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최근에 구입한 책 "타카노하나 스모계 추방의 진상"을 읽고 쓴다





하나다 코우지는 하나다 미츠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나다 미츠루는 당대의 인기 스모선수 1대 타카노하나이다. 그의 두 아들(마사루와 코우지)은 아버지의 전성기 때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소년 시절부터 스모에 대한 동경심을 품었다. (여기서는 코우지가 친아들이 아니다 같은 음모론은 다루지 않는다)


현역에서 물러난 1대 타카노하나는 오야카타가 되었다. 그는 아들들에게 스모를 강요할 생각이 없었으나 아들들은 스모 선수가 되기를 원했다. 스모계는 중학생 때부터 입문이 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다 형제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정규교육 대신 스모의 길을 택했다. 소년 스모계에서 명성을 떨치던 하나다 코우지는 체격과 기술 모두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여 아버지 이상의 인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왼쪽부터 1대 타카노하나, 마사루, 코우지, 노리코 부인)



'타카하나다'라는 시코나로 데뷔한 코우지는 불과 17세의 나이에 쥬료(스모의 계급. 선수들은 쥬료에 올라야만 비로소 월급이 나옴. 쥬료에 올라야 비로소 스모선수로 인정받음)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 기록을 남기며 천재 스모선수의 등장을 알렸다. 그와 같은 시기에 입문했던 인물로는 아케보노가 있다.





아버지의 영광에 대한 집착

형 마사루(당시 시코나는 와카하나다)보다 빨리 오오제키(요코즈나 바로 아래의 계급)에 오른 코우지는 아버지의 시코나 타카노하나를 계승하였고 2대 타카노하나가 되었다. 아버지를 몹시 존경했던 코우지는 아버지의 영광을 자신이 재현해야 한다는 강한 집착을 갖고 있었다. 보수적인 일본사회에서는 장남이 대우를 받게 되어있었지만 코우지는 마사루에게 아버지의 영광을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스모는 서열이 최우선이 사회로 타카노하나는 형보다 먼저 요코즈나에 오르면서 큰 인기를 모으게 된다.



타카노하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위대함을 강조하며 자신이 그것의 계승자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1대 타카노하나가 소탈한 성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대 타카노하나의 권위적이고 타협을 모르는 성품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니라 자신이 본래 갖고 있던 성품이 아니었을까. 계급이 높아지면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하고, 오오제키 이상이 되면 부모도 말을 조심해야 하는 스모계의 특성상, 코우지의 오만한 성품은 전혀 고쳐지지 않은 채 깊게 뿌리를 내렸다. 그가 말하는 아버지의 영광은 결국 자신의 집착이 투영된 것 뿐이었다.


인기가 오르면 오를수록 (하긴 타카노하나처럼 사회적 지위를 갖는 것도 쉽진 않지만) 타카노하나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야자와 리에와 결혼을 약속했다가도 결국 일방적으로 파혼을 선언했고 결국 아나운서 출신의 고노 케이코와 결혼했다. 



곧 파혼하게 된 미야자와 리에



고노 케이코




아버지의 영광에 대한 집착은 가정의 불화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 노리코와 의절했고 심지어 형 와카노하나 하고도 의절했다. 와카노하나는 동생보다 느리기는 해도 그 또한 요코즈나에까지 올랐다. 만일 그가 장남으로서 권위를 주장했더라면 타카노하나도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카노하나는 (평범한 요코즈나인 형과 달리) '대(大)요코즈나'임을 강조하며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대 일본 최고의 스포츠스타였던 동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스모판과 어머니와 의절하는 등, 점차 독선이 강해지고 있는 동생에 진절머리를 낸 와카노하나는 그대로 은퇴하고 스모계와 아무 연관이 없는 인간 '하나다 마사루'로 돌아갔다. 그리고 2대 타카노하나는 그대로 오야카타가 되어 스모협회에서 활동했다.


마사루는 스모계를 떠나 사업가로 활동했다. 이때 창코나베(전골)집을 차렸는데 '1대 타카노하나의 맛'이라고 홍보를 했다. 이것이 동생 타카노하나 오야카타의 염장에 불을 질렀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장사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니라는 자기만의 효도론을 제기하며 형과 의절했다. 이 형제는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다.









스모협회의 파벌

스모 현역 시절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위를 가졌던 타카노하나였으나 오야카타가 되고 스모협회의 이사가 되자 인기 뿐만 아니라 정치가 중요해졌다. 스모협회에는 6개의 파벌들이 있으며 각 파벌은 서로를 견제하고, 또 1년에 한번씩 선거를 통해 이시장을 선출한다. 이사장은 자신의 파벌 뿐만 아니라 각 파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어지간히 인망이 없고 정치능력이 없으면 안된다. 그래도 이시장과 동맹관계에 있는 파벌이 있고(여당) 이사장과 친하지 않은 파벌(야당)이 있는 건 사실이다. 6개의 파벌들은 다들 세력이 엇비슷하다. 불만이 있는 파벌들이 힘을 모아 이사장을 갈아치울 수 있다.


현재의 이시장은 핫카쿠 오야카타, 통칭 핫카쿠 이사장이라는 인물이다. 현역 시절에는 호쿠토우미라는 시코나로 요코즈나에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하지만 자신의 요코즈나 위의 요코즈나로 생각하는 타카노하나는 핫카쿠 이사장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타카노하나의 생각과 별개로 핫카쿠 이사장은 정치력이 있었고 각 파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이 있었다. 또한 불법도박 문제, 대마초 문제, 스모계 내부의 폭력 문제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대외적으로 나빠졌던 스모계의 위신을 회복하여 관객동원도 다시 회복시키는 등, 다수의 오야카타로부터 지지를 받는 인물이다.




스모의 6개 일문(파벌)들은 다음과 같다. (사진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타카사고 일문: 핫카쿠 이시장이 이 파벌 출신

데와노우미 일문: 하와이 출신의 무사시마루 오야카타가 여기 소속

니쇼노세키 일문: 이번에 은퇴한 요코즈나 키세노사토가 여기 소속

타카노하나 일문: 1대 타카노하나가 중심이 되어 만든 파벌

이세노하마 일문: 하루마후지, 하쿠호 등의 몽골인 선수들이 주로 여기 소속

토키츠카제 일문: 몽골인 요코즈나 카쿠류가 여기 소속





독선적인 인물은 그만큼 정치력이 없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타카노하나가 스모협회에서 이사의 지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핫카쿠의 전임 이사장인 키타노우미 이사장이 (키타노우미 이사장의 뒤를 따르는 타카노하나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타카노하나의 후원자였기 때문이다.


키타노우미는 현역 시절, 1대 타카노하나의 라이벌이었다. 그런 인연도 있어서 타카노하나는 키타노우미 이사장의 직계로 성장했고 타카노하나 일문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키타노우미 이사장은 201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스모협회에서 세력을 키워가던 타카노하나에게는 큰 손실이었다. 그리고 키타노우미의 후임으로 핫카쿠가 이사장이 되었다.


키타노우미 이사장은 행정 능력이 핫카쿠보다 부족한 편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키타노우미 이사장이 미처 감독하지 못한 문제들을 핫카쿠 이사장이 해결한 셈이었다. 그래서 오야카타들은 핫카쿠를 지지했고 그 덕분에 핫카쿠는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었다.







타카의 난 발발

타카노하나는 핫카쿠 이사장에게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핫카쿠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우호적이었던 반면 타카노하나는 외국인들을 싫어했다. 하지만 현실은 스모계의 상위 체급을 석권하고 있는 선수들이 거의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특히 몽골인들은 요코즈나를 3명이나 배출하는 등, 일본의 국기(國技)라는 스모에 몽골인이 군림하는 상황이었다. 핫카쿠는 스모계에 입문하여 일본인들과 같은 교육을 받고, 일본어를 사용하며, 스모협회가 정한 룰에 따라 행동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입장이고 타카노하나는 외국인들은 결코 일본의 정신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스모는 돈벌이의 수단이라는 주장을 했다.



외국인 선수들을 둘러싸고 일본의 언론도 둘로 나뉘었다. 타카노하나를 지지하는 언론은 "몽골인 요코즈나에게는 품격이 없다"는 주장을 폈다. 반면 몽골인들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언론과의 관계도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몽골인들을 지지하는 언론도 만만치 않았다. 타카노하나는 스모계에서 자신의 말빨이 먹히지 않는 상황에 불쾌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후로도 일부 일본 언론은 몽골인 요코즈나들에 대한 공격을 늦추지 않았는데 이게 훗날 '타카의 난'으로 알려진 타카노하나의 항명 행동과 타이밍이 같다. 타카노하나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오야카타들을 보면 핫카쿠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본인 선수들이 질이 낮은 시합을 하니까 외국인들을 받아들인 것이고 외국인 선수들 덕분에 관객동원도 늘어났다. 그렇게 외국인들이 활약하는 게 꼴보기 싫으면 일본인들이 이기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일반인들에게도 "일본의 정신", "품격" 같은 애매모호한 단어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한편 타카노하나도 결국에는 몽골인 선수를 받아들이게 된다. 타카노하나가 얼마나 오만한 인물인가 하면, 그는 진정한 스모 선수라면 자기처럼 중학생을 마치고 바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스모를 경험한 선수들이나 외국인 선수들은 처음에는 받지 않았다. 다른 오야카타들처럼 외국에 나가서 우수한 선수를 헤드헌팅해오는 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년간 자신의 제자들 중에 쥬료에 오르는 선수가 나오지 않았자 결국 스모 유학생 출신인 타카노이와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타카노이와는 타카노하나의 제자들 중에서 최초로 쥬료에 올랐다. 




그러던 차에 몽골인 요코즈나 하루마후지가 타카노하나의 제자 타카노이와를 노래방에서 리모콘으로 때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것이 하루마후지 폭행사건이다. 스모협회의 룰에 의하면 스모선수들끼리의 폭력사태가 발생한 경우, 스모협회에 먼저 알리고 협회가 판단하여 경찰에 신고하고 또 해당 선수에 대한 처벌을 결정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타카노하나는 스모협회에 알리지 않고 바로 경찰에 신고해버린다. 그리고 언론플레이를 통해 "어차피 협회에 신고해봐야 협회는 은폐한다"는 인식을 퍼뜨리고 다녔고, 핫카쿠 오야카타가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 한다고 언론을 통해 압력을 넣었다. 세월호 책임을 지고 하야하라고 선동하는 수법과 너무나도 똑같다.



하지만 타카노하나의 정체불명의 스모론이나 '내가 아니면 안된다'식의 독선적인 태도를 꺼리는 언론도 만만치 않아서 점차로 타카노하나의 주장들에 이상한 점들을 밝혀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맥주병으로 때렸고 (실제로는 노래방 리모컨) 두개골에 금이 갔다고 하더니, 정작 맞은 피해자인 타카노이와는 며칠 후에 스모 스파링에도 참여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게다가 타카노하나가 타카노이와를 철저하게 숨겨놓고 언론과의 접촉을 차단한다는 점, 의견 차이가 있다면 대화하자는 핫카쿠의 요청을 묵살한다는 점 등이 수상한 냄새를 풍기게 했다. 하짐나 타카노하나에 빌붙은 언론은 "대 요코즈나의 주장에 토를 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스모협회를 압박했다. 그리고 스모협회가 범죄의 온상이라는 주장까지, 온갖 썰들이 터져나왔다. 이런 주장들이 일제히 터져나온 것을 보면 배후에 주모자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하루마후지 폭행사건의 결과, 하루마후지는 책임을 지는 형태로 은퇴를 선언했고 사태는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다. 하지만 친 타카노하나 언론은 계속 핫카쿠의 사임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사장 선거가 다가왔다. 언론은 핫카쿠에게 최대의 위기가 닥쳐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세간에서는 이것을 타카의 난이라 부르게 되었다.







타카의 난 실패

하지만 세월충들의 난과 달리 타카의 난에는 몇가지 한계가 있었다. 우선 이사장 선거는 한국 대선처럼 우민들이 아니라 오야카타들만이 결정하게 되어 있다. 둘째, 하루마후지는 이세가하마 일문 소속이고 또 이세가하마 오야카타가 직접 몽골까지 가서 발굴해내어 요코즈나로까지 키워낸 수제자였다. 이 일은 타카노하나와 동맹관게에 있던 이세가하마 일문을 적으로 돌리게 되었다. 셋째, 타카노하나가 누구보다도 폭력적이라는 사실이 (뒤늦게나마) 드러나게 되었다. 즉, 요코즈나로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대 요코즈나지만 오야카타로서는 야심에 불타는 위선자였던 것이다.


손석희가 뉴스룸 내부에서 짱먹는 것처럼 타카노하나처럼 오만한 인물이 자기 헤야(양성소) 같이 견제세력이 하나도 없는 환경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는 누구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헤야를 그만둔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타카노하나는 제자들의 실력이 빨리 향상되지 않으면 정신론을 갖다대며 질타했고, 심지어 "인사할 때 소리가 작기 때문에 성장이 안된다" 같은 이상한 논리를 대며 구타를 했음이 드러났다. 이러한 폭력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타카노하나의 제자들은 "계급만 올라가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폭력적인 성향은 나중에 타카노하나에게 그대로 돌아오게 된다.


하루마후지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몽골인 후배 타카노이와가 예의를 아는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폭행을 하고 말았다고 진술했다. 타카노하나 지지파는 하루마후지가 끝까지 폭력을 미화한다고 난리가 났지만 스모계에서는 "타카노이와의 품행 문제는 예전부터 지적되어 오던 것이며 정의감이 강한 하루마후지가 작심하고 나선 것도 이해가 간다"고 오히려 하루마후지를 옹호했다. 타카노이와는 평소에도 계급이 낮은 선수들을 심심풀이로 때리고 (이소룡 영화 흉내를 냈다고 한다) 한밤중에도 수시로 불러내어 심부름을 시키는 등, 실력과는 별개로 인성에 문제가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루마후지 폭행사건을 핫카쿠 이사장에의 공격으로 몰고 가는 타카노하나의 노림수는 명백했다. 2월에 다가올 이사장 선거였다. 핫카쿠 이사장은 재선이 유력시되고 있었는데 언론에서는 스모계의 개혁을 위해서는 핫카쿠 이사장이 사임하고 타카노하나가 이사장이 되는 수 밖에 없다 식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타카노하나의 음침한 인격을 잘 알고 있던 관계자들에게 타카노하나는 핫카쿠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인물이었다. 언론에서는 그를 개혁자로 묘사하지만 실상은 자기 형이나 어머니하고도 의절할 정도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인물이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스모 하나에만 정진하는 수도승 같은 인물로 알려졌지만 이번 '타카의 난'에서는 야심에 눈이 멀어 언론플레이나 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타카노하나는 자신의 영향력이라면 몽골인 선수 하나쯤 매장시키는 건 일도 아니라 생각했겠지만 하루마후지는 일본인에게도 외국인에게도 평판이 아주 좋은 선수였다. 선수회(선수 노조 같은 조직)에서는 타카노하나가 협회의 이사 뿐만 아니라 흥행부장(도쿄 이외의 지역에서 열리는 스모 시합의 총괄자)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협회의 선수(하루마후지)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타카노하나가 흥행부장으로 있는 한, 시합을 뛸 수 없다며 사상 최초의 파업 예고까지 했다. 이사장 선거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던 타카노하나는 군말없이 흥행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스모계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평판이 좋았던 하루마후지



이세가하마 오야카타는 몽골에서 데려온 아마(하루마후지라는 시코나를 받기 전에는 아마라는 애칭으로 불렸음)에게 요코즈나의 의식을 전수하는 것은 내 생애 최고의 보람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하루마후지를 아꼈다


 

네이마르와 함께한 하루마후지


윌리엄 왕자를 접견하는 이세가하마 오야카타와 하루마후지.

타카의 난을 일으킨 배경에는 해외에서 스모를 대표하여 왕성한 활동을 하던 이세가하마 일문에 대한 질투도 있었다.

(이세가하마 오야카타는 현역 시절에는 부상이 심해서 일찍 은퇴한 단명 요코즈나였다. 타카노하나가 아사히후지를 우습게 여기는 건 당연했다)


노래방에서 하쿠호가 훈계를 하는 와중에도 타카노이와는 스마트폰을 보며 딴청을 피웠는데 그 모습을 보고 격분한 하루마후지가 리모콘으로 내려치며 강하게 꾸짖었던 것이다. 반면 가해자가 된 하루마후지는 파벌에 상관없이 후배들을 누구나 잘 지도하던 것으로 명망이 있었다. 그것을 반영하듯이 하루마후지의 은퇴 기자회견에서는 이세가하마 오야카타가 쉴새없이 눈물을 닦는 모습이 있었다. 가장 아끼는 제자를 잃게 된 이세가하마 오야카타가 타카노하나를 지지할 리 없었고 인망이 있는 하루마후지를 은퇴로 몰아넣은 타카노하나는 다른 파벌들에게도 지지를 잃었다.






타카노하나의 도박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타카노하나는 겨우 2표만은 얻었고 낙선했다. 하나는 타카노하나 자신의 표일 터이니 결국 타카의 난에 동조한 오야카타는 한명 뿐이라는 의미이다. 이세가하마 일문은 물론이고 타카노하나 일문까지 타카노하나에게 등을 돌렸다는 의미이다. 핫카쿠는 연임에 성공했고 타카노하나는 스모협회 내에서의 모든 기반을 잃었다.



다음편에서는 타카노하나가 스모계에서 은퇴를 선택하게 된 계기, 이혼, 그리고 타카노하나의 연예인병 걸린 아들에 대해 쓰겠다.

요코즈나 타카노하나와 인간 하나다 코우지 사이의 갭은 어마어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