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버스의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에 조연으로 등장한 괴수 라돈.

마하 7의 속도로 비행하며 소닉붐으로 마을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전투기 편대를 하나씩 작살내는 장면도 인상적이였지만 그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라돈의 처세술이였다. 처음에는 자기보다 더 큰 기도라에게 겁없이 덤벼들었으나

얄짤없이 털린 후에는 언제 덤볐냐는 듯이 머리를 숙여 복종의 자세를 취했고

고질라가 기도라를 털어버린 후에는 금새 태세를 바꿔서 고질라에게 복종한다.

이를 지켜본 관객들의 평가는 "정치질하는 괴수" "처세술의 달인" 이라는 것.



처세술이란 인간관계에서 손해를 적게 보는 기술을 뜻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자연히 서열과 파벌이 정해지기 마련인데 이같은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응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립하고 원만한 관계를 다져나가는 이들을 향해서

통상 '처세술이 좋다'라고 한다. 또 다이어트와 성형수술, 코디네이션으로 대표되는

이미지 관리 역시 처세술로 평가받을 수 있겠다. 어차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니까.



그러나 일반적으로 '처세술의 달인'이라고 하면 간신배나 사기꾼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한 번 당하게 되면 잘못한 것도 없이 왕따가 되거나 성과를 빼앗기고 쫒겨나기까지 한다.

처세술의 달인들은 실제로 가진 능력이 어떻든 간에 출세가 빠르고 정치판에서 끈질기게

그 생명을 유지했으며 그런 이유로 인류 역사에서 처세술에 대한 수요도 꾸준하게 존재했다.

오늘은 소위 '처세술의 달인'들이 구사한 처세술이란 게 어떤 것이였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사진은 JP가 만돌린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장면이다.

5.16 군사정변을 통해서 정계에 진출한 JP는 중앙정보부장, 국무총리, 민주공화당 총재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신군부에 의해서 탄압받기도 하였으나 80년 대 말 정계에 복귀한

후로는 3당 합당, DJP 연합을 통해서 YS와 DJ를 권좌에 밀어올리며 킹메이커로 그 힘을 과시했다.

물론 양김과 비교하자면 JP는 본래 경량급이라서 직선제 하에서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오랫동안 중앙 정치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은 다음과 같다.



힘겹게 한계 중량을 들어올리고 있는 운동선수에게는 깃털만한 무게도 태산이 덮치는 것처럼 

버겁게 느껴진다. 그러니 막상막하로 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1인자가 되기를 꿈꾸는 자라면

JP가 어느 쪽에 붙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에 JP를 하대할 수 없다.

JP가 늘 자신이 가진 것보다 많은 몫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매커니즘에 기인한다.

판세를 읽는 절묘한 감각과 두 사람이 원하는 패가 내 손에 있도록 몰아가는 고도의 테크닉.

정치기술의 측면에서 보자면 예술의 경지다. 여기에 타이밍까지 적절하다면 그 파괴력은 배가된다.



JP는 캐스팅보터로서의 지위를 십분 발휘하여 YS와 DJ를 넘나들면서 요직을 맡아왔다.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한 3당 합당 이후 문민정부가 출범했을 때에는 민자당의 대표직을 역임했고

민자당 내 민주계에 의한 숙청이 시작되자 미련없이 떨치고 나와 자민련을 창당한 후

충청도 핫바지론을 앞세워 지선과 총선에서 일약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또다시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DJP 연합을 성사시킨 후에는 DJ를 권좌에 밀어올리고 본인은 국무총리가 되었는데

DJP연합의 약속에 따라서 정권의 절반은 JP의 몫이였다. 물론 3당 합당이든 DJP연합이든

JP는 늘 독일식 내각제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었으며 본인이 직선 대통령은 되지 못해도

일단 독일식 내각제 개헌을 하면 수상은 나의 몫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태우에게는 짤막하게 처세술 특강을 해준 적도 있다. 신군부에 의해서 감금된 JP에게

노태우가 찾아왔는데 공손한 태도로 사과하며 용서를 구하더라는 것. 이에 마음이 누그러진 JP는

"자네는 2인자구먼? 앞으로 전두환이한테 절대로 밉보이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서운한 일이 있어도 서운한 티를 내서는 안된다. 한 마디로 표정관리를 잘하라는 것이다.

띠꺼운 기색을 드러내면 즉시 이간질하는 세력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된다.

인내라는 건 참을 만한 일을 참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일을 참아내는 것이다."

라는 요지의 조언을 해주었고 노태우는 명심하겠다고 거듭 고개를 조아렸다고 한다.



이후 노태우는 5공화국에서 정무장관 - 체육부 장관 - 내무부 장관 - 민정당 대표로 성장했고

87년 민주화 이후로는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JP를 제외한 구 공화당 인사들 중에서 마지막까지 부귀영화를 누린 케이스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 자리에서 잘린 후 그동안 저질러놓은 짓이 많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외국으로 망명, 타지에서 조국과 대통령을 비난하다가 프랑스 파리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으며

차지철은 10. 26 사태로 인해서 불귀의 객이 되었고 김재규는 그대로 사형 집행되었다.

이후락의 경우에는 그나마 운이 좋았지만 그 역시 말년에 크게 고생하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2인자의 처신이라는 게 이토록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래 죽을 때까지 총리직을 맡았던 저우언라이.

개인적으로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좀처럼 적을 만들지 않는 인물이였으며

1인자인 모택동이 대약진 운동의 책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할 때에도

실각하지 않았다. 모택동이 병크를 터뜨릴 때마다 마오쩌둥의 진노를 사지않는 선상에서

최대한 커버하려고 했으며 문화대혁명이 발발했을 때에도 사병들을 동원해서

자금성, 포탈라 궁, 막고굴 등 중국 본토의 문화유산들을 지켜낸 바 있는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덩샤오핑이 집권한 후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내려가지 않았다.



물론 1인자인 모택동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보신감각을 발휘하여 금새 꼬리를 내렸다.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의 병크들도 처음에는 반대하였으나 모택동이 빡칠 것 같으면

아닥하고 이후의 혼란상을 수습하는 데에 주력했다. 까딱했다가는 류사오치나 펑더화이처럼

숙청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두고

달라이 라마는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적을 만들지 않는 부드러운 위선자" 라고 혹평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목격하고 당에 노선 변경을 촉구하는 내용의

편지 한 통 썼다가 모택동의 진노를 사고 조리돌림당하게 된 펑더화이.

한국전쟁의 영웅이였으나 그 최후는 비참했다.



류사오치 역시 대약진 운동을 비판하고 실용주의 노선을 주장했다가 모택동에 의해서

수정주의자로 비판받고 숙청당하였으며 이후 홍위병들에게 린치를 당해 비참한 최후를 맡았다.



덩샤오핑 역시 문화대혁명 때 수정주의자로 몰려서 실각했고 트랙터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처지가 되었다.

4년 동안 공장에서 좆뺑이를 치면서 정치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불평없이 한껏 몸을 낮추고

그 기간을 묵묵하게 버텨냈다. 평소 모택동의 신임을 얻고 있었고 모택동에게 결코 반기를 들지 않았으며

소련과의 수정주의 논쟁에서 마오주의를 선전하는 등 1인자에게 절대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적어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던 것. 모택동이 사망한 후에는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하게 된다.



처세술의 달인들이 가진 공통점이라면 '외유내강' 스타일이 많다는 것이다.

모택동 역시 생전에 덩샤오핑을 가리켜 "비단주머니 속에 바늘을 품은 자" 라고 평가한 바 있는데

이는 생각이 유연하고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한 덩샤오핑을 경계하는 발언이였다.

실제로 처세술의 달인들을 보면 분노나 슬픔같은 부정적 감정을 감추는 데에 능통하고

쓸데없이 적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이같은 인맥을 통해서 후일을 도모하는 경우가 많았다.



청문회에서 자신을 공격하고 망신을 준 박영선에게 먼저 다가가 공손하게 악수를 청하는 김기춘.

자기 속내를 100% 감출 수 있고 자기 속마음과는 정반대로 행동할 수 있는 내공을 가졌다는 것.

고령의 나이에도 정치권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비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병우는 김기춘에게 미치지 못한다.

최연소로 사시를 패스하고 검사로 부임한 우병우는 그 능력과 반비례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로 많은 적을 만들었다.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도

자신보다 늦게 들어온 후배라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반말을 하는 등.

그런 이유로 검사장 승진에서도 탈락했다는 일화가 있다.

타인의 원한을 산 자는 그 권력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격이 모나고 삐뚤어진 자는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토사구팽당하기 십상이다.

1인자의 입장에서는 능력이 있어서 기용하기는 하나 도대체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필요할 때만 써먹고 쫒아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 이와 관련해서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저서를 통해서 토사구팽의 원인은 쿠데타에 대한 우려 때문이며 이같은 토사구팽을

피하기 위해서는 공을 세우자마자 납작 엎드리거나, 아니면 1인자조차 건드릴 수 없는

권신이 되는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범려처럼 완전히 잠적해버리는 수도 있고.)



한신만 하더라도 출중한 군사력 능력에 비해서 처세술에 어두웠기 때문에

숙청을 당하고야 만 것이다. 처세술만 놓고 보자면 아주 빵점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자신의 언행이 타인의 감정과 생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고민 자체가 없었다.

한신 숙청에 관련된 인선만 봐도 한고제가 견제하고, 여후가 제거하고, 소하가 협력했으며

장량이 그 소하에게 상을 줄 것을 청하는 것으로 이 결단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즉 한신은 모두에게 찍혀있었다는 뜻이고 유방의 신하들 중 누구도 한신을 옹호하지 않았다.

회음후로 강등된 자신을 위로하고자 찾아온 번쾌를 두고 "내가 저런 놈이랑 동급이냐?" 라는 소리나 했으니까.

(역시 유방의 의심에 시달린 소하는 위기에 떨어질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서 살아났다.)



처세술에 능하려면 우선 인성이 좋아야 한다. 아무리 눈치가 빠르고 보신감각이 좋더라도

인성이 비열하거나 삐뚤어진 사람이라면 마냥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이완용만 하더라도 나라를 팔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듯 하였으나 이재명한테 칼빵맞고

평생 장애를 지닌 채 살아가게 되었다. 처세술의 기본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인데

타인을 원한을 쉽게 사는 자는 엄밀하게 말해서 처세술에 어둡다고 볼 수 있겠다.


한줄평

처세술은 인성이 뒷받침되어야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