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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넘은 것은 워마드가 아니다>


워마드는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다. 대신 워마드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행위들만이 특수한 의도로 선택되어 사회적 물의로 부각될 뿐이다. 워마드 이용자들의 언어를 페미니즘이라 할 수 있는지, 혹은 페미니즘이 아니어도 보편적 인권의 차원에서 도를 넘은 것은 아닌지 언제나 과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만 그중 어느 것도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도를 넘은 것처럼 보이는 워마드가 아니라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남성 중심 사회다.

도를 넘었다? 여기서 그 ‘도’는 무엇일까? ‘도’의 기준은 누가 언제 마련했을까? ‘도’를 보편적 차원의 인권으로 정의한다면 문제는 대단히 간단해진다. 절대불변의 인권을 기준 삼아 행위의 정당성을 판별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개의 문장으로 서술될 뿐인 인권은 인간의 현실에 적용될 경우 그리 간단히 해석되지는 않는다. 서술되는 인권 자체보다, 누가 어떤 의도로 인권을 서술하는지, 그리고 그 서술이 결국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를 살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바로 그러한 사회적 맥락이야말로 기계적으로 서술되는 인권보다 더욱 사람들의 인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초로 ‘도’를 넘은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 약자였을 것이며, 강자들의 질서로 구축된 사회에 순종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장애인이거나, 성소수자거나, 노동자거나, 흑인이거나, 청소년이거나, 여성이었을 것이다. 그는 맨 처음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말하는 방식을 택했을 것이며, 그의 방식은 당연하게도 철저히 무시당하거나 짓밟혔을 것이다. 더는 물러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삶을 말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나아갔을 것이고, 강자들은 그 방식을 ‘폭력’이나 ‘테러’로 규정했을 것이다.

유리창을 깬다. 건물을 부순다. 불을 지른다. 사람을 때린다.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삶을 망가뜨린다. 재미있는 점은 이 명백한 ‘폭력’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적 위치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폭력이 될 수도 있고 저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독립운동가들 중 위에 나열한 폭력 행위를 저지른 이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들은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로 불리지 않는다. 1987년 6월 항쟁 때 벌어진 무수한 기물 파손과 폭력 행위 또한 폭도의 난동으로 불리진 않는다. 왜? 폭력 행위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쪽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만일 일제가 지금도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다면 독립운동가들은 테러리스트로 기록됐을 것이며 군사독재 정권이 시퍼렇게 살아있다면 6월 항쟁은 소요 행위에 지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이미 여성들은 아주 오래 전 참정권을 얻어내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남성들이 자다가도 펄쩍 뛸 만큼 요란한 폭력 행위를 저지른 바 있다. 과거까지 갈 필요도 없이 해외 페미니스트들의 거리 시위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할 뿐인 한국 페미니스트들의 시위보다 훨씬 더 과격하고 폭력적이다.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왜 더 온건한 방법을 택하지 않을까? 왜 차분하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말하지 않고 과격하게 행동하는 쪽으로만 밀어붙일까? 그러나 과격과 온건, 폭력과 비폭력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구분하려는 사람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길을 막고 서서 구호를 외치는 페미니스트들이 대단히 과격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흘에 한 명 꼴로 여성이 데이트폭력으로 죽어 나가고 십여 분마다 한 건씩 성범죄가 벌어지는 곳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때려 부수지 않는 거리 시위는 대단히 온건한 것일 수도 있다.

도를 넘었다고 말하기 전에 자신이 생각하는 ‘도’는 어디쯤에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나는 누구의 편에서 말하고 있는지, 누구의 권력에 복무하고 있는지, 누구의 삶을 외면할 수 있고 누구의 상처를 망각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기계적으로만 인권에 대한 문장을 읊어 대는 것보다 훨씬 더 누군가의 인권을 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인권을 이야기하며 워마드가 도를 넘었다고 말하기란 너무나 쉽다. 그러나 그 인권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인권인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여성을 상대로 벌어지는 갖가지 범죄들이 무척 사소한 것으로 여겨질 뿐인 현실에서 왜 남성들이 당하는 인권침해만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당할 때는 가십거리로 여겨지거나 잊힐 뿐인 범죄들이 왜 남성들이 당해야만 공권력의 수사 대상이 되고 인권유린의 사례가 되는지 역시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워마드가 도를 넘었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누구의 권력에 복무하게 될까?

인권은 성문법과 같은 절대불변의 원칙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이성애자 위주의 세상에선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그토록 쉽게 무시되고 성인 중심의 세상에선 청소년들의 인권이 헌신짝 취급을 받으며 자본주의적 질서가 널리 통하는 세상에서 노동자들의 인권은 철저히 억압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성들의 남근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여성의 인권은 언급하는 것조차 불경스럽고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정 집단의 인권이 깡그리 무시되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모든 이의 인권이 다 소중하다는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권을 더 큰 목소리로 외칠 것인지를 결정하는 선택과 집중이다. 남성들이 여성들의 인권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거나 아예 짓밟는다면, 그러는 주제에 아무런 성찰도 반성도 참회도 보여주지 않는다면 남성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옹호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여성들 또한 남성들의 인권을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독립운동가들이 일본 정치인들의 인권을 신경 쓰지 않은 것처럼. 6월 항쟁의 거리에서 아무도 폭력경찰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은 것처럼.

인터넷 커뮤니티에 불과할 뿐인 워마드가 실제로 누구의 인권을 얼마나 침해했는지는 제쳐 두더라도, 워마드와 관련된 이런저런 소식들에 눈살을 찌푸릴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남성의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워마드 이용자들의 언행에 굳이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워마드의 동력은 남성혐오가 아니라 여성혐오라는 것이다. 지독한 여성혐오가 아니었다면 워마드라는 공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한 자각을 여성들끼리 공유하지 않았다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굳이 남성을 혐오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남성혐오는 그 자체로서 매우 위험하다. 일상 속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남성을 혐오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닐 수 있는 여성은 남성들의 표적이 되어 끊임없이 공격을 받는다. 그토록 번거롭고 위험한 남성혐오가 아무 이유도 없이 생겨났을 리는 없다. 남성혐오는 여성혐오에 대등하게 맞서려는 시도가 아니라 오랜 역사를 지닌 여성혐오가 낳은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워마드가 혐오스러운가? 워마드를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 사회의 여성혐오를 완전히 뿌리 뽑으면 된다. 자신은 혐오당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남성들이 행동으로 입증하면 된다. 언제나 도를 넘은 것은 강고한 가부장제로 결속된 남성 중심 사회였지 여성들이 아니었다. 워마드의 남성혐오는 남성을 죽이지도 않고 때리거나 강간하지도 않으며 차별하거나 억압하지도 않는다. 단지 조롱하고 모욕할 뿐이다. 이는 신문에 실리는 만평 수준의 혐오다. 정말 남성혐오가 존재하려면 사흘에 한 명 꼴로 남성이 여성의 손에 살해당하거나 십여 분에 한 건씩 남성 성범죄 피해자가 발생해야 한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몰카’에 찍히거나 성희롱을 당하거나 부당한 차별을 받거나 무능한 존재로 낙인찍혀야 한다.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여성은 면죄부를 받고 남성은 엄벌에 처해져야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도를 넘은 것은 아니다. 똑같은 일을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아주 오랫동안 집요하게 행해 왔기 때문이다.


도를 넘은 것은 워마드가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 도를 넘은 것은 남성들이었다. 온건하게 이야기하면 들은 척도 하지 않다가 자신들이 똑같이 당해야 비로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남성들이야말로 대단히 심각한 수준으로 도를 넘었다. 그리고 도를 넘은 남성들의 태도는 과거에서부터 대대손손 전해지며 역사가 되고 전통이 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의 역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 또한 증명한다. 상대방의 인권은 전혀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인권을 존중하라고 떼를 쓰는 ‘도를 넘은’ 사람은 마땅히 혐오당할 가치가 있다는 것. 바로 남성들이 그렇다.

 

 

댓글 반응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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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졷나 멍청하다 ㅋㅋ 저러면 여혐만 더 늘어나는거 아냐? 여혐이 사라져야 워마드도 사라진다고? ㅋㅋ 여혐 더 늘리는 짓 하고 있는곳이 워마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