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뮬리에다

게이샤 정보글이 베스트까지 가며 좋은 평가가 많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아주 약간 19스러운 우리나라 기생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한다

우리나라 기생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때 가장 유명했던 기생 4인방에 대한 얘기도 첨부했다



기생(妓生)은
풍류로 흥을 돋구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
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사는 매우 오래되서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백제 문건에 '기녀'에 대한 언급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러나 기생의 체계가 잡힌 것은 고려와 조선시대로
현재 우리가 잘 알고있는 기생의 이미지는 조선때에 확립된 거다

기생은
조선시대 5가지 신분 중 제일 낮은 천민계급이었지만
같은 천민이라도 기생의 등급에 따라 대우가 전혀 달랐다는 것이 특징이다

기생의 등급은 크게 3가지로

1패 기생
-가장 높은 등급의 기생으로 임금 앞에서 춤추고 노래가 가능했으며 매춘은 절대 금지

1패 기생은 비록 천민이라도 왕을 상대했기에
웬만한 상류층 양반들은 부르기는 커녕 구경조차 못할 경우가 많았다

웬만한 네임드급 사대부들이 아니면 1패 기생과 노는건 불가능

1패 기생의 노래실력 춤실력 서예실력 그리고 학문 깊이는 
어설픈 양반들보다 훨씬 출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매창불매음(賣唱不賣淫)
노래는 팔아도 몸은 팔지 않는다는 기생의 강인한 정조관념은
1패 기생에 어울리는 말이다


2패 기생
- 2패에서는 관기생과 민기생으로 다시 나뉘며 관기생은 영의정, 좌의정 이하 문무백관들만 접대했고
민기생은 일반 양반들을 상대했다
2​패 기생들도 원칙적으로는 매춘을 금지했으나 알게 모르게 알바식으로 하고 다녔다고 한다

여기까지
적어도 2패 기생들은 천민중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사회적 대우를 받았으며
기생청이라는 관기관의 관리를 받았다


3패 기생
- 가장 낮은 등급의 기생으로 일반 평민들을 상대로 노래와 춤을 추고 몸도 팔았다

본래 기생은 매춘과 관계없는 예술가 취급을 받았고
매춘부들은 일본처럼 유녀라고 불리거나 작부라고 불리며(술집작부라는 표현이 여기서 유래)
기생과 다른 생활을 했는데

3패 기생들은 기생이면서도 몸을 팔았기에 '창기'라고 불렸다

...

조선 초기 기생들 중 제일 유명한건 
'가희아'다



조선 3대 국왕 태종 이방원 시절
한양에서 제일 이름높은 기생이었는데

얼마나 가희아에게 빠진 사대부들이 많았는지
가희아를 서로 차지하려고
정승들끼리 각자 개인 무뢰배들을 고용해 싸움박질을 할 정도였다

근데
갑자기...



이 양반이 등판해서는...

"아  거 자식들 여자 1명 두고 시끄럽게 하고 있어... 내가 정리해줄게"
하며 가희아를 정작 자기 후궁으로 삼아버림...ㅡㅡ

그리고...
황진이



황진이를 보통 조선 역사상 최고 기생으로 꼽는데
의외로 황진이는 1패가 아닌...
2패 기생이었음

황진이는 마지막에 임자없이 혼자 쓸쓸히 죽었는데
"조선팔도 사내들을 농락해 혼란에 빠지게한 내 죄가 크다"며
시신을 묻지말고 그냥 바닷가에 버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도 측근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고 소박하게 묘를 만들어줬다는 후문

참고로 역사학자들은
기록에 남아있는 황진이의 외모 묘사를 면밀히 봤을 때
현대 여배우들 중 가장 씽크로율이 높은 건



수애라고 한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황진이 영화나 드라마에 송혜교, 하지원이 캐스팅됐을 때
좀 아쉬워들 했다는 후문

...

재밌는건 당시 양반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기생을 볼 때 꼭 지켜야하는 규칙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
기생이 아무리 온갖 달콤한 말로 유혹해도 절대 믿지 말고
- 기생은 원래 거짓말을 타고났으니 경계하라는 것

둘째
기생에게 꽃 선물은 주지 말고
- 기생 자체가 꽃이니 꽃에게 꽃선물 주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것

셋째
마누라와 첩 자랑을 기생에게 하지 말고
- 기생도 여자니 괜히 질투심나게 하지 말라는 것

넷째
어설프게 학식 자랑 하지 말고
- 1패 2패 기생들은 웬만한 양반들보다 공부를 많이 했으니 괜히 지식 자랑하다가 망신당하지 말라는 것

다섯째
효자, 효부에 대한 얘기를 하지 말라
- 기생 자체가 천민에 웃음파는 직업이니 가족얘기로 멘탈 공격하지 말라는 것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요즘 우리나라 유흥업소에도 통용되는 얘기다
...수백년전 조상님들이 내리신 유흥업소에 망신당하지 않는 법


...

우리나라 기생 체계가
보다 확실히 자리 잡힌 건
1910년대 일제 강점기다

일제에서 본래 운영되는 조선 기생청을
'권번'이라는 기생 조합 겸 학교로 바꿔 운영했다

이런 권번들 중 제일 유명했던 것이
바로...



평양기생학교, 즉 평양 권번이었다


위 사진은
당시 평양기생학교에서 기생들을 가르치던 학습 시간표다


기생들은 단순한 접대부가 아니라
이토록 치열하게 공부해야하는 지식인 집단에 가까웠다

거기다 미모와 예술성도 뛰어나야했으니...

사실상 일본 게이샤보다 우리나라 기생은
학식면에서 월등했다고 보는 게 맞다



당시 예비 기생들이 서예 수업을 받던 모습이다

참고로
이 평양기생학교는
1950년 6.25 한국전쟁 때에도 운영됐다고 한다


백선엽 장군
평양수복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평양기생학교가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는 후문

근데 백선엽 장군이 가보니 그 전쟁통에도 평양기생학교는 잘 운영됐다고 한다

백선엽 장군이 예의상 당시 남아있던 평양 기생들을 불러 밥과 술을 샀는데
기생들이 백선엽 장군이 마셔야할 술까지 자기네들이 다 마셔버리고는
북괴 공산당 욕을 그렇게 했다고 한다

공산당 간부들이 평소에는 인민이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정작 맨날 밤마다 자기네들에게 와서 비싼 술쳐먹고
항상 외상으로 갔다면서...ㅡㅡ

...



재밌는건 1930년대 후반
당시 기생들의 재산 상황에 대한 기사가 있다는 점이다

위 자료에 따르면
당시 기생 재산 1위는 경성 대정권번 소속 김월색이라는 기생인데
재산이 25만엔이었다고 한다

당시 집1채 값이 불과 수백엔에서 1000엔 정도였으니
오늘날 환율로 보면 거의 100억대 이상 자산가라 볼 수 있다

유흥업계가 돈을 많이 버는 건
예나 지금이나...

...

이제 우리나라 기생들 중 제일 유명했던 4인방에 대한 소개다

1. 박온실 (1920년 출생 추정 ~ ?)


평양기생학교 출신으로  
미모가 아주 빼어났다고 한다



포미닛 남지현을 닮았다는 얘기가 많다



박온실은
모던 일본 잡지에서 주관한 우리나라 미스코리아의 모체라 할 수 있는
미스 조선 당선자이기도 했다

여기에 박온실에 대한 프로필이 적혀있는데

미스 조선 당선 당시 나이는 19세
키는 오늘 기준으로 158cm 정도
몸무게도 오늘 기준으로 49kg 정도

음악과 무용에 능했다고 한다


2. 오산월 ( ? ~ ? )



오산월이라는 기생명 외에는 정보가 없는 여인이다

단지 당시 유행했던 사진엽서들 중 제일 많이 팔릴 정도로
미모가 출중했다는 것만 알려져있다



이 사진엽서에는 오산월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는데
당시 기생들은 자기 사진에 이름을 넣어 명함 대신 사용했었다


3. 장연홍 ( 1911년 ~ ? )



개성 출신으로
평양 권번을 나와 서울 경성에서 20년대를 풍미했던 스타 기생

원래 부잣집 외동딸이었지만
가세가 기울며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된 기구한 케이스

기생들 중 특히 정조관념이 투철했으며
친일파 이지용이 억소리 나는 돈을 보여주며 첩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21살 때 홍콩으로 떠났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소식불명

나중에 홍콩 영사관에 장연홍으로 추정되는 여인이 한번 들렸었다는 기록만 남아있음


4. 이난향 (1900 ~ 1979)



우리나라 기생들 중 제일 유명한 사람

역대 기생들 중 미모 1등
예술능력 1등


비교적 최근까지 가장 오랫동안 살아있어서 많은 자료를 남겼다

난향은 기생 활동명이고
본명은 이선비

평양 출신으로 본래 유복한 집이었으나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에 의해 12살 나이로 평양기생학교에 보내졌다

불과 1년만에 기생학교 최고 우등생으로 날렸고
13살 때 무려 대한제국 시절 순종앞에서 공연을 했다

이난향은 우리나라 마지막 1패 기생으로 보면 된다



빨간 표시가 이냔향이다

이난향은 당시 여자들 중에서 상당히 키가 큰편이었고
미모는 물론
가곡, 시조 만렙에
국악기 양금과 일본 악기 샤미센을 모두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천재였다

심지어 우리나라 전통 춤 뿐아니라 왈츠같은 서양 춤도 잘췄다고 한다

이난향은 불과 25살에
평양권번(평양기생학교)과 더불어 투톱이었던 대정권번(조선기생학교) 대표이사가 될 정도였다



지금은 사라진 현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에 위치했던
명월관은 우리나라 최고 기생들의 집합소였고
이난향은 여기서도 최고였다



당시 경성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땅을 팔아서라도 명월관에 가서 이난향의 노래를 들을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난향은
나중에 1971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도 자기를 보러 자주 명월관에 왔었다고 했는데



최남선은 쇳소리가 많이 났는데
말이 별로 없는 편이었고


이광수는 유독 얼굴이 빨간색이었다고 한다

이난향은
우리나라 최초 가곡 레코드를 취입하기도 했는데
의외로 31살 때 신문기자와 결혼 후
조용히 가정주부 생활만하며 내조의 여왕으로 여생을 보냈다

이난향은 1971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에 기생이 되는 건 딱히 허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일도 아니었다"는 말을 남겼다



이난향이 유명한건 그 미모가
지금은 세상을 떠난 설리와 꼭 닮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난향에 대한 전기영화가 제작된다면
설리가 캐스팅 1순위였을텐데...

...

우리나라에서 기생을 의미하는 한자어가 있는데
바로

해어화(解語花) 
즉, '말을 이해하는 꽃'
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근대 기생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영화는



이 '해어화'가 있다

비록 망했지만
배우들 연기나 내용은 그럭저럭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