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게이들아
항목 추가해서 재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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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https://www.ilbe.com/10256347827
3편은 묻혀서 삭제했다
1. 장갑함 Ironclad
CSS '버지니아'(왼쪽)와 USS '모니터'
미국의 남북전쟁 기간인 1862년 3월, 북군의 해안 봉쇄에 당하고만 있던 남군은 화재에서 살아남은 북군의 USS 메리맥을 나포, 인양하여 장갑함으로 개조한다
'메리맥'의 '버지니아' 장갑함 리모델링 모습
북군의 해안 봉쇄를 무력화할 신무기로 함명을 CSS '버지니아'로 바꾸고, 신형 증기기관 및 7인치 함포로 무장한 후 철도 레일용 단조철을 함정 전체에 둘러대어 평균 장갑 두께 약 10센티미터의 장갑함을 만들었다
3월 8일 첫 해전에 나선 남군의 '버지니아'는 체서피크 만 인근에서 북군의 목조 프리깃함인 '콩그레스'와 '컴벌랜드'함과 조우한다
'버지니아'의 충각 공격으로 침몰하는 북군의 '컴벌랜드'
북군의 프리깃함에서 쏟아지는 함포 세례를 뚫고 '버지니아'는 '컴벌랜드'를 간단히 충각 공격으로 침몰시킨 후 '콩그레스' 역시 함포 공격으로 좌초 시킨다
남군은 이 해전의 승리로 북군의 해안 봉쇄가 뚫렸다고 생각했으나 다음날인 3월 9일 '버지니아'의 눈 앞에 전혀 새로운 신형 함정이 나타났다
바로 USS '모니터 Monitor'함 이었다
USS 모니터의 항해 모습
북군의 목조 프리깃인 '미네소타'함과 같이 등장한 '모니터'는 해군 함정의 역사를 바꾼 전혀 새로운 장갑함이었다
목조 프리깃에 장갑을 덧댄 '버지니아'와는 달리 백지 상태에서 장갑함으로 설계, 건조된 '모니터'는 갑판이 수면 높이와 비슷하였고 11인치 함포 2문을 장착한 포탑을 지닌 평균 장갑 두께 12센티미터, 갑판 장갑 20센티미터의 당시로는 괴물 군함이었다
모니터 함 모형
1862년 3월 9일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장갑함 끼리의 해전이 일어났다
'모니터'와 '버지니아'가 수평선에 등장하자 목조 함정들은 전투 현장에서 물러나고 장갑함 두 척간의 해전이 시작된 것.
'메리맥 해전'이라 불리는 이 해전에서 두 장갑함은 상대방에게 치열하게 함포 공격을 하였으며 두 번씩 서로 충각 공격을 감행하였다
메리맥 해전 상상도
4시간여의 회전 후 결과적으로는 '버지니아'의 충각 공격에 선수가 파괴된 '모니터'가 퇴각하는 꼴이 되었지만 '버지니아'는 이미 장갑 전체가 소모되어 남군의 포츠머드 해군 기지로 귀환하였으나 끝내 수리되지 못한 채 3개월 후인 1862년 5월 북군의 공격을 받고 남군에 의해 자침되었다
이 '매리맥 해전' 이후 열강 해군들은 목조함들을 서둘러 퇴역시키고 철제함들로 해군 함정을 교체하기시작한다
2. 워털루 이빨
20세기 초까지 인간의 빠진 이빨을 대신할 수 있는 의치로 가장 좋은 것은 다른 인간의 이빨이었다
하지만 당시 유럽에 만연했던 매독에 감염되지 않은 젊은 치아를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로, 사고나 전쟁에서 죽은 젊은이의 이빨을 수거, 판매하는 게 성행했다
5만명 이상의 전사자가 생긴 1815년 워털루 전투 현장에선 전투 종료 후 젊은 전사자들의 치아를 약탈하려는 쟁탈전이 벌어졌었다
이때 수거되어 의치로 다른 사람들의 입 안에서 치아를 대신하던 '워털루 이빨'들은 1860년대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다시 한 번 대량으로 신선한 치아가 공급되기 전 까지 인기리에 사용되었다
3. 최연소 소련 출신 미국 망명자
1980년, 소련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우크라이나 유태계 12세의 블라디미르 폴로브착은 16세의 누나와 함께 시카고의 경찰서에 들어와 도움을 요청한다
미국으로 이주한 지 6개월 여, 직업을 얻지 못한 채 인근의 유태인 친척들의 도움으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오던 폴로브착의 부모가 소련으로의 재이주를 결정한 탓이었다
'나는 이번에 돌아가면 다시는 미국 땅을 못 밟는다는 걸 알았어요. 아지만 아빠는 우리를 달래기도 하며 위협하기도 하며 다시 소련으로 가야한다고 말했죠'
시카고 법원의 결정으로 미국에 남게 된 최연소 소련 망명자 폴로브착은 이름을 소련식인 블라디미르에서 미국식 월터로 개명하였고 성년이 되던 해인 1985년, 미국 시민이 되었다
월터 폴로브착의 최근 가족 사진
4. 머그샷
17세기 절대 군주를 노리다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폐위, 처형된 영국의 찰스 1세
위 초상화는 네덜란드 출신 궁정화가 반 다이크가 그린 찰스 1세의 공식 초상화다
또한 반 다이크는 현대의 머그샷과 비슷한 찰스 1세의 3방향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 이유는 이탈리아의 조각가 베르니니에게 찰스 1세의 흉부상 제작을 의뢰하기 위한 것.
완성된 조각상은 찰스 1세에게 전달되었으나 1698년 화재로 파괴되었다
이 3방향 초상화는 1822년 영국인 윌리엄 뷰캐넌이 베르니니 가문에게서 구입, 왕실에 헌납하여 로열 콜렉션으로 현재까지 영국 왕실이 소유하고 있다
5. 1000 야드의 시선
전투의 공포와 충격으로 넋을 잃고 있는 상태로 자신의 눈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1000 야드의 시선 Thousand-yard Stare'라고 한다
위 그림은 2차대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한 미군 병사의 전쟁 후 상태를 그린 것으로 1945년 '라이프 Life' 잡지에 소개되어 공허한 시선이 마치 1000 야드 앞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며 '1000 야드의 시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다
역시 1944년 태평양 전선의 미해병 존 마틴 하티의 전투 후 찍힌 사진. 공허한 '1000 야드의 시선'이 잘 나타나있다
2010년 아프가니스탄의 제이콥 무어 상병
역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괴의 교전 후의 덴마크군 병사 모습
읽어줘서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