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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B-47 Stratojet에 대해 써봄. 출처는 B-47협회랑 에어벡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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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첫 제트전략폭격기 사업은 무려 1943년에 시작됐고, 3개의 회사가 44년 1월부터 개념안을 내놓았으며, 1947년에 첫 비행을 하였다. 한창 세계대전 중일 때 시작해서 종전 2년 뒤 결과물이 나온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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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제트전략폭격기의 개념안들은 기존 직선익 프로펠러기 형태에서 엔진만 터보젯으로 바꾼것이었다. 보잉의 경우 B-29의 크기를 축소해 만드려했다.



(3) 사업에 참여한 회사는 노스 아메리칸, 컨베어, 보잉이었고, NASA의 전신인 NACA가 풍동 테스트를 하였는데 전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4) 종전 후, 보잉의 공기역학 엔지니어 조지 샤이렐은 기술조사원으로서 독일로 가게 되는데 여기서 얻은 후퇴익에 대한 데이터가 폭격기 개발에 큰 도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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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B-26을 개발한 마틴사도 중간에 제트폭격기 사업에 끼어들어 총 4개 회사가 경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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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보잉이 처음 제시한 설계안은(Model 424라 불림) 항력문제가 있었고, 엔진을 동체에 파묻은 수정안인 Model 432에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 후로 후퇴익을 도입하는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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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보잉은 동체에 엔진을 파묻고 후퇴익을 도입한 Model 448을 제시하지만 공군에서 강력히 거부하였다. 그 이유는 엔진이 화재를 일으키면 직접적인 위험을 끼칠 수 있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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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보잉은 다시 날개에 엔진을 달기로 하지만 또 다시 항력 문제에 부딪혔다. 그래서 두개의 엔진을 하나의 외피에 넣고, 그 외피를 매끈한 모양으로 다듬는 것으로 어느정도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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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보잉의 수정된 설계안을 미군이 만족해 했지만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랜딩기어 배치였다. 새 폭격기는 고속기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날개가 얇아 배치가 불가능 했다. 그래서 자전거식 랜딩기어를 고안해 내는데 동체에 직렬로 기어를 배치하고 좌우 균형을 엔진포드 내부에 넣은 작은 기어로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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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런 랜딩기어 배치는 이륙시 기수를 드는것이 매우 어려웠는데 보잉은 그냥 비행기가 지상에 있을 때 기수를 든 상태로 있도록 만들어 해결했다.



(11) 보잉은 폭격기의 항속거리를 늘리기 위해선 날개 끝을 연장하면 효과가 있다는걸 알았고, 그래서 주익이 더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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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946년, 보잉의 설계안이 XB-47 스트라토젯이란 이름의 시제기로 만들어졌으나 많은 사람들은 비행기가 비현실적이며, 실험용에 그칠거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너무 미래적인 외관 때문.



(13) 반면 개발에 참여한 보잉 관계자들은 항공기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며 흥분했다.



(14) 스트라토젯의 첫 비행은 47년 12월 17일에 이루어졌고, 플랩이 작동하지 않아 비상유압을 돌린걸 제외하면 아주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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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파울러 플랩이라고 불리는 스트라토젯의 고양력장치는 면적과 캠버를 동시에 키우는 매우 효율적인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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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스트라토젯은 전투기만큼 빠른 속도를 가졌기 때문에 양산형에서는 별다른 방어무장 없이 50구경 두정만 달기로 한다. 이는 나중에 20mm로 개량된다.


(17) 스트라토젯은 연료를 B-29의 3.4배인 17,000갤런이나 탑재하여 연료균형이 매우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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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초기 터보젯은 저속에서의 추진력이 양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륙용 로켓 추진체계를 스트라토젯에 내장하여 사용했다. 근데 이게 연료탱크와 가까워서 위험한데다가, 다 쓰고나면 쓸모없이 무게만 차지해서 꽤나 욕을 먹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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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스트라토젯엔 활주로에 접근할때 쓰는 감속 낙하산이 별도로 있었는데 이는 착륙 상황에서 출력을 최대로 하면서도 낮은 속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엔진출력을 낮추면 다시 올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긴급시 재상승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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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스트라토젯은 특이하게도 폭격기이면서 전투기마냥 탠덤식 조종석을 갖추고 있었다. 폭격수를 겸하는 항법사는 기수끝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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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스트라토젯은 피치업이라는 기수가 일정 상황에서 과도하게 들리는 현상이 있었는데 이는 날개 끝 실속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래서 보잉은 날개 끝에 와류 발생기를 설치하여 공기의 박리를 억제했다.



(22) 테스트 파일럿 로빈스는 처음에 스트라토젯을 타기전, 신에게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나중엔 이 비행기를 특별하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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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스트라토젯의 속도계를 조정하기 위해 P-80이 추격기 역할을 한적이 있는데 도저히 폭격기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추격기 조종사는 척 예거였으며 그는 폭격기와 폭격기 조종사를 무시했기 때문에 자존심이 꽤나 상했다고..



(24) 이처럼 스트라토젯은 큰 잠재력을 가진 폭격기였지만 몇몇 보수적인 군 장성들이 도입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잉은 울프라는 장군을 직접 초청하여 XB-47 시승을 제안했고 그 후 1948년 9월 3일, 공군은 스트라토젯을 구매한다.



(25) 첫 도입된 스트라토젯은 B-47A로 주로 공군의 운용, 시험 평가용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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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XB-47은 보잉의 시애틀 공장에서 생산됐지만, B-47A 이후의 모든 스트라토젯은 캔자스주에 위치한 정부소유 공장에서 조립됐다. 그 이유는 시애틀이 소련의 폭격에 너무 취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27) B-47A의 테스트를 마친 공군은 피드백을 반영한 B-47B를 양산하기 시작했고, 최대한 빠르게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록히드, 더글라스사와 생산 계약을 한다.



(28) B-47B의 폭탄창은 B-47A나 XB-47보다 오히려 작아졌는데 핵 폭탄이 점점 소형화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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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공군은 공중에서 많은 연료를 빠르게 주입할 수 있는 붐 방식 프로브를 B-47B 기수에 장착했기 때문에 유리 노즈 콘을 삭제하고 대신 몇개의 창문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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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B-47B부터는 사출좌석이 없어지고, 승무원들이 직접 메인도어로 탈출하게끔 바뀌었다. 이에 대해 조종사들은 매우 탐탁치 않게 생각했는데. 실제로 B-47 프로그램 책임자인 조지 마틴은 로빈슨을(테스트 파일럿) 불러 사출석을 제거하라는 공군의 요구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문제 생기면 공군탓하라고..



(31) B-47B의 개량형인 B-47E는 엔진추력이 대폭 강화되고, 워터 인젝션이 추가된다. 이 워터 인젝션은 압축기에 물과 메탄올이 섞인 용액을 뿌려 과열을 막아 더 큰 연소도 가능하게끔 만들었다. 대신 엄청난 검은 매연을 뿜어내고, 우뢰같은 소리를 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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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추력증대로 이륙용 보조로켓의 필요성이 줄어들게 됐는데, 비상출격이나 훈련때는가끔 썼기 때문에 외장형으로 바꿔서 쓰고 난 뒤 버릴 수 있었다.



(33) B-47B의 후속작이 바로 B-47E가 된 이유는 B-47C와 B-47D가 시험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기종이고 양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4) B-47E는 총 1,341대가 생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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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스트라토젯은 정찰형인 RB-47E로도 개조되었다.



(36) 스트라토젯은 살짝 조종간을 움직이는것만으로도 기체가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에 은근 전투기를 모는듯한 느낌을 줬다고 한다. 특히 특유의 물방울형 캐노피는 그런 느낌을 더욱 향상시켜줬다고.



(37) 스트라토젯의 물방울 캐노피는 시야가 좋았지만 날씨가 맑은 날엔 조종석을 Hot box로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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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B-47은 최소간격이륙이라는 훈련을 하곤 했는데 이는 이륙시 폭격기끼리 15초 간격을 유지해 최대한 많은 수를 빠르게 이륙시키기 위한 전술이었다. 다만 전방 폭격기가 후방 폭격기에게 난류와 매연을 뿜어대서 상당히 위험했다고..(짤은 B-52 최소간격이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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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B-47은 저고도 폭격 훈련을 많이 했다. 저고도에서 날다가 표적 근처에 이르면 급상승을 하면서 핵을 투하하는 방식. 이는 구조에 무리를 주어 몇번 추락사고가 있었고, 그래서 날개 결합을 강화한다.



(40) B-47의 정찰형인 RB-47 계열은 자주 소련영토를 침범했고, 꽤 많은 손실을 입었다. 대신 모든 작전이 기밀이라 사망한 승무원의 가족들은 자신의 아버지, 남편, 아들이 어디서 왜 죽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41) 실제로 무르만스크 영공을 침범한 RB-47이 MiG-17에 공격당하여 핀란드를 거쳐 겨우 돌아온적이 있는데 핀란드는 이를 매우 크게 보도 했으나, 미국은 그 사실을 부인 하였다.



(42) 수소폭탄의 개발로 미공군은 소수의 B-47B에 폭탄을 탑재하여 무인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야말로 거대한 순항 미사일인셈.. 하지만 검토해본결과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았고, 곧바로 취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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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B-47은 굉장히 다양한 용도로 쓰이거나 쓰일 뻔했는데, 기상 관측기, 공중 급유기, 전자전기 등 꽤나 많다. 심지어 초음속 대지 순항 미사일인 라스칼의 플랫폼으로도 개조하려 했었다.



(44) B-47의 마지막 비행은 1986년 6월 17일이다.




글은 여기까지고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다음편은 


민항기나 Fw 190 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