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를 걱정하는 시민을 위한 ‘나베의 난’ FAQ >>

(※‘경고 : 분노가 유발될 수 있습니다. 무지 긴 글입니다)
 

지난 11월 29일 본회의가 열리기 전에 자한당이 상정된 199개 법안 전체에 대한 필리버스터 신청을 보고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민식이법’) 처리만을 위한 원포인트 국회가 어려운 이유를 쓴 글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고 공감도 해주셨습니다(※‘민식이법’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을 개정해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를 낸 가해자에게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이 글에서는 아이 이름보다는 법안의 핵심을 요약해서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으로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페북이나 트위터에, 글이 옮겨진 딴지일보·클리앙 등 커뮤니티 게시판에 설명이 미진하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제 설명도 부족했지만, 법을 잘 지키는 시민은 법의 맹점을 악용한 지능적 사기범의 교묘한 범죄수법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앞글과 중복도 되지만, 여러분께서 제기하신 의문이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지적까지 반영해서 자한당의 ‘범죄 수법’에 대해서 질문답변 형식으로 보충해서 다시 올립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페트3법 ‘강행’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라는 자한당의 주장 자체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패트3법의 내용과, 패트 지정부터 본회의 부의까지의 과정에 대한 자한당의 주장을 검토 비판하려면 별도의 글이 필요합니다.



<11월 29일 본회의가 무산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된 것인가요?>

자한당 스스로도 199개 법안 전부를 대상으로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조치가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법안만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것으로 조정할 수는 있습니다, 사태가 조금 변했지만, 대립 구도는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재현될 수 있기 때문에 자한당의 ‘수법’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베의 난’이란 무엇입니까?>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가 패트3법 등을 저지할 ‘최선의 선택’ ‘신의 한수’라고 자화자찬하면서 199개 법안 전부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데 따른 국회 파탄, 국난(國難)을 초래한 사태를 말합니다. ‘나베’는 ‘나경원 베스트초이스’의 줄임말이고(이 단어에서 특정국가·특정인을 연상하신다면, 저의 의도는 아닙니다!),
‘나베의 난’은 ‘나경원의 베스트초이스가 야기한 국회 난리’의 줄임말입니다.



<11월 29일 본회의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 처리가 무산되었습니다. 자한당은 이 법안을 첫 번째 안건으로 처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본회의에 응하지 않은 것은 민주당이고, 결국 민주당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자한당의 주장은 200개(원래 상정된 199개 법안 +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를 장악하고 인질극을 벌이는 중에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이란 인질 처리가 무산되자 범인이 상대편이 협상을 제대로 응하지 않아 그런 것이라며 책임을 돌리는 경우와 똑같습니다. 자한당은 갑자기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을 추가 인질을 잡아 난동극을 벌였고, 인질 석방의 조건으로 1개를 풀어주는 대신 199개는 그대로 장악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 것입니다. 여기서 ‘인질’은 법안 1개가 아니라 200개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자한당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일방적인 주장 아닙니까? 정반대로, 민주당이 국민적 관심사인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을 인질로 자한당을 압박한 것이라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주장입니다.

사태를 정확히 설명하려면 좀 길어집니다. 지루하실 수 있겠지만 일독을 부탁드립니다.

1) 국회 본회의는 회의가 열리기 전에 여야 합의로 처리할 안건을 사전에 정합니다.
2) 11월 29일 본회의에는 199개 법안이 안건으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 199개 법안에는 공수처법·선거법 등 패트3법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또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3)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은 본 회의가 잡힌 이후에 법사위를 통과했습니다. 여야가 합의하면 추가로 상정할 수 있습니다. 나 대표는 갑자기 패트3법을 상정 안하는 것을 전제로 이 법을 추가로 상정하되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지 않을 테니 우선 처리하자고 제안합니다.(19대·20대 국회 8여년을 통 틀어서 수천 건의 법안을 처리하면서 단 한번만 실시된 필리버스터를 안 하는 것을 무슨 대단한 자비를 베푸는 듯 하는 태도부터 가소롭습니다.)
4) 그 다음부터가 ‘나베’의 암수(暗數)입니다. ‘나베’의 요구대로라면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을 의결한 후부터 199개 법안의 필리버스터가 시작됩니다. 필리버스터는 법안 1개씩 안건 단위로 실시되고, 토론이 종료된 후에는 찬반 투표가 실시됩니다. 199번의 필리버스터와 199번의 투표가 행해지는 것입니다. 12월 10일까지 하루 24시간 내내 토론이 연속됩니다.
5) 인질 사건에서 범인은 인질석방 조건을 겁니다. ‘나베’가 내건 조건은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 처리와 11월 29일부터 12월 10일(정기국회 종료일)까지 12일, 280여 시간 동안의 국회 점거를 맞교환하자는 것입니다.
6) 민주당은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만 처리한다면 즉각 본회의를 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협상 조건이 199개의 필리버스터를 실시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7) 왜냐하면 그것은 ‘나베’의 추악한 의도에 굴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회의 모든 일정이 마비가 되고, ‘유치원 3법’ 등 여러 민생·안전 법안 처리가 무산되며, 2020년 예산안도 불투명해지며, ‘패트3법’은 상정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또 국회가 정상화된다면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은 12월 10일까지 정기국회 회기 중에 언제라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8) 따라서 자한당이 민주당이 29일 본회의에 응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어린이 보호구역 특가법’ 미처리를 민주당 탓으로 돌리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고 후안무치한 태도입니다. 애초에 인질 난동을 벌였고, 터무니없는 협상 조건을 건 것이 본질입니다. 자한당은 공감능력도, 수치심도, 죄책감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소시오패스라고 한다면, 반정치적 집단 장애를 ‘폴리티패스’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한당은 ‘폴리티패스’ 단계까지 왔습니다.



<필리버스터가 그렇게 악용될 수 있다면 강제로 종결될 수는 없나요?>

있기는 합니다. 더 이상 토론에 나설 의원이 없거나, 회기가 종료되거나(이번 경우엔 12월 10일), 재적의원 3/5 이상(현재 177명) 이상의 요구로 중단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 정국에서 민주당이 ‘종결 연대’를 결성해서 177명을 끌어 모으기는 쉽지 않고, 종결동의안 표결도 199번 실시해야 합니다.



<필리버스터는 국회법에서도 보장하는 소수당이 다수당의 횡포를 저지하는 정당한 수단입니다. 정당한 방어수단을 행사하는 데 왜 비난합니까? 하물며 이종걸 의원 본인은 12시간 31분이라는 최장시간 필리버스터 기록도 있습니다. 필리버스터를 가지고 내가 하면 토론이고 남이 하면 방해라는 ‘내토남방’과 같은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2016년 필리버스터는 단일한 법 하나로 192시간을 토론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단순히 계산한다면 199회의 필리버스터는 38,208 시간, 1,592일, 4년 3개월 이상이 필요합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국회를 마비시키겠다는 악질적인 의도 말고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테러행위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인권 침해 등에 악용될 수 있는 ‘테러방지법’에 대한 2016년 필리버스터와 이번 199개 법안 필리버스터는 신청한 경위, 이유, 대상, 목적, 필요성과 실익의 측면에서 완전히 다릅니다.

신청 경위를 비교하면, 2016년 필리버스터는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 속에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란 편법을 썼기 때문이고, 2019년 필리버스터는 199개 법안의 대부분이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해서 정상적으로 상정되었는데도 신청되었습니다.

실시 이유를 비교하면, 2016년 필리버스터는 악법인 테러방지법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한 이유라면, 2019년 필리버스터는 만장일치된 법들을 왜 대상으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실시 목적을 비교하면, 2016년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 처리를 저지한다는 직접적이고 한정적인 조치라면, 2019년 필리버스터는 199개 법 중의 극소수 법과, 안건에는 아예 없는 ‘미래에 상정될’ 법들의 처리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실시 대상을 비교하면, 2016년 필리버스터는 여야간의 시각 차이가 있는 국가안보·인권과 관련된 법안을 잡은 것이라면, 2019년 필리버스터는 무쟁점 법안, 만장일치 법안 등까지 마구잡이로 확대한 것입니다.

필요성과 실익을 비교하면 2016년 필리버스터는 반드시 필요했고 그래서 높은 국민적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면, 2019년 필리버스터는 오로지 정기국회 종료 시까지 시간끌기를 통한 정략적 목적 달성 외에는 어떤 국민적 필요성도 실익도 없기 때문에 여론의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나베의 난’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일으킨 것입니까?>

‘나베의 난’의 도발에는 여러 목적과 계산이 담겨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목적은 ‘유치원 3법’의 표결 처리를 막고, 패트3법을 20대 국회에서 무산시키는 것입니다.

한국 국회는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법안을 비롯한 대부분의 안건은 상임위에서 집중 심사가 이뤄지며, 본회의는 절차적 의미가 강합니다. 11월 29일에 상정된 199개 법안은 반나절이면 전부 처리됩니다.

민주당은 일단 199개 법안을 당일 처리한 후, 12월 초순에 열리는 다음 본회의 때 패트3법을 상정하고,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더라도 패트3법을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11월 29일 본회의를 199번의 필리버스터를 시작한다면 아마도 절반도 못가고 정기국회는 종료될 것입니다. 그러면 의안번호가 197, 198, 199로 맨 끝 3개에 배치된 유치원3법은 본회의에 오르지도 못합니다. 표대결을 한다면 한유총 편을 들도록 압박을 받고 있는 황교안·나경원 두 분과, 자한당으로서는 정말로 바람직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또 이번 정기국회만 아니라 20대 국회 종료시까지를 계산해서 패트3법을 저지한다는 목적도 있습니다. 11월 29일 본회의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면 199개 법안은 처리되고, 12월 초순 쯤에 패스트트랙 3법이 상정되었을 것입니다. 그 때 패스트트랙 3법 중 한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해서 저지한다고 해도 국회법 제106조2의 ⑧항에 따라 바로 다음에 소집될 임시국회 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방법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패트3법의 본회의 상정을 막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한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선거법 상정을 원천봉쇄해서 선거법 처리에 두 번의 임시국회가 필요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자한당은 표의 등가성을 높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악몽이 연동되나 봅니다. 선거법은 선거구 획정과 유권자 명부 정리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정되어도 즉각 시행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설사 선거법 개정안이 처리되더라도 21대 총선에서는 적용되지 못하게 하고, 21대 총선에서 승리해서 민의를 이유로 재개정하겠다는 계산입니다.

또 부차적이지만, 아마도 개인적으로는 가장 직접적인 목적일 텐데, 나경원 대표가 12월 10일 자한당 의원총회에서 두 차례 박수를 받고 싶은 계산 때문입니다. 즉 12월 10일 정기국회가 종료되면서 필리버스터에 성공했다는 축하의 박수와, 이어서 만료된 원내대표 임기를 총선 때까지 연장하는 만장일치 박수를 받고 싶어서 저렇게 무리를 하는 것입니다.



<자한당은 앞으로도 필리버스터를 악용할 것 같습니다. 이를 원천적으로는 막을 수는 없나요?>

‘동물 국회’를 막기 위한 ‘국회선진화법’이 ‘식물 국회’의 부작용을 낳은 것처럼, 필리버스터는 자칫 ‘소음 국회’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필리버스터의 본래 취지를 왜곡하고 국회를 마비시키는 데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국회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이 국회법 개정안을 가칭 ‘나베의 난 방지법’으로 부를 수 있겠습니다.

필리버스터를 규정한 현행 국회법 제106조의2의 마지막 항 뒤에 다음의 내용을 항으로 으로 추가하는 것입니다.

“해당 회기 중에 제85조의2, 제85조의3에 의해 자동으로 부의되는 안건의 처리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나, 또는 여야만장 일치로 상임위원회에서 의결된 후 본회의에 부의된 등 무제한 토론이 필요한 상당한 이유가 없는 안건에 대해서는 무제한 토론을 신청할 수 없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