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규하 前 대통령
최규하 전 대통령은 1919년 7월 16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으며 1941년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영문학과를, 1943년 7월 만주 국립대동학원을 졸업하였으며
광복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가 되었으나 1946년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옮기면서 농림행정에 종사, 1951년 농림부 농지관리국장 서리를 거쳐 외무부
통상국장이 되면서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1975년 국무총리에 발탁된다.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사건이 터진다

†사진 : 팔목과 가슴에 총격을 당해 사망한 차지철 경호실장
†사진 : 주방에 있던 경호원들이 총기난사로 인해 사망한 모습
10.26 사태가 터진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찬도중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에게 총격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전국이 혼란해지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사망했다.
(10.26 사태 또는 궁정동 사태라고 불리며, 이날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좌좀들은 10.26 하면 부정선거를 먼저 떠올린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었고,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간선(간접선거)으로 정식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사진 : 1979년 12월 21일 최규하 대통령이 10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 대통령 취임식, 최규하 대통령과 영부인 홍기 여사가 앉아있다.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지만 최규하 대통령의 임기는 길지않았다. 바로 그해 12.12사태가 터지고
바로 다음해인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에서 전대갈이 무력으로 진압할동안 아무런 통치권도 행사하지 못헀다.
결국 같은해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사임을 표하고 하야한다.
그리고 최규화 전대통령은 1981년부터 1988년 까지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지냈으며,
1991년부터 1993년까지는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의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6년 10월 22일, 자택에서 노환으로 88세 나이로 별세하셨다.



†사진 : 2006년 10월 26일 최규하 前 대통령의 국민장이 엄수되고 있는 현장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前 대통령들이 조문을 했다)
청렴, 검소, 절제
최규하 전 대통령은 청렴함으로 유명하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가옥은 더더욱 최규하 전 대통령의 청렴함을 잘 드러낸다.
가옥 어디에도 사치라고는 찾아볼수 없으며 쓸만한 것이 집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최규하 전 대통령부부는 항상 "살 수 있을 정도면 된다"며 늘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가옥 내에 남아있는 유물들을 보면
오래전부터 검소함을 유지해왔던것임을 알수있다.
†사진 :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저, 지금은 서울시가 매입해 시민들에게 공개되있다.
†사진 :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서재책상

†사진 : 지하 부엌에 지극히 검소함이 느껴지는 주방도구들
최규하 대통령은 아마 역대 대통령중에 유일하게 비난을 받지않는 대통령일것이다.
아마 임기가 워낙 짧아서 뭐 비판 받을것도 없기도 하지만, 외교관에서 계속 승진하여 국무총리까지 올라갔고
항상 청렴함과 검소함을 유지하며 살아갔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중 나쁜이미지는 하나도 없는 대통령일것이다.









전대갈의 야욕에 희생당한 故 최규하 전 대통령의 넋을 기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