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년 전 당시의 끔찍한 형벌
400년 전 조선시대로 가보자.
때는 1613년 의금부에서 한 문관이 끌려와 취조를 받고 있다.

" 국문이 시작되면 먼저 범인은 곤장을 쳐서
반죽음을 만든 다음 주리를 트는 것으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그 다음에는 바닥에 날카로운 사기조각을 깔고 그 위에 무릎을
꿇게 한 다음 다시 그 위에 판자를 깔아 형줄이 올라가서
사정없이 흔들어대는 압술형.

"처형 방식도 그냥은 안 죽인다.
수레 두 대에 양 다리를 묶고, 잡아 당겨
몸을 두 토막으로 찢는 환형은 기본이고

죽은 다음에는 머리, 팔, 다리등
몸을 다섯토막으로 찢어
소금에 절인 다음 각 처로 돌리게 된다."
이 것은 영창대군을 역모로 엮기 위해
조작한 사건의 서두 부분이다.
실록에서는 놀랍게도 마치 드라마처럼 이런
내용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최대의 옥사 사건으로 기억되는
영창대군 역모 사건은,
사실 광해군의 계획적인 모략이었다.

추국 과정에서 수백명이 고문을 당했고 그중 수십명은
대궐 마당에서 고문 도중 죽었다.
지금의 덕수궁에서의 일이었다.
격국 많은 사람들이 대명률의조문에 따라 처형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유배를 가거나 삭탈 관직되고 추방되었다.

"모반을 꾀하는 자는 주범과 종범을 가리지 않고 모두 능지처사 시킨다.
범인의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의 경우 나이 16세 이상은 모두 교수형에
처하고 15세 이하 아들 및 어미와 딸, 처첩, 범인의 친척들은 모두 종으로
삼는다.
또 재산은 모두 관청에 몰수 한다."
한마디로 대역죄인으로 몰리면, 나 하나만 다치고 끝나는게 아니었다.
조선시대 '중보문헌비고'라는 책을 보면 2083개의 범죄 행위 처리 기록이
나오는데...

모두가 역모죄와 패륜 범죄이다.
참고로 조선시대에서 말하는 패륜 범죄란 성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신분질서를 망각한 범죄를 뜻한다.
크게 사레를 들면 이렇다.
1.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
2.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경우
3. 노비가 상전을 살해하는 경우
이 때는 모두 능지처사로 사형을 내렸다는 얘기다.
참고로 조선시대능지처사는 모두 거열형으로 이뤄졌다.
중국 고대의 형법 : 조선시대에도 이어지다.
고대 중국에는 오형이라 하여 다음과 같은 5가지 형벌이 있었다.
목형 : 도둑질 한 자 → 먹으로신체에 죄명을 문신
의형 : 음식을 훔친 자 → 코를 벰
월형 : 도망간 자 → 발뒤꿈치를 잘라냄
궁형 : 성범죄 → 남성의 성기를 잘라냄
대벽 : 사형
하은주 시절부터 전례되어 온 옛 중국의 전통적인 형벌이라고 하는데,
항상 철저히 지켜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한나라 때 사마천은 흉노족에게 항복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궁형을 당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도둑질한 자에게 가하는 형벌로 얼굴이나 팔뚝에 '절도', 강도 '등의
글자를 한땀 한땀 새긴 뒤 먹물로 넣어 문신을 하는 것이다.
'경을 칠 놈'이라는 욕은 바로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절도 처범은 오른쪽 팔뚝에다가 '절도' 를 새기고 재범은 왼쪽 팔뚝에다가
새기며 삼범은 교수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걸리면 다시 그 위에 글자 수를 더해 문신을 새겼다.
또 문신한 뒤에 바로 풀어주면 먹물을 물로 씻어내거나
입으로 빨아내어 문신한 부위를 천으로 싸매고 묶은 다음에
사흘 뒤에 풀어주기도 하였다.
이런 묵형은 애초에 수치심을 불러일으켜 범죄를 예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세종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원래 공금횡령을 하다 걸리면 관리들은 묵형을 받게 되어있는데
당시 황보신이라는 문신이 거액의 공금횡령으로 묵형을 받을 처지에 몰리게 됐다.
이런 관념 때문에 그런듯 싶다.
다만 월형은 행해져서, 도망노비의 경우 발 뒤꿈치
아킬레스건을 끊는 '단근병'이 시행되기도 했다.

중극 수당 때의 형법 : 조선시대에도 이어지다.
중국에서는 수당 때에 이르러 전통의 오형이 너무 끔찍하다고하여
신체를 훼손하지 않고 매를 치거나, 노동을 시키거나, 유배를 보내는'
식의 인권 지향적? 인 형법이생겨나게 된다.

조선에서는 이 새로운 오형제도를 도입하였다.


교수형과 참수형

흔히 "살인한 자는 목숨으로 갚는다." 하엿던 것
때문에 살인자에게는 기본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교형 : 목을 매어 죽이는 것
참형 : 목을 베어 죽이는 것
능지처사 : 죄인의 살점을 조금씩 잘라, 고통을 최대한 느끼게 하면서 죽이는 것
그 중에 교수형과 참수형은 대개 도성 밖에서 행하는데.
조선시대 참수형장으로는 지하철 4호선 종점, 당고개가 유명했다.

사형집행 과정
사형수는 대개 '함거'라는 소달구지에 실려 도성 밖 형장으로 끌려갔다.
사극에서 보면 자꾸 이거 타고 유배가는데...
절대 아님 유배는 보통 말을 타고 갔다.
그런데 이런 함거는 나라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가하면 배다리 역시 전부 민가의 것을 가지고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런 함거를 타고 형장에 도착하면 죄인은 뒷짐 결박을 당한 뒤
사방으로 조리돌림을 당했다.
조리돌림이란 이런 것이다.

그리고 참형의 경우, 사람들이 몰리면 집행이 이뤄지는데...
먼저 죄인을 엎드려 놓고서는 턱 밑에 나무토막을 괸다.

때로는 상투에 줄을 메어놓고 목을 베었는데
이렇게 하면 목이 고정되어 자르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참형 광경은 굉장히 끔찍했다고 한다.
19세기 말 영국의 여행가 새비지 랜도는 우연히 사형수 행렬을
'
따라가다 광화문 밖에서 참형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효수 : 경각심의 극대화
잘혀진 머리는 대개 형장에 나뒹굴도록 내버려두기도 하였지만
대역 죄인의 목은 '효수'를 했다.
효수란 머리를 장대에 꽂아 걸어두는 것이다.
그런데 효수에서 효란 올빼미 효자이다.
즉 효수란 뜻을 풀어보면, '올빼미 머리'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죄인의 머리를 장대에 꽂아 세워두거나, 아니면
나무 삼각대에 걸어 매달아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잘라낸 팔다리는 정작 엉뚱한 일에 자주 쓰였다.
거렁뱅이들이 토막난 팔다리를 줄에 매어 끌고 다니면서
길가는 사람을 붙들고 돈을 뜯어내기도 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동냥을 하러 다녔던 것이다.

삼각대가 무너져서 먼지투성이의 길바닥에 뒹글고 있는 머리를 개들이 물어뜯고
어린 아이들은 그 주위에서 아무렇지도 않은듯 자기들끼리 뛰어 놀고...
심지어 시체 옆에 떨여저 있던 고장난 회중시계 부속을 뜯어내어
입에 쑤셔넣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일본의 경우는 1764년 김인겸의 일동장유기를 보면
강가에서 주위에 울타리를 쳐놓고 배어낸 머리를 제단 위에
사흘 동안 올려놓았다 한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반란을 일으킨 역적을 처단하면 예의 머리를 왕에게 올리는
의식(헌괵례)를 거행했다.
영화에서도 장수가 왕에게 적장의 수급을 하사하는데,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것이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평정되었을 때에 반란군 일당의 머리가 한양으로 올려지는데,
이때 영조가 친히 남대문 문루 위에서 머리를 받는 의식을 거행하게 된다.

끔직함의 초고봉, 능지처사
원래 능지처사는 원나라 때부터 시작된 형벌로서, 교형이나 참형보다 더 잔혹한 사형이다.
예컨대 부녀자가 정부와 공모하여 남편을 살해한 경우에

때문에 산채로 온몸에 회를 뜨면서 천천히 죽이는게 일반적이다.
중국의 예를 보면 죄질에 따라 칼질 횟수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다만 중국과 같은 방식의 능지처사로 죽일 때 중국식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사약 : 왕께서 내리시는 약
조선시대 양반들은 교형이나 참형을 당하지 않았다.
물론 대역죄인이 되면 사정은 달랐지만...
보통 양반들은 체면을 생각하여 사형 집행 방법으로 사약을 내렸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었다.
경종 때 이건명은 반역의 배후 주모자를 몰려 전라도의 한 외딴 섬에
유배가 있던 중 참형을 명령받게 되었는데...

여기서 문제 !!!


예송논쟁으로 유명한 송시열의 경우 숙종 때 희빈 장씨의 소생을 세자로 책봉하는 일을
반대하다가 유배지 제주도에서 서울로 압송되는 도중에 전라도 정읍에서 사약을 받게 되는데...

참수형은 동서양의 구경거리
사실 우리나라의 사형집행 정도는 세계사 적으로 볼 때 그닥 끔찍한 것도 아니다.
일본도 우리 못지 않은 끔찍한 사형법이 많았고 중국은 우리보다 휠씬 잔혹했다.
하지만 서양은 이런 중국보다 더 심했다.
http://blog.donga.com/sjdhksk/archives/10882
중세 유럽의 형벌을 보면 끔찍함에 전율을 느낀다.
손발을 자르고,코 ,귀, 혀를 배고, 눈을 뽑고, 수레에 찧어 죽이고, 삶아 죽이고,
꿰어 죽이고, 불에 태워 죽이고, 사지를 자르고...

이런 면에서 인간의 습성은 참으로 이상하다.
한번 보면 평생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불쾌한 장면인데도,
애써 찾아가 보려고 하니 말이다.
조선시대의 경우를 보면, 사형수가 형장으로 가는 길에는
가엾다고 막걸리를 한잔 대접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욕을 하고 돌을 던지면서 처형장까지 따라가 구경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1997년 이루호 사실상 사형제도를
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블러그 펌)
유영철이 하고 오원춘 기타 등등 십새끼들 존나 잘먹고 잘살아서 살이 존나 많이 쪄단다.
범죄인들에게는 정말 살기 좋은 나라 아니냐
소말리아 해적 새끼들도 우리나라 교도소 생활이 자국에서 지내는 것 보다 훨씬 좋단다.
한국 국적 취득하고 싶다고 날리다.
자유 대한민국 만세!!!!!!!!!!!!!!!!!!!!!!!!!!!!!!!!
이상 마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