이 글만큼은 성심을 다해서 써보도록 할게.


 그리고 계속 모바일로 글을 쓰고 있어서 짤방 크기라든가 문단 간격 등 이상한 부분이 많은데 이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해.






    * 이 글의 내용은 '국방부의 주장', '유가족 및 일부단체의 주장', 그리고 '나의 추측'으로 구성되어있다.

  또한 이 글은 누군가를 비방하려는 목적이 아니며, 또한 사건의 정확한 진실 여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의 선택에 맡기겠다.



 이번 김일병사건 글은 다른 사건과는 성격이 다를거야. 사건 자체에 미스테리가 많은 만큼 '사건의 과정'이 아닌 '사건의 의문점'을 중심으로 글을 풀어가보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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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에 있는 28보병사단 530GP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발생해. 그 범인은 다름아닌 김일병, 김일병은 '병영부조리'로 인해서 우발적으로 수류탄을 터뜨리고 총기를 난사했다고 해. 


 



  < 사건의 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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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에 들어서면서 병영부조리가 많이 줄어들었으나, GP는 독립중대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구타 및 가혹행위가 존재했어.


 김일병은 그런 GP에 전입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다가 결국 다른 GP로 전출을 가게 되었지. 그 곳이 바로 사건이 발생한 '530GP'야.


 하지만 530GP에서도 김일병은 심한 가혹행위를 받았고, 결국 분노를 이기지 못해서 2005년 6월 19일, 수류탄과 K1 소총을 이용해서 전우들을 학살하게 된거야.


 새벽 2시 20분, 초소경계를 서고 있던 김일병은 근무가 끝날 시간이 되자, 근무자를 깨우러 간다며 막사 안으로 들어가. 하지만 후임근무자가 자고 있는 생활관으로 가지 않고 화장실로 들어가지.


 화장실에 들어간 김일병은 지완통 잠금장치를 풀고 수류탄을 꺼내. 그리고 총과 수류탄을 들고 내무반으로 진입하지.


 우선 김일병은 벽 쪽 침상에 수류탄을 던지고 폭발하기도 전에 복도로 빠져나와. 그리고 GP장 등이 있던 체력단련장과 취사장으로 가서 화기로 2명을 살해하지. 2명을 죽인 김일병은 다시 내무반으로 돌아가서 무차별 난사를 해.


 결국 이 사건으로 총 8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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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의 의문점 >

  

 위에 내용이 당시 국방부가 진술했던 내용이야. 그런데 당시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이의 제기를 하게 돼. 그 이유는 국방부가 진술하는 내용이 정황상 의문점을 갖는 것이 너무 많다는거야. 또, 당시 사건의 목격자나 김일병이 범인이라는 직접적 증거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상할만 하지.


 그 의문점들에 번호를 매겨 하나씩 순서대로 말해줄게.



 [1] 김일병이 진범이 맞는가



  (1) 김일병은 가혹행위를 당한게 맞는가?


  '김일병이 가혹행위를 받았다', 이것은 범행의 동기가 되기때문에 아주 중요한 내용이야. 그런데 '소대원의 진술서'와 '김일병의 수양록'을 한번 살펴보자.



    * 소대원의 진술서


  " 사병 상호간에는 존중과 경어를 사용하였다. 휴가시 계급 관념을 두지 않고 서로 반말을 사용했다. 휴가시에는 함께 놀기도 했다. 휴가를 마치고 복귀시는 위계질서, 선후임병에 맞는 호칭을 사용했다. 김일병도 휴가지에서 상병급에게 반말을 하기도 했다. 김일병과 소대원들의 분위기는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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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병의 수양록(일부 발췌)


  - 2005년 5월 20일


 크헉 공포가 밀려왔다. 후반야 도.정을 하루도 안빼고 나가다니 전부 5시간 도정이다. -_-;; 이제 나도 후반야인데 어메~토해토해~ ㅠㅠ 편지도 쓰고 운동도 하면서 다음휴가때는 이쁘게 몸만들어 나가야징



  - 2005년 5월 27일


   ㅡㅡ. 합지검이 안들어 온다는 통보~ 별루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군단장도 안들어오고 다행이구나~ 이제 3일만 지나면 나도 일병이로세



  -  2005년 6월 7일 


 괜히 은근슬쩍 후임한테 욕도하고 못한다고 지랄했다. 개념없는 석민이~ 킥킥 나도 한때 그랬지~ 석민이도 쫌만지나면 나처럼 개념이 잡히겠지. 그때까지는 욕좀 먹겠지만....



  - 2005년 6월 10일(사건 9일전, 마지막 수양록내용)


 지금은 비번잡고 쓰는 수양록이 지루지루하다. 부GP장을 닦고 보니 40분이나 걸렸다. 어찌나 녹이 슬었는지... 부식도 많이 올라온 금요일 빵만6개다. 크크 좋다! 요즘 관물대가 털리고있다. 짜증..



 

  소대원의 진술을 보면 서로 존중하고, 휴가때는 반말을 할정도로 친했던 거 같아. 그리고 마지막에는 소대원들과 친했다고 직접 증언까지 하지.


  만약 서로가 친했다면, 범행 동기가 '가혹행위' 였다는 점이 어불성설이 되버리는거 아니겠어?


  그래. 이 진술을 한 소대원이 '가혹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피하기 위해서 거짓 증언을 했다고 치자. 그러면 이제 김일병의 수양록을 보도록 할까.


  '빤스런 사건' 등 전 시리즈에서 '총기난사 범인들'이 사건 전에 어떤 글들을 남겼는지 기억나? '괴롭다', '죽이고싶다', '미안하다' 이런 글이였어.


 

  그런데 김일병의 수양록에는 각종 이모티콘이 들어가는 등의 유쾌한 분위기가 있어. 또 일병이 되었다는 만족감도 표현하고 있고, 전체적으로 보면 소대원들과 상당히 친해보이지 않아? 나는 이게 너무 평범한 사람의 글같아.


 이게 총기난사를 일으킨 범인의 한달 전 수양록이라는 점이 나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2) 김일병의 자백이 사실이 맞는건가?


 참고로 김일병은 이러한 범죄사실들에 순순히 인정을 했어. 그런데 범죄 후 부모님과의 면회에서는 조금 이상한 행동을 하지.


 부모님이 "진짜 니가 했니?" 라고 물으면 "했다"고 인정을 하는데, "왜그랬니?"라고 하면 화를 내며 "알거 없잖아요."같은 반응을 보여준다는 거야.



 만약 김일병이 진범이 아니라면 왜그랬냐는 부모님의 질문에는 차마 죄송스러워서 말을 못했던거 아닐까?

 다른 병영사고같은 경우에는 부모님이 면회가 오면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거나 '애들이 너무 못살게 굴었다.'고 말하거든.


 뭐, 이건 솔직히 말하면 부모님께 말하기 부끄러워서 그럴수도 있는거고. 내 추측일 뿐이야.



 또, 김일병의 자백이 사실인지 알아보기위해 김일병에게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했어.


 거짓말 팀지기의 답은 "판단 불가".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수가 없다는거야. 게다가 김일병이 사건 후 검사관의 소관이 조금 이상해.


 니가 총과 수류탄으로 몇명을 죽여놓고 검사관에게 조사를 받는다고 생각해봐.


 보통사람같으면 '좆됐다', '무섭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어? 표정도 굳고 어두울거야. 그런데 이때 김일병은 너무나 차분했다는거야.


 심지어 밖에있는 계호병들과 웃으며 농담따먹기를 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게 미친놈이 아니면 가능한 상황이냐? 뭐 총기난사범이라면 미친놈이 맞긴 하지...


 그리고 검사관에 따르면 진술들도 마치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타인이 한 것'을 말하듯이 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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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병 사진)


 추가로 김일병은 군복무기간이 끝나 민간교도소로 이감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군교도소에 갇혀있지.


 또, 김일병과의 면회도 일절 거부하고 있어. 딱히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지. 심지어 김일병의 CCTV영상까지 보여주길 거부하고 있어.


 김일병이 지금 살아있기는 한건지, 우리나라에 있기는 한건지 조금 의심이 가는 부분이야.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김일병이 한 말. 범죄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말해.


 " 재판관님. 왜 직접적 증거도 목격자도 없는데 저라고 확신하시죠? "


 뭐. 그런데 사실 이것도 막상 감방을 갈려니 범죄를 회피하고 싶어서 한 말일 수도 있으니 빼도록 하자.





 (3) 김일병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다


 김일병이 총과 수류탄을 이용하여 범죄를 일으켰는데, '범행에 사용한 다른 병사의 총'과, '수류탄 안전핀', '지완통' 등에 김일병의 지문이 없어.


 김일병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거야.


 참고로, 김일병은 이때 장갑이나 도구들을 이용하지 않았어. 또, 애초에 범죄사실을 숨길생각도 없는데 이용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겠지.


 김일병 손에 화약 잔류물이 있었는데 이게 증거가 될수 있지는 않을까?


 이건 아직 나오지 않은 내용이라 설명하기 그런데, 김일병은 사격을 할 이유가 있었어. 뒤에 이야기가 나와.



 아무튼 확실한 것은 김일병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없다는거야. '김일병의 자백'은 진실의 유무를 판단하기에 조금 애매하고.


 



 [2] 시신과 사건현장에 이상한 점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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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진게 맞는가


 김일병이 제일 먼저 한 것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진 것이라고 했어.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의문점들이 있어.


 먼저, 수류탄 사고가 난 현장사진을 본 적 있어? 고어물이라 여기에 올리지는 않겠는데 그냥 사지가 찢겨있어. 그게 누구인지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수류탄을 정통으로 맞은 박상병은 폭발로인해 반대쪽 침상에 있을 정도였는데 화상정도만 입었을 뿐이야.


 게다가 박상병은 날라갔는데 그 옆에 자고있던 조상병은 파편도 하나 안박히고 오히려 좀 떨어져있는 병사들만 파편상을 입었지.


 그런데 이것은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하는게 박상병이 수류탄을 배로 뒤덮었으면 수류탄 화력이 반 이상으로 절감한다고 해.


 또 수류탄은 살상방향이 하늘을 향한 90도이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던 조상병이 수류탄을 안맞은 것도 이해가 가.



 그런데 부상자와 시신들에 박혀있던 수류탄 파편모양이 조금 이상해. 바로 수류탄 파편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의 모양이 '사다리꼴'이라는 점이야.


 당시 530GP에 있던 수류탄은 'K413 경량형 세열 수류탄'으로 파편이 쇠구슬 모양이거든.


 이것은 당시 언론매체 보도내용이나 당시 한민구 대장이 그렇다고 보고했으며, '생존자'들도 쇠구슬이라고 교육을 받았다고 해.


 그렇기 때문에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의문점을 품어왔지. '북한군이 쏜 RPG7 이다'등의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사다리꼴모양의 수류탄이 있다'며 반론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난 솔직히 이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도 의견이 분분하니까. 난 밀덕이 아니야~





 (2) K1소총에 맞은 상처가 이상하다.


 유가족 측의 증언에 따르면 '군 수사당국이 발표한 내용'과 '자신들이 현장에서 파악한 단서'가 맞지 않아. 


 김일병이 발사했던 위치와, 상처의 모양, 총알의 파편과 탄심, 그리고 연발 총탄흔의 존재 여부가 국방부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는거지.


 상처들이 총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사입구와 사출구가 맞지 않는 등의 문제점들이 있었어.


  예를 두가지만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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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시신의 손목에 생긴 총상이야. 사입구가 손목이고 사출구 역시 손목이지, 이게 좀 이상하지 않아?


 K1은 직사화기인데 총알이 굴절되서 빠져나오다니? 또 아래 사진은 손목을 관통하여 목이 관통당한 사진인데 5.56mm에 맞은 것 치고는 너무 크지않아?


 그런데 수사당국은 그럴 수 있다고 해. '김일병을 제압하다가 손목에 총을 맞고 그 총알이 목으로까지 간거지.


 그리고 회전하면서 목을 찢어버리며 관통했기 때문에 K1으로도 저런 상처를 낼수 있다고 말해.



 또 옆구리를 맞아 종아리를 통과한 총상도 있어. 즉, 사입구가 옆구리이고 사출구가 종아리라는거지.


 역시 K1은 직사화기인데 맞은 곳은 옆구리이고, 그 총알이 휘어서 종아리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많은 뼈를 5.56mm탄알이 다 뚫고 통과했다?


 이거 역시 수사당국에서는 '총알이 뼈를 맞으면 굴절을 하게 되고 충분히 종아리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주장해.


 이또한, 내가 뭐라 판단하고 결론내리기에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할게.


 


 (3) 내무반 상태가 너무 깨끗하다


 수류탄이 터지고, 난사를 당했던 생활관 치고는 너무 깨끗해.


 수류탄이 터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사람들이 다 터지고, 폭발때문에 주변 물체란 물체는 다 날라가버리잖아.


 그런데 김일병이 수류탄을 던졌다던 내무반은 너무 깨끗해. 관물대에 피도 묻어있지 않고, 심지어는 빨래를 널어놓은 건조대도 그대로 있을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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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것들이 국방부가 조작한 사건이라면, 왜 조작했을까?


  (1) 북한군이 공격을 했다.


  6월 17일 북한병사 하나가 월남을 해서 '진돗개 II'가 발령돼. 그리고 바로 다음날 즉, 사건 발생 전날 밤에 이 부근에 차단작전을 실시되지. 처음에는 국방부가 부인을 했지만, 유가족 측에서 근무일지를 보여달라고 하자 사실 있었다고 말을 바꾸지.


 하지만, 바로 옆에있던 531GP와 520GP만 차단작전을 수행했을 뿐이지 530GP는 차단작전에서 제외됐다는거야.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조금 웃기긴 하지. 북한군이 다시 올라가는 것을 막기위해 차단작전을 하는데 가운데에 있는 530GP만 쏙 빼놓고 한다는게 좀 이상하잖아.


 그래서 유가족 측은 530GP 역시 차단작전을 수행했으며, 희생자들은 "'작전 수행 중'에 북한군에게 전사했다."고 주장하는 거야.


 한마디로 김일병을 포함한 소대원들은 작전 수행중에 북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거지. 그렇다면 김일병 손에 묻어있던 '화약 잔류물' 역시 이해가 가는 부분이 되어 버리지. '총기사고에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는 총'에 지문이 없는 것은 그 총이 본인의 총이 아니니까 그런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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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렇다면 왜 이런 사실들을 숨긴 것일까?


 (1)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방부에서는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렇게 할 이유가 없는데 그랬다고 주장한다면 그게 좀 이상하잖아.


 그런데 이게 국방부가 그랬을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점이 있어.


  사건이 발생한 날은 '2005년 6월 19일', 그리고 2년 후에 있을 2007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이 북한에 방문해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데 북한군에게 공격을 당해서 국군이 전사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북한군에 의해 우리나라 군인이 죽었다면 국민들의 정서는 당연히 북한에 적개심을 둘 것이고 그렇다면 남북정상회담이 어려워 질수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북괴군에게 당한 전사자들의 시신을 다시 막사 안으로 끌고 와서. 사건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시신에 추가 2차격발까지 하고. 이것을 '김일병'이 일으킨 총기난사사건으로 꾸몄다면.


 '노무현'은 세계 역사상 가장 쓰레기같은 짓으로, 우리역사에는 정말이나 창피한 짓으로 기록될만한 일을 한거지. 이 내용이 병신같은 음모론이길 진정으로 바라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노무현은 부관참시를 해도 천번은 더해야하고, 봉하마을이든 뭐든 다 초박살을 내버려야겠지. 당연히 문재인 등의 친노세력도 정계에서 바이바이 해야되고,


 그렇기 때문에 노빠들은 이 530GP사건에 대해서 금기시하는거고 발악을 하며 반박을 하고 있는거야.




 (3) 530GP가 차단작전에 참여한 증거가 있는가?


 결과부터 말하면 없어. 왜냐하면 김일병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듯이 이거 역시 물증도 증인도 없거든. 하지만 의심갈만한 내용들은 많아.


 첫번째, 증거가 될만한 기록들이 있는가. 


 상황일지에 기록을 하잖아, 그런데 530GP 상황일지에 당시 기록이 없어. 520GP와 531GP는 차단적전을 시행했다는 기록이 되어있는 반면 530GP는 당일 아침의 기록만 살짝 되어있을 뿐 그 이후에는 하나도 기록되어있지 않아.


 조금 의심스럽긴 하나 생존자 말로는 관례상 기록은 대충 적어놓고, 나중에 상황일지에 예쁘게 옮겨 적는다고 하니 이부분에 대해서는 더이상 뭐라고 반박할 수는 없어.




 두번째, 증인이 있는가.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있었던 생존자가 있지 않은가. 또, 530GP에서 차단작전이 실행되었다면 연대 상황실에서 이것을 기록한 상황병이 있지 않은가.


 먼저 당시 연대 상황실에서 근무했던 상황병은 '기억안난다', '530GP는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참여했다면 내가 알고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해.


 또 생존자들은 하나같이 김일병이 총기난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현재 증인은 아에 없는 셈이야.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어.


 만약에 김일병이 가혹행위를 당해 분노를 못이겨서 총질을 한거라면 말이야. 그 가혹행위를 한 당사자들을 어떻게 되야할 것 같아?


 '임레이너 사건'에서도 그랬듯이 철저하게 조사해서 징계를 내려야 하는게 맞잖아.


 그런데 가혹행위를 한 사람을 포함한 생존자들은 '조기전역'을 한 데다가 '국가유공자'까지 돼.


또, '윤일병 사건'에서 그랬듯이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해당 부대의 지휘관들은 모두 징계를 받아야 되잖아.


 그런데 당시 중대장, 사단장 등은 모두 징계를 받지 않았고 심지어 이후에는 승승장구 승진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지. 음.


 


  # 그리고 처음에는 유가족들에게 부대원들이 작전에 참여했다고 진술한 생존자가 2명 있었어.


 그들은 '진실을 밝히고 싶냐'는 말에 '그렇다'고 대답을 했고, '병원에 있는동안 헌병대가 입조심을 하라고 했다'는 등의 구체적인 말도 언급했어.


 이 내용들은 유가족들이 모두 녹취파일로 가지고 있어.


 그리고 2년이 지난 2007년, 뉴스추적의 취재진은 이들에게 취재를 요구해. 처음에는 선뜻 취재에 응해주었어. 그런데 취재진이 집앞까지 찾아가자 갑자기 취재를 거부해버리지.


 그리고 며칠뒤, 취재진은 국방부 관계자들과 함께 이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진술이 바뀌어있었어.


  " 유가족들이 귀찮게해서 그냥 그렇다고 했다. "


 그런데 이렇게 진술을 바꾼 이들의 국가유공자 등급이 갑자기 '7급'에서 '6급'으로 상향조정되었어. (오잉?)


   * 한달에 받는 돈은 7급이 30만원, 6급이 120만원이다.


  여기에 내 의견을 따로 적지는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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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밖의 의문점


  (1) 전투복이 사라졌다.


  보통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희생자들의 물건은 유가족들에게 돌려주잖아. 정서상 그게 맞기도 하고.


 그런데 국방부는 전투복을 다 태워버렸다며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해. 이유는 "전투복에 피가 묻어서 군법상 태워야만 했다."


 얼마나 피가 많이 묻어있었냐면 이 전투복들을 태운 소각병이 '피가 너무많이 묻어 이들의 영혼이 나를 괴롭힐것같았다'고 말할 정도로 많이 묻어있었어.


 그런데 내무반은 엄청 깨끗하지 않았어?, 병사들은 자고있었고 활동복을 입고있었을텐데 그러면 전투복은 관물대에 걸려있었을 거 아니야?


 관물대 등 기타 다른 곳은 전부 깨끗한데 전투복만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유가족은 이것에 대해 이렇게 주장해.


 "부대원들이 작전을 나갔고, 적들과 싸우다 피를 흘리며 전사했다. 그리고 그것을 숨기기위해 국방부가 모두 불태웠다."




 (2) 화기들이 사라졌다.


 당시 530GP의 총은 총 42정이였어. 그런데 사고 이후, K-3(공용화기)를 포함한 22정이 사라진거야.


 이 많은 것들이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을까. 특히 K-3는 작전이 있지 않으면 화기함에서 빠질 일도 없거든. 나도 궁금하긴 하네.


 유가족들은 이렇게 주장해. "부대원들이 총을 들고 작전에 투입했고, 총과 방독면에 피가 묻자 이것을 감추기위해 폐기처리했다."



 그리고 어느날, 익명의 한 네티즌이 글을 남겨. "사고 후에 폐기한다고 그곳에서 가지고 내려온 총과 방독면은 피로 무를어 있었고..."


 이 글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라 진짜인가 싶은데 익명은 익명일뿐. 익명의 말따위는 사뿐히 밟고 지나가자.



 (3) 부상병 후송이 왜이렇게 늦었는가?


 사고가 터지고 총에 맞아 고통스러워하는 병사가 하나 있었어. 하지만 무려 6시간동안 후송을 하지 않았고 결국 사망하게 되지.


 왜이렇게 부상병의 후송이 늦어지게 된걸까, 이에 국방부는 대답해.


 " DMZ 출입규정을 준수하기위해 7통문(DMZ출입문)을 4시간 후에 열수밖에 없었다. "


 7통문을 열기위해서는 총 2개의 열쇠가 필요해. 하나는 상황실에 걸려있고, 또하나는 GP장의 전투복에 있었어.


 상황실에 있는 열쇠야 그냥 가져오면 되는거고, GP장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죽었으니 방에가서 꺼내오면 그만인건데 왜이렇게 늦었을까.


 유가족들은 이것을 사건현장을 조작하기 위해 늦어졌다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늦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이미 현장은 카오스상태였고 GP장이 죽어 통솔할 인원도 부족한데 부대가 제대로 돌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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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밖에 처음 상황전파에서는 '적이 7발을 발사했다'라고 기록되있는 점 등 사건이 의문점들은 수도 없이 많아.


 하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것같으니 더이상 적지는 않을게.




   < 결론 >


 이 글을 정리하자면 '노무현이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은 음모론이야.


 물증도, 증인도 없는데 이게 음모가 아니면 무엇이겠어?


 하지만 냄새가 나는 부분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야. 그래서 최종판단은 이 글을 읽는 게이들에게 맡길거야.


 나의 판단은 이거야. "노무현이 개새끼이다."


 이것이 조작된 사건이라면 노무현은 천인공노할 개새끼인거고,


 조작된 것이 아니더라도 미흡한 수사과정으로 인해 의문점을 남겨 유가족을 더욱 슬프게했으니 국방부와 그 수장인 노무현 역시 개새끼인거고.


 

 이 사건으로 인해 인터넷은 조작인지 아닌지로 한동안 시끄러웠고


 군대 역시 '구타 및 가혹행위 척결'을 하느라 바빴지.


 

 글을 쓰다보니 '선진병영'에 일조한 '김일병사건', '빤스런사건', '임레이너사건', '윤일병사건'까지 4개 모두 써버렸네.


 그렇다는 얘기는 더이상 이것에 대해 쓸 소재가 없다는 거겠지.


 그동안 내 글을 읽어준 게이들아, 너무 고맙고 행복한 불금이 되길 바란다.





   * 조작인지 아닌지 관계없이 김일병 사건에 희생된 GP장 박중위 등 8명에게 진심어린 애도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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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군 사건사고 관련 일베 > 



 해병대 전설의 '빤스런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 : http://www.ilbe.com/7082707199


 육군 전설의 '윤일병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 : http://www.ilbe.com/7086275787


 육군 전설의 '임레이너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 : http://www.ilbe.com/70888487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