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만약(If)이란 건 없지만, 그래도 자유 대한민국이 멸공북진통일에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제가 한번 가정해 보겠습니다. 6.25 전쟁 때 자유 대한민국이 멸공북진통일에 성공하려면 1.4 후퇴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정전 협정을 맺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우리가 이겼어야 했습니다. 북진통일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몰래 미국이 데리고 있던 반공포로 25,000명을 석방시키는 등 정전 협정 체결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미국 놈들은 이승만 대통령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북방한계선(NLL)을 긋고, 소련-중공-북괴와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이승만 대통령 본인이 직접 만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조건으로 정전 협정 체결에 동의해 줬습니다. 대한민국의 國父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력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1등입니다. 미국이 얼마나 이승만이 마음에 안 들었으면 에버레디 플랜을 세워서 바다낚시를 즐기던 이승만 대통령을 뒤에서 몰래 총으로 쏴 죽이려고까지 했겠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입장에서는 날강도였습니다.

만약 한국이 북진통일에 성공했다면, 그 시기는 아마도 1950년 말이나 1954년~1955년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트루먼은 맥아더가 UN군을 철수시키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한반도 자유통일뿐만 아니라 양안 자유통일도 이루려고 했던 분입니다. 맥아더는 북진통일을 이룬 다음 장제스와 손을 잡고 중국 대륙을 폭격해서 마오쩌둥을 몰아내고 중화민국이 양안을 통일하게 하려 했으나, 쫄보 트루먼이 제 3차 세계 대전 발발이 우려된다면서 맥아더를 말렸습니다. 트루먼이 맥아더를 말리지 않았다면 한반도와 양안의 자유통일은 진작에 이루어졌을 것이고, 저도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음악만 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음악만 하면서 편하게 살아도 되는 제가 왜 친구나 후배들에게 집단 린치 당하고 빨갱이들에게 고소-고발까지 당해 가면서 넷우익 활동을 하겠습니까?

북진통일이 성공했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문무왕-태조 왕건에 이어 세 번째로 한반도를 통일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중국 본토를 통일한 마오쩌둥이나 베트남을 통일한 호치민처럼 한반도를 통일한 영웅으로서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반공 애국 지도자 이승만이 빨갱이 독재자 마오쩌둥-호치민보다 못한 게 있습니까? 물론 호치민의 청렴함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도 호치민 못지않게 검소하고 청렴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오쩌둥은 10대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까지 강간한 변태성욕자였고, 어마어마한 돈을 부정축재했습니다. 노무현-문재인은 중국에 가서 이런 마오쩌둥을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극우 진영에도 마크롱 빠는 인간들이 있는데, 마크롱은 시진핑 앞에서 마오쩌둥을 찬양하며 자신을 마오이스트라고 말한 빨갱이입니다. 대한민국 극우 세력이 본받아야 할 지도자는 마크롱이 아니라 히틀러입니다. 해방공간에서 활동하던 극우 인사들 중에서도 안호상, 이범석, 장준하 등 나치즘 신봉자들 많았습니다. 환빠들의 代父 안호상은 히틀러의 나치즘을 바탕으로 '일민주의'라는 사상을 창시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도 나치즘 신봉자였습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은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1923)을 탐독했고, 히틀러가 아우토반 고속도로와 폭스바겐을 건설한 것을 보고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건설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마오쩌둥-호치민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분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에 성공했다면 광화문 광장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지고, 숭례문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화가 대문짝만하게 걸렸을 것입니다. 다만 중공마귀들과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위협 때문에 주한미군은 통일 후에도 계속 주둔해야 했을 것입니다. 저는 주한미군이 통일 후에도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 빨갱이들은 엄연한 자주독립 국가인 대한민국이 미국의 식민지라고 개지랄을 하는데, 엄연한 자주독립 국가이자 자유통일 국가인 일본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일본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일본은 1945년~1954년까지 9년간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1954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체결로 주권을 회복했습니다.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주한미군이 없으면 한민족은 일본이나 중국의 밥이 되어 버립니다. 

빨갱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부정하기 위해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3일이 대한민국 건국절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도 이승만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다가 오히려 이승만 대통령을 띄워 주고 있는 빨갱이들의 멍청함에 불알을 탁 치고 갑니다. 1919년 4월 13일이 대한민국 건국절이 되더라도 대한민국의 國父가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승만 대통령께서도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셨습니다. 저는 정말로 이승만을 존경한다면 오히려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지, 건국일이 아닙니다. 1919년 4월 13일이 대한민국 건국절이 되면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을 이끌어 낸 역사의 영웅이 되어 버립니다. 북진통일에 성공했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 그리고 통일을 이끌어 낸 國父로서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이승만을 욕하면 맞아 죽는 문화가 조성되었을 것이며, 한국 지폐는 이승만 사진으로 도배되었을 것입니다. 중국 지폐도 마오쩌둥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지 않습니까? 중국에서 마오쩌둥을 욕하면 맞아 죽습니다. 저는 지난 2016년 10월 18일(火)에 중국 천안문 광장에 가서 거대한 마오쩌둥 동상과 천안문에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마오쩌둥 초상화를 실제로 봤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승만 대통령을 떠올렸습니다. 터키에는 '아타튀르크 모욕죄'라는 것이 있어서, 아타튀르크를 욕하면 법적으로 처벌받습니다. 우리도 '이승만 모욕죄'를 만들어서 이승만 대통령을 욕하는 애미-애비 뒤진 빨갱이 개자식들을 법적으로 처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사사오입 개헌은 도저히 쉴드가 불가능한 이승만 대통령의 실책이 맞습니다. 정전 협정 체결 이전까지만 해도 반듯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엇나가기 시작한 것은 1954년 사사오입 개헌 이후부터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10월 유신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 위대한 조국 근대화 혁명으로, 중화학 공업 육성을 통한 자주국방 실현 및 조국 근대화 과업 완성이라는 정당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옹호해 줄 수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은 오로지 이승만 개인의 권력욕에 의한 것으로, 도저히 쉴드가 불가능합니다. 발췌 개헌은 대통령 직선제 실시라는 성과가 있었으니 그렇다 쳐도, 사사오입 개헌은 오로지 이승만 개인의 장기집권을 위한 것 아닙니까? 다만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 청산을 하지 않은 것은 친일 청산보다는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라면 치를 떠는 혐일주의자였습니다. 북진통일에 성공했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북한이라는 위협적인 존재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친일 청산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었다면 장면, 김대중 등과 같은 친일파들은 집권하지 못했을 것이고, 친일 세력의 뿌리인 한민당의 후신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진작에 궤멸되었을 것입니다.

장면이 친일파라는 것은 빨갱이들도 인정하는 팩트입니다. 장면은 일제 시대 때 소학교 교장이었던 놈으로,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한 인간입니다. 반면, 김구 선생이 만주군에 침투시킨 광복군 첩자로, 만주에 있을 때부터 김구 선생을 존경하고 따랐던 절세의 애국자 박정희 대통령은 김구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고, 이승만 정권 시절 금서로 지정되었던 <백범일지>를 해금시키고, 백범기념공원을 조성하는 등 김구 선생을 극진히 예우해 드렸습니다. 장면은 우파가 맞긴 하지만, 매우 무능하고 비겁했습니다. 김대중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는 고령 박(朴)씨를 계승한다는, 즉 창씨개명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지은 이름이고, 실제로 일본인들은 너무 촌스러워서 이런 이름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면, 김대중의 일본식 이름 '도요타 다이쥬(豊田大中)'는 완벽한 일본식 이름입니다. 김대중은 목포상고 재학 시절 일본 황국신민 복장을 입고 학도병 강제징용을 미화하는 연극에서 열연한 인간입니다. 김대중의 친일 행적은 8.15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김대중은 친일파 장면을 옹호하고, 1989년 히로히토 일왕의 장례식에 조문을 가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범 히로히토의 영정사진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1998년 新한일어업협정 체결 과정에서 독도를 한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EEZ)이 아닌 한일 공동수역으로 편입시켜 일본 어선이 독도에서 마음대로 어업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DJ가 다른 재야 인사들이 다 한일수교를 반대할 때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 혼자서 매국노 소리 들어 가면서까지 한일수교를 찬성하고,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해서 동방신기, 보아, 배용준(욘사마) 등과 같은 한류스타들이 일본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은 저도 높이 평가합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김대중의 몇 안 되는 업적 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 청산을 제대로 했다면 장면, 윤보선, 김대중 등의 친일파들과 노무현, 박원순, 문재인, 안철수, 유시민, 김무성 등의 친일파 후손들이 기득권을 차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배신한 '배신의 아이콘' 김무성의 아버지 김용주가 친일파이고, 김무성의 외사촌 방상훈이 운영하는 국내 최대의 메이저 언론 조선일보가 친일-종북 언론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보수우파인 제가 조선일보를 까면 화를 낼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6.25 전쟁 때 김일성을 찬양하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고, 박근혜 정부에서 칼잡이 노릇을 하던 애국 검사 우병우를 음해하고, 국정농단 사태의 진짜 주범인 고영태를 인터뷰해서 애국자 박근혜-최순실을 음해하는 등 박근혜 대통령 사기탄핵 선동질에 앞장선 쓰레기 언론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사기탄핵-구속 사태의 배후는 조중동과 이명박 패거리들입니다. 누가 봐도 빨갱이 언론인 한경오도 아니고, 자칭 '보수언론'이라는 조중동이 이런 몹쓸 짓을 한 것입니다. TV조선은 고영태와의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최순실을 음해하고, JTBC는 김한수 前 청와대 행정관의 태블릿PC를 최순실의 것으로 바꿔치기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속도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동아일보 계열 종편 채널A도 박근혜 대통령을 욕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선동 언론은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꼽은 대한민국 7대 부패 기득권 세력 중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언론은 뉴스타운과 미디어워치밖에 없습니다. 5.18을 공산폭동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전두환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는 언론은 뉴스타운밖에 없고, JTBC의 태블릿PC 조작질을 비판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는 언론은 미디어워치밖에 없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에 이어 전범 재판을 통해 친일파들과 6.25 남침을 자행한 전범들을 숙청했을 것이고, 사사오입 개헌을 했더라도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유상매입-유상분배 농지개혁, 경제 개발 3개년 계획 수립 등과 같은 경제적 업적도 어느 정도 남겼습니다. 유상매입-유상분배 농지개혁은 노무현이나 룰라 前 브라질 대통령 같은 좌파들도 인정하는 이승만의 대표적인 업적이고, 장면-박정희 정권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이승만 정권의 경제 개발 3개년 계획을 계승한 것이었습니다. 스트롱맨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통일을 이루고 나서 일본 측에 대마도 반환을 끈질기게 요구해서 일본으로부터 대마도를 돌려받고, 또 다른 스트롱맨 마오쩌둥과의 끈질긴 기싸움 끝에 중국으로부터 간도를 돌려받아 중국 동포들까지 해방시켰을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그분께서 서거하신 날인 1965년 7월 19일까지 영구 집권을 하셨을 것이고, 3.15 부정선거가 있었더라도 높은 지지율 때문에 4.19 혁명은 일어나지 않고 이기붕을 비롯한 3.15 부정선거 책임자들을 내치는 선에서 끝냈을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가 대통령직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승만 대통령께서 서거하시고 나서 이인수 박사가 3년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고 1965년 대한민국 제 6대 정-부통령 선거에 자유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입니다.

1960년 수립된 제 1차 경제 개발 3개년 계획은 1960년~1962년까지 실시되었을 것이고, 제 2차 경제 개발 3개년 계획은 1963년~1965년까지 실시되었을 것입니다. 북진통일이 되었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이 조국 근대화를 이룩했을 것이고, 박정희 대통령은 쿠데타를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고 백의종군하셨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고 백의종군했다면 박정희 대통령과 매우 긴밀한 관계였던 전두환-노태우-박근혜 대통령은 집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5.16 혁명은 박정희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조국과 민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리사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분이었고, 누구보다 청렴하고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분이었습니다. 북진통일이 되었다면 박정희-전두환-노태우-박근혜 대통령은 집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반도를 통일한 이승만 대통령은 UN군사령부에게 일시적으로 넘겨 준 전작권-평작권을 돌려받고 핵무장을 추진해서 자주국방을 실현시켰을 것이고, 북한 땅에 묻혀 있는 엄청난 지하자원들을 개발해서 돈을 벌었을 것이며, 리콴유처럼 강력한 리더십으로 부정-부패를 단호히 척결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제 5대 부통령을 지낸 이인수 박사가 60일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국정운영을 한 뒤, 이승만 대통령이 서거한 지 60일이 지난 1965년 9월 17일에 열린 대한민국 제 6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이인수-안호상 후보와 민주당의 장준하-김영삼 후보가 맞붙어서 장준하-김영삼이 대한민국 제 6대 정-부통령이 되었을 것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주요 업적 중 하나인 조선 총독부 청사 철거는 사실 이승만 대통령이 먼저 하려고 했으나, 장비가 부족해서 못 한 것이었습니다. 한반도를 통일한 이승만 대통령은 완전히 성역화가 되어 버려서, 이승만 대통령을 욕하는 놈들은 법적으로 처벌받았을 것입니다. 평양시는 '우남시'로 명칭이 바뀌었을 것이고, 조선 총독부 청사는 이승만 정권 시절에 철거되었을 것입니다.

장준하 선생과 김영삼 대통령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꽤 우호적인 편이었습니다. 장준하 선생은 이승만 정권 시절 문교부 국민정신계몽 담당관으로, 장면 정권 시절 국토건설단 단장으로 일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 운동과 유사한 농촌 부흥 운동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장준하 선생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베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두 분 모두 조국 근대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전이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혁명을 일으키지 않고 백의종군을 했다고 하더라도 '장준하 대통령'이 농촌 부흥 운동으로 농촌 현대화를 이룩했을 것입니다. 다만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박정희 대통령과는 달리, 이승만-장준하-김영삼은 반일을 넘어 혐일에 가까운 인물이었기 때문에, 한일수교는 1965년보다 훨씬 더 늦은 시기에 이뤄졌을 것입니다. 얼마나 한국이 우습게 보였으면 왜놈들이 틈만 나면 "위안부는 매춘부", "다케시마(竹島)는 일본 땅", "일제가 조선을 근대화시켰다.",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며 지랄염병을 하겠습니까? 그래도 저는 왜놈들보다 틈만 나면 핵과 미사일을 쏴 대고 우리 2,500만 동포들에게 각종 반인륜적 만행을 저지르는 북한 괴뢰집단이 더 밉습니다. 북괴와의 체제 경쟁에서 이기고 자유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무리 일본이 미워도 어쩔 수 없이 같은 반공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하는 운명(destiny)입니다. 왜놈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은 우리가 분단국가라서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진통일이 되었다면 한일기본조약 체결 과정에서 우리가 훨씬 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일본 놈들은 대한민국이 무서워서 "위안부는 매춘부", "독도는 일본 땅" 같은 개소리를 지껄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전쟁범죄이고,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저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자체를 부정한 적이 없는데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들에게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했습니다. 정말로 일본을 증오하는 사람은 무작정 일본을 욕하지 않고, 일본의 장점을 보고 배워서 일본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합니다. 일본은 미국에게 원자 폭탄을 두 발씩이나 맞고, 미국에게 9년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미국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안 하고 오히려 미국을 배워서 세계적인 정치-경제-군사대국이 되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보다 원폭 피해자가 더 많은데도 일본은 미국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중국은 1972년 중일수교 과정에서 "네놈들 더러운 돈 안 받는다."라며 대일청구권을 아예 포기해 버렸습니다. 문재인의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발언으로 인해서 빡친 아베가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보이콧할 것이라는 제 예언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4년 동안 열심히 훈련받은 우리 선수들의 인권을 개무시해 가면서까지 남북 단일팀 구성을 강행하는 빨갱이 독재자 문재인의 똥고집 때문에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주변 4강 지도자들이 모두 불참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북한과 함께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장준하 선생께서는 1975년 8월 17일에 포천 약사봉을 오르던 도중 발을 헛디뎌서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실족사하셨는데, 빨갱이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자객을 보내서 장준하 선생을 실족사로 위장해서 암살했다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에 생긴 움푹 패인 흔적은 망치로 머리를 맞아서 생긴 것이 아니라,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도중에 뾰족한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서 생긴 것입니다. 빨갱이들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장준하 선생마저 박정희 대통령을 깎아내리기 위한 시체장사 소모품으로 악용하는 시간증(Necrophilia) 환자들입니다. 다만, 만약 장준하 선생께서 대통령이 되셨다면 약사봉에 오르실 일이 없었을 것이고, 조금 더 오래 생존하셨을 것입니다. 장준하-김영삼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재선에 성공했을 것입니다.

이인수 박사는 자유당 내에서 한나라당 대표 시절의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1973년 대한민국 제 8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이인수-안호상 후보와 민주당의 김영삼-이철승 후보가 맞붙어서 김영삼-이철승이 대한민국 제 8대 정-부통령이 되었을 것입니다. YS는 뚝심은 있었지만, 경제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1970년대는 석유 파동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어려웠던 시대입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제 1차 석유 파동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박정희 집권기에 IMF 원흉 김영삼이 집권했다면 국가 부도 사태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월남파병-월남특수는 그대로 진행되었을 것이고, 박정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나치즘 신봉자였던 장준하 선생은 경부고속도로-포항제철을 건설했을 것이고, 이승만 대통령이 깎아내렸던 김구 선생을 복권시켰을 것입니다. 즉, 장준하가 '민주화된 박정희'의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만 김영삼 대통령은 제 1차 석유 파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잃고 재선에 실패했을 것입니다.

1977년 대한민국 제 9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이인수-안호상 후보와 민주당의 김영삼-이철승 후보가 맞붙어서 자유당이 승리했을 것입니다. 1931년 9월 1일생으로, 전두환 대통령과 동갑인 이인수 박사는 46세의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을 것입니다. 북진통일이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은 미국처럼 같은 극우 정당인 자유당과 민주당의 양댱 체제로 갔을 것이고, 다만 민주당은 세월이 흐르면서 성향이 중도적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부통령제는 계속 유지되었을 것입니다. 이인수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후광에 힘입어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을 것이고, 제 2차 석유 파동을 극복하고 3저 호황에 힘입어 경제를 살렸을 것입니다. YS는 이회창, 이명박, 홍준표, 이완구, 김문수, 서청원, 안희정, 안상수, 심재철, 조원진, 이인제, 김기춘 등과 같은 인재들을 민주당에 대거 영입시켰을 것이고, 이들을 통해 정계 복귀를 노렸을 것입니다.

1985년 대한민국 제 11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안호상-박철언 후보와 민주당의 이철승-이회창 후보가 맞붙어서 자유당이 이겼을 것입니다. 안호상은 환빠들의 代父이자 일민주의의 창시자로, 나치를 옹호하던 전형적인 극우 파시스트입니다. '6공 황태자' 박철언은 노태우 정권의 2인자로, 북방정책의 입안자입니다. '안호상 대통령'과 '박철언 부통령'은 북방정책을 통해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하고 UN에 가입해서 대한민국의 활동 무대를 넓혔을 것이고,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을 것입니다. 안호상 박사의 사상은 박정희-전두환 대통령과도 유사합니다. 안호상이 전두환-노태우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안호상 박사 역시 프로 스포츠 산업과 포르노 산업을 집중 육성했을 것입니다.

1980년 5.18 광주폭동은 잠수정 타고 몰래 들어온 북한 특수군 600명과 공작조 600명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 파괴를 목적으로 일으킨 무장폭동이었습니다. 북진통일이 되었으면 북한이 없으니 당연히 5.18이라는 사건 자체가 없었겠지요. 5.18 세력은 386 주사파, 즉 종북좌파 세력의 뿌리입니다. 그래서 지만원-김대령 박사를 비롯한 애국우파 지식인들이 5.18 광주폭동 진상규명을 위해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종북세력의 뿌리인 5.18 세력을 뿌리 뽑아야 종북세력을 척결하고 자유통일을 이룩할 수 있거든요. 이게 일베안티님의 질문에 대한 제 답변입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 반공법이 제정되어 김일성을 옹호하고 인공기를 흔드는 인간들은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를 찬양하거나 하켄크로이츠를 흔들면 反나치법 위반으로 처벌받습니다. 우리도 통일이 되면 반공법을 새로 만들어서 북괴 김씨 일가에 대한 찬양과 인공기 사용을 법으로 금지해야 합니다. 1993년 대한민국 제 13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박철언-박준규 후보와 민주당의 이철승-이회창 후보가 맞붙어서 민주당이 이겼을 것입니다. 이철승은 해방공간에서 극우 테러단체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던 반공주의자였습니다. 이승만-장준하-김영삼-이인수-안호상-이철승은 반공주의자이면서 동시에 혐일주의자였기 때문에, 대한민국과 일본은 계속해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나갔을 것입니다. 김영삼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이철승이었다면 태국발 세계 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처해서 국가부도 사태를 막았을 것입니다.

2001년 대한민국 제 1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박철언-허태열 후보와 민주당의 이회창-이명박 후보가 맞붙어서 자유당이 이겼을 것입니다. 박철언-허태열 콤비는 대한민국을 무난하게 잘 이끌어 나갔을 것이고, 한일수교는 이때쯤 돼서야 이뤄졌을 것입니다. 문제는 김대중과 같은 부류의, 인생 자체가 사기인 희대의 사기꾼 이명박입니다. 2009년 대한민국 제 16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허태열-이우현 후보와 민주당의 이명박-홍준표 후보가 맞붙어서 민주당이 이겼을 것입니다. 다만 이명박은 5,000년 역사상 최악의 쓰레기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고, 각종 삽질을 벌이다가 1년도 안 돼서 탄핵당하는 불명예를 얻고 감옥에 갔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명박은 반드시 감옥에 가야 합니다. BBK와 다스, 그리고 도곡동 땅은 100% 이명박의 것입니다. 이명박의 추악한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이명박을 감옥에 집어넣으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했으나, 쥐새끼처럼 얍삽한 이명박은 그때마다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왔고, 조중동을 비롯한 선동 언론들과 정치 검찰들을 매수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구속시키고 반기문, 홍준표, 이재오 중 한 명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다가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 넘어졌습니다. 다스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는 증언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고, 이명박 최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습니다. 문재인은 이번 기회에 이명박을 반드시 감옥에 쳐넣어야 합니다. 다만 문재인도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애국우파들은 문재인 특검법을 발의해서 이명박과 함께 문재인도 감옥에 쳐넣을 것입니다. 적어도 이명박만큼은 문재인 정권의 보수우익 세력에 대한 정치보복을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명박은 박근혜 대통령 사기탄핵을 주도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명박 패거리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하고, 대한민국 보수우익 세력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박근혜 정신을 계승한 대한애국당을 중심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2010년 대한민국 제 17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허태열-이우현 후보와 민주당의 홍준표-김문수 후보가 맞붙어서 민주당이 이겼을 것입니다. 홍준표-김문수는 이명박과는 달리 청렴하기로 유명합니다. 홍준표-김문수는 재선에 성공했을 것이고, 지금쯤 임기가 거의 끝나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2018년 대한민국 제 19대 정-부통령 선거에 출마한 자유당의 김진태-윤상현 후보와 민주당의 안희정-이재명 후보가 열심히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안희정-이재명은 역대 민주당 정-부통령 선거 후보들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후보가 되었을 것입니다. 김진태-윤상현(자유당)과 안희정-이재명(민주당) 중에서 누구를 택하실지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북진통일이 되었다면 정치적 측면에서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발달하고, 경제적으로는 1인당 GDP가 5만 불을 넘고, 외교적으로는 미중러일의 4강과 당당히 맞짱 뜨는 초강대국이 되고, 군사적으로는 엄청난 항공모함과 이지스함들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군사강국이 되고, 문화적으로는 한류열풍이 더 널리 뻗어 나갔을 것입니다. 저는 뮤지션이 꿈인 사람이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구속 사태 이후 급속도로 좌경화되어 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까워서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가시밭길을 택했습니다. 북진통일이 되었다면 저, 레이디 영욱은 정치에 별로 관여하지 않고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음악만 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기본적인 애국심과 애족심은 가지고 있었겠지요.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미완으로 남긴 선진화와 자유통일이라는 과업을 완성할 강력한 애국우파 지도자가 나와야 할 때입니다. 저는 김진태, 조원진, 김학철, 이완구 중 한 명이 차기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창 올림픽을 평양 올림픽으로 만들려는 문재인 좌파독재 정권의 음모는 반드시 저지되어야 합니다. 애국시민 여러분, 우리 모두 태극기 시민혁명으로 문재인-김정은 좌파독재 정권을 몰아내고 선진화-자유통일 시대를 열어 나갑시다. 가시밭길로 가라! 고통의 칼날에 서라! 동지들이여, 두려워 마라! 우리가 반드시 이긴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대한민국 만세!

2018.01.22.
레이디 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