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이 위태로워도 당당하게 살았던 청년기의 이승만

교과서에서 국부 건국의 아버지 갓승만에 대한 기술이  매우부족하다.
청년시절 고종하고 목숨걸고 맞짱뜨던 뜨거운 혁명가의 삶을 조명하지 않고 해방후
미군정과 공산주의자들과 맞서 싸우면서 건국을 했음에도  외세에 의해서
피동적으로
건국이 이루어진것 처럼 기술하는것에 불만이 많아서 이제는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썰하나 쓸까 한다.


이제는 반일은 이승만이요 극일은 박정희라는 역사적 팩트를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또 구체재를 혁파하려고 노력한 진짜 진보가 이승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승만은 반일의 상징이요 박정희는 극일의 상징




모든게 막장이였던 구한말 
1895년 왜구 + 흥선대원군 조일연합으로 민비 썅년이 도륙당해 뒤지고 사라졌다.
1896년 김구는 무고한 일본 상인을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는 심정으로 밥이 먼저 나왔다는 이유를

빌미로 돌로 때리고 죽지않고 도망가자 공범과 함께 몽둥이로 패서 죽이고 소지하고 있던
금품과 환도를 탈취하고 시체를 물가에 유기한 강도 살인사건으로 죄수로 살았다. 


일명 치하포 강도살인 사건은 후에  강도살인사건의  업적을 기려서 영화까지
만들정도로 숭배를 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시기 고종이라는 희대의 병신새끼는 자신의 권력를 지켜주던 민비가 뒤지자 여기저기 빤스런을 
구상하다  결국 러시아 공사로 빤스런(아관파천 1896~1897)을 했고 러시아 응디의 힘으로 
친일내각을 박살내고 다시 왕권을 회복했으며  이후 왕주제에 세계사적 흐름(영러간의 그레이트 게임)이 

어떤지도 모르고 개혁이랍시고 한것이 내 주둥이가 법이라는 전제군주제로 권력애의 끝판왕적 모습을 보여준다. 


난세에 늘 영웅이 있는법  개화에 눈을 뜬 청년 이승만 

유교 탈레반 시절 탈조선화가 안된 시절의 이승만(18세) 


혼란한 1895년에 이승만은 배제학당에 입학하여 영어를 마스터하며 서구문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었다.
이승만은 배제학당에서 완전히 개화된 인물로 탈바꿈한다.  이승만은 미국인 선교사들로부터 그들의
정치사상을 배우기 시작했고 자유 민주주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높혀가고 있었고 이승만 구체재와
결별을 뜻하는 상투를 자르는 단발의식을 제중원 의사 애비슨 박사의 도움으로 싹뚝하여 탈조선화 완료

▼ 올리버 애비슨 박사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의 설립자



 
이승만은 맨투맨 기법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여 빠른 시간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수 있었다고 한다.
1896년 갑신정변의 영웅 서재필을 스승으로 만나 탈조선화가 완료된 서재필의 강의로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고 

또 시국에 대한 관심도 높아 양홍묵과 함께 청년단체 협성회를 조직하고 활동을 하며 첫 계몽운동을 시작한다.

1897년 7월 이승만은 배제학당을 탈김치화 되어 졸업했다. 당연 영어는 마스터~ 

탈김치화에서 언론인으로 탈바꿈한 이승만 
이승만은 1898년 동료들과 국문 주간지 협성회 회보 주필을 시작으로 언론인으로서의 싹수를 보였다.  
이승만은 언론인으로서 사회활동을 시작했고 한국 최초의 민간 일간지 매일신문(1898년 4월) 기자로 활동한다.
협성회보 제작당시 이승만과 배제학당에서 함께한 동료가 있으니 그 사람은 한글 학자의 대부 주시경이였다. 
이승만과 함께 협성회보를 제작하며 한글에 대한 체계화의 필요성을 느껴 한글학자로써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승만이 관여한 신문

1898년 1월 협성회회보(주필) - 주간지 
1898년 4월 매일신문(기자)  - 일간지
1898년 8월 뎨국(제국)신문(주필) - 일간지


▼ 보회회셩협 문신일뮈가 아님  좌에서 우로 읽을것  
 


언론인에서 혁명가로 변신한  이승만
당시 고종 병신새끼는 권력욕 만큼은 전세계 탑 수준이였다.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지 애배하고도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버러지 개새끼였지 조선 말기는 유교국가 맞나 싶을정도로 애비 vs 아들 + 며느리 싸움이였다. 
유교탈레반 조선에서 젊은 청년들은 서구문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세계 정세를 볼줄 아는 능력이 생기자 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897년 만민공동회는 당대 지식인들인 독립협회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가 주축이 되어 시작된 민중토론대회였다.
이 만민 공동회는 꽤 영향력이 커서 민중들의 정치참여 장치로 발전되었고 요구사항들이 관철되기도 했다. 
이 토론대회는 점점 민중들의 의식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승만은 이때 연사로 나가 군중들을 사로잡는다.



언제나 병크짓 잘하는 고종새끼는 김홍륙 독다사건이후 민회 금압령(1898년 9월 11일~ 25일)을 내렸다. 
1898년 11월 4일 국민참정권을 승인(헌의 6조)했으나 유교 탈레반 새끼들의 공작에 넘어간 팔랑귀 고종새끼는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가 자신의 권력유지에 악영향을 끼칠것을 우려하고 독립협회 핵심인물 17명을 체포한다.

반정부 평화 시위를 주동한 청년 이승만 
이 체포과정에서 여러 인물들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였으나 이승만은 용감하게도 길거리로 나왔다.
또 배제학당 동료들이 이승만과 
함께 경무청으로 달려갔고 수천명이 운집하고 17명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는 결국 받아들여졌고  
헌의 6조 일부 조항까지 이행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으니 이는 전제 군주제에서
민중들이 평화시위로 
요구사항을 받아들인 매우 의미있는 사례다 


헌의 6조 
1.외국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관리와 백성들이 마음을 함께하고 힘을 합쳐 전제 황권을 굳건히 한다. 

2.
광산철도, 석탄, 산림 및 차관, 차병은 정부가 외국인과 조약을 맺는 것이니, 
만약 각 부의 대신들과 중추원의장이 합동하여 서명하고 날인한 것이 아니면 시행할 수 없다. 

3.전국의 재정은 어떤 세금이든지 막론하고 모두 다 
탁지부에서 관할하고, 
다른 부와 부 및 사적인 회사에서 간섭할 수 없으며, 예산과 결산을 사람들에게 공포한다. 

4.이제부터 중대한 범죄에 관계되는 것은 특별히 
공판을 진행하되 피고에게 철저히 설명해서 마침내 피고가 자복한 후에 형을 시행한다. 
5.칙임관은 대황제 폐하가 정부에 자문해서 과반수의 찬성에 따라 임명한다. 

6.규정을 실지로 시행한다.


그러나 역시나 권력애의 끝팡왕이자 팔랑귀 고종새끼는 유교 탈레반의 공작에 넘어가서 약속을 깨고 
독립협회와 만민 공동회를 무력으로 해체하여 이승만을 포함한 관련자들이 역모혐의로 투옥되었고
이로써 개혁을 개나 줘버린 조선은 망조 일본은 길조 테크가 확정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승만의 센죠이  생활과 프리즌 브레이크 시도
이승만은 한성 감옥에서 센조이 생활을 시작한다.  여기서 주목할점은 쟁쟁한 미국 선교사(애비슨 포함)들과 
관리(알렌공사)들이 이승만을 보호하기 시작한다. 즉  이승만에 대해서 박해를 받지 않도록  미국관리와
선교사들이 압력을 행사하여  이승만을 보호하도록 한것이다.  

 

한성감옥 시절 이승만 (좌측) 


한글의 대부이자 반일 국뽕이 존경해 마지 않고 일뽕들마저 인정하는 주시경 선생께서 이승만에게
육혈포(권총)를 건네며 프리즌 브레이크를 도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사실 거의 없다 그만큼 근현대사는 
좌좀 유교 탈레반 국뽕들이 삼국 시대사 만도 못한 취급을 하며 오로지 피해의 역사만으로 기록한다.  

한글의 대부이자 이승만의 친구 주시경 센세



프리즌 브레이크 거사를 위해서 모든것이 준비되었다. 총 3명이 탈옥을 했으나 나타나기로 한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자 이승만은 당황했고  프리즌 브레이크는 실패하고 만다.  이승만에게 돌아온것은  궁디 찰싹형인
곤장 100대와 영영 빵에서 살아야 할 운명(종신형 확정)에 처한 이승만찡....

당시 깜빵동기 2명도 같이 프리즌 브레이클 시도했는데 1명은 성공 1명은 실패하여 처형(최정식)당해 뒤짐 ..ㅠ.ㅠ 
당시 처형당한 이유는 총기를 사용했고 이로 인해서 관원이 부상을 입었다. 역시나 조선 스럽게 부상당한
관원이 이승만에게 곤장 100대로 복수하도록 한다. 

이승만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고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고 옥중에서 수감자들에게 계몽을 했고 복음을 전파했다.
당시 깜빵동기들도 나름 화려한 인물들이라 이승만의 인맥이 어떤지 알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박용만 이상재 선생이 있다. 
또 영한사전을 집필(미완)하고 청일 전쟁에 관련된 청일전기를 집필했으며 희대의 명저 독립정신을 옥중에서 집필을 했다. 
이 독립정신의 집필 내용을 고종새끼가 알았다면 이승만은 김옥균처럼 효수되어 길거리에 내걸렸을수도 있을만큼
파격적인 내용이였다.  


조선의 이승만은 감옥에서 목숨걸고 계몽서를 썼으나  
조선은 망했고 일제시대에는 금서가 되었다. 





반일국뽕 유교탈레반 개돼지들이 읽어야할 필독서 독립정신 


대한민국에 좌좀버러지들이 창궐하는 이유는 건국 이념서 독립정신을 읽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반일종족주의보다 이 책이 100만원 팔리면 아니 모든 공무원 시험에 독립정신을 시험과목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국이념을 모르는 새끼들이 공무원을 하니까 빨갱이들이 설치는 거라고 생각한다.

독립정신의 실천강령은 인간으로서 살아야할 지침으로써도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을 한다.


독립정신의 핵심은독립정신 실천  6대 강령

6대 강령에 있는 항목별 부연설명을 읽을때마다 소름 그자체다.
진짜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하는 믿음까지 생길정도  

옛한글로 된 원문은 다운로드 받을수 있다  (다운로드)


· 첫째 우리는 세계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
· 1 우리는 세계와 반드시 교류해야 한다. 
· 2 통상은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3 오늘날 통상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근본이다. 
· 4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는 것을 우리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 5 외국인들을 원수 같이 여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 둘째 새로운 문물을 자신과 집안과 나라를 보전하는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 1. 외국인들이 들어와 우리가 함께 살때 우리것을 보전하면서 
     또한 우리에게 균등한 이익이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 2 새로운 학문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 3 신학문을 열심히 배워 경제적 이익을 외국인들에게 뺏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 4 신학문을 열심히 공부하여 그 혜택을 누려야 할 것이다. 
· 
· 셋째 외교를 잘해야 한다.
· 1 외교가 나라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2 다른 나라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자 한다면 모든 나라를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 3 다른 나라들과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려면 그 나라들과 공통된 특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 4 진실을 외교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 5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의 잘못은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


· 넷째 나라의 주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 1 모두가 외국인들에게 치외법권을 허용한 것을 수치로 알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것을 우리 생전에 회복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것이다.

· 2 모든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부지런히 배우고 일해야 한다.
· 3 우리나라 사람이든 물건이든 다른나라 사람들로부터 수치를 당하는 것을 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를 막아내야 한다.

· 4 국기를 존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 5 어떤 일이 있더라도 외국 국적을 갖지 말아야 한다. 
· 6 우리는 외채 빌리는 것을 감가야 한다.
 
· 다섯째 도덕적 의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뜻이 같은 사람에게 감정을 표현할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공적인 의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라에 충성함에는 용기를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섯째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1 자유를 자기 목숨처럼 여기며 남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요약 
청년기때부터 이승만은 대통령이 될만한 싹이 보였던 인물 
이승만은 학식과 취업시즌기에 동료들과 함께 구국운동을 했던 인싸 
이승만의 계몽서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다. 
 
출처 
이승만 학당 자서전 카테고리 http://syngmanrhee.kr/ 
기타등등 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