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 5.18당시 전남대학교 X대 부회장급 간부.


때는 5월 중순이었음.

 

아버지 증언에 의하면  전남대 후문부터 살레시오 고등학교까지 시위. 경찰은 몸으로 밀고 학생들은 돌팔매질하며 버팀.

 

 

그런데 아군이 던진 돌에 맞아서 아버지 머리에 혹나고 피남...  상처가 곪고 그랬는지

 

 

자취방에 돌아와서 하루 시위 안나가고 쉼. 


근데 상처가 안나아서 누워있다보니 냉정을 되찾게됨. 그때 번쩍 스치는 생각이 " 공수부대 출동한다는 썰이 있는데 이러다 X되는거 아닐까?  "


용단을 내린 아버지는 서울에 뭐 좀 알아보러 간다는 핑계로 그날 저녁으로 할머니께 말하고 바로 서울로 탈출.  당시 경찰 수배상태이기도 했음. ㅋㅋ .


청량리에서 3달동안 숨어지내다가 결국 불심검문에 잡혀서 군대 입갤

 

그리고 나중에 5.18 유공자 선정한다고 광주에 광풍이 불어닥침.

 

 

아버지 친구들도 웬만한사람 다 유공자 선정되서 돈받아감.

 

 

아버지도 도전했으나 사태 전에 서울로 입갤한게 걸림 ㅋㅅㅋ 그래서 유공자는 선정 못되었으나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돈타먹는거 보고 참 어이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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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광주교대생이던 우리엄마

 

 

이미 5월 초순부터 시위가 과격해지고, 중순쯤 되니까 시위대가 집집마다 쐬파이프로 문뚜드리면서 광주사람들 다죽어나간다고

 

 

나오라고 지랄염병.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화순으로 탈출을 계획함.

 

 

탈출한 시기가 5월 17일경이었는데 이미 광주 시내는 양아치들이 서있는 버스 탈취해서 그안에서 술판벌이고 떼씹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함

 

 

여차하면 다 찔러죽인다고 하는말 듣고 너무 무서워서 걸음을 재촉함

 

 

겨우 빠져나가고 보니 광주 외곽 통제됨.. 이때부터 진압 시작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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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이건 고등학교때 담임선생 이야긴데

 

 

5.18때 제자 몇명이 등교를 안해서 (우리학교는 광주와 나주 길목에 있어서 수업을 계속했다고 함..)

 

 

친구들한테 수소문해서 알아보니 시위대에 끌려갔다고 함..

 

 

자전거 타고 눈썹 휘날리며 시위대 찾아가보니까 고딩들 머리띠두르고 염병중 ㅋㅋ

 

 

그래서 눈물로 빌어서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사정해서 겨우 다시 데리고 왔다고 함

 

 

 

 

 

그때 나는 세상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