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요약 -

 

1. 일제치하 조선인 징용공의 민족차별적 임금 격차는 없었다.

 

2. 근속연무, 작업량 등에 따른 임금차이는 있었다.

 

3. 광산별로 조선인들 임금이 일본인 임금 보다 높은 곳도 많았다.

 

4. 조선인 징용공들은 일본인 징용공 보다 훨씬 늦게 징용됐기 때문에 일본인 징용공들에 비해서 작업량, 업무능력 등 차이가 많이 났다. 이는 임금차이에 반영되었다.

 

5. 한미일 3국의 실증주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일제치하 조선인 징용공의 민족차별적 임금 격차는 없었다'고 한다

6. 집에 송금하고 남은 돈은 술, 도박 등 여가에 사용했음.



 








 

 


 

학술지 경제사학에 실린 징용공 관련 논문을 참고로 하였음을 밝힌다.
http://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3468757

 

 

 

 

 

- 조선인 징용공과 일본인 징용공의 임금 격차에 대한 주장은 재일조선인 박경식이 시초.

 

박경식이라는 사람은 북한 산하 단체 조선인총연합(조총련) 소속된 사람으로 조선적(북한국적) https://news.joins.com/article/3607553

 

- 박경식이 임금차별이라면서 주장한 통계를 분석한 결과,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 차이.였음을 확인함. 

 

( 일본인 징용이 조선인 징용보다 몇 년 앞서 실시되었기에 일본인 징용공들의 근속연수가 더 길었음 → 임금 차이 발생  )

 

- 일본인4명 + 조선인 3명의 채굴량 : 0.8척, 2년 근속 조선인 8명 : 0.51척, 3개월 연수를 마친 조선인 8명 : 0.25척 → 즉 경험의 축적이 작업량의 차이를 발생시키고 따라서 임금의 차이도 발생하였음.

 

* 1척은 약 30cm. 탄광에서 사용하는 채굴량 단위이다.

 

 

 

 

 

 

 

- D탄광의 사례 분석

- 일본인은 근속기간 1년 미만 신참 42%, 2년 이상은 조선인 23%, 일본인 42.3%.

- D탄광의 경우, 민족간에 유의미한 임금 격차 없이 비슷한 수준임을 확인.

 

 

 

 

 

- I 광산의 사례

- I 광산에서는 2년 이상 근속한 조선인 광부 0. 일본인은 46.2%가 2년 이상 근속.

- 이 점이 반영되어, 임금분포에서 50엔 이하 수령자의 민족 구성 : 조선인 35%, 일본인 17.1%

- 북한사람 박경식은 임금의 '민족차별'을 주장하기 위해 자료를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자료 전체를 개관조차 하지 않은 채, 일부분만 떼서 본질을 왜곡시킴.

 

 

 

 

 

 

 

- 광산별로 조선인의 임금이 일본인 보다 높았던 경우도 많았다.

 

 

 

 

 

 

 

 

- 위의 통계에 따르면 18개 광산중 무려 7개의 광산에서 조선인 임금이 일본인 임금 보다 높았음이 확인됨.

 

 

 

 

 

 

미국인 연구자도 조선인 징용자의 임금체계는 일본인과 동일했다.고 확인함.

한미일 3개국 연구자에 의해서 조선인 노무자와 일본인 노무자간의 임금차별이 없었다.고 공통된 의견이 도출됨. 

- 국내 보고서에서 한국인 징용공들이 증언하길 '더 하면 더 주고 못하면 덜준다'고 증언했음. 본 논문의 주장과 일치함.






- 집에 송금하고 남은 돈으로 양복 구입, 외식, 도박, 술, 담배 등에 사용함.

 

 

 

 

- 미국인 연구자의 저서. https://www.amazon.com/Fighting-Enemy-Koreans-1937-1945-International/dp/0295992581




 

- 요약 -

 

1. 일제치하 조선인 징용공의 민족차별적 임금 격차는 없었다.

2. 근속연무, 작업량 등에 따른 임금차이는 있었다.

3. 광산별로 조선인들의 임금이 일본인 보다 높은 곳도 많았다.

4. 조선인 징용공들은 일본인 징용공 보다 훨씬 늦게 징용됐기 때문에 일본인 징용공들에 비해서 작업량, 업무능력 등의 차이가 많이 났다. 이는 임금차이에 반영되었다.

5. 친북네셔널리즘을 좋아하는 좌파 사학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연구자들.

   한미일 3국의 실증주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일제치하 조선인 징용공의 민족차별적 임금 격차는 없었다'고 한다
6. 집에 송금하고 남은 돈은 술, 도박 등 여가에 사용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