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ilbe.com/view/179854526 (1편 - 전쟁 프롤로그)
https://www.ilbe.com/view/153220626 (2편 - 알프스 행군)
https://www.ilbe.com/view/156383566 (3편 - 트라비아 전투, 트레시메누스 호수의 전투)
https://www.ilbe.com/view/158193101 (4편 - 파비우스 전략)
https://www.ilbe.com/view/160099287 (5편 - 칸나이 전투 )
https://www.ilbe.com/view/163928394 (6편 - 카푸아와 한니발의 동맹)
https://www.ilbe.com/view/167393061 (7편 - 이탈리아 전역)
https://www.ilbe.com/view/174975159 (8편 - 지중해 전역으로의 전쟁의 확대)
https://www.ilbe.com/view/10797401441 (9편 - 시라쿠사의 반란)
https://www.ilbe.com/view/10804711487 (10편 - 시라쿠사의 전쟁 I)
https://www.ilbe.com/view/10813710862 (11편- 타렌톰의 함락, 한니발의 연승)
https://www.ilbe.com/view/10825966530 (12편- 시라쿠사 전쟁 II - 로마의 승리)
http://www.ilbe.com/view/10840167835 (13편  - 스페인 로마군단의 전멸)
http://www.ilbe.com/view/10853485319 (14편 - 한니발의 로마 공격, 로마의 카푸아 함락)
http://www.ilbe.com/view/11199613730 (15편 - 스키피오의 등장과 마르켈루스의 집정관 취임)
http://www.ilbe.com/view/11200821173 (16편 - 로마의 시칠리아 평정, 카르타헤나 공성전)
http://www.ilbe.com/view/11204029455 (17편 - 또다시 회전에서 승리한 한니발, 마르켈루스의 반격)



로마 (209 BC)

원로원의 절망스러운 반응을 본 집정관들은 오히려 침착하게 나왔다. 이들이 우선 다른 도시들의 의향도 보자고 주장하자 원로원도 동의하였다. 다른 18개의 로마 식민지들은 한니발 세력과 국경을 접했기 때문에 전쟁에 적극적이었다. 이들은 로마에 충성할 것이라고 맹세하였고, 원로원은 그들의 충성을 기리는 칙령을 발표한다.



이 시점에서 이미 로마인도 한계를 느끼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로마인이 그들의 집정관을 전쟁광이라면서 디스한 일화라던가, 로마인으로 구성된 식민지 도시민이 협조를 거부하는 상황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들이 전쟁에 지쳤고 이 전쟁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만한 게 이때의 한니발은 고작 30대 중반에 지나지 않았다. 

이 모든 조치가 마무리되자 두 집정관은 군을 이끌고 담당지역으로 떠났다. 행군하는 도중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그가 원로원에 의해 프린켑스, 즉 최초의 발언권을 가진 원로원 의원으로 선택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마르켈루스와 한니발의 첫번째 대결 (209 BC)

집정관 파비우스는 남쪽으로 행군하면서 레기움에 머무는 8천명의 시칠리아 출신 병사들에게 부르티움을 약탈하라고 명령하였고, 마르켈루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마르켈루스보고 한니발의 본대를 최대한 저지하라고 지시한다. 한니발이 묶여 있는 동안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타렌톰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이때 한니발은 카누시움(Canusium)에 도착해 이 도시의 배반을 유도하고 있었다. 이때 마르켈루스가 군과 함께 나타났다. 로마군을 본 한니발은 군을 물려 후퇴하기 시작하였고 마르켈루스는 이런 한니발을 추격한다. 한동안 추격하다 마침내 한니발을 따라잡은 마르켈루스는 한니발의 병사들이 진지 공사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곧장 공격하게 한다. 한니발은 이를 막기 위해 군을 이끌고 나와 서로 싸웠고 밤이 되자 둘은 서로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다음날이 되자 두 장군은 군을 서로 이끌고 나와 회전을 치룬다. 이는 두 장군 사이의 두번째 회전이었다. 이때 한니발의 본대의 병사들은 전투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그들은 스스로가 이탈리아의 챔피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한니발이 계속 전투를 피하자 불만을 품었던 것이었다. 마침내 전투가 개시되자 카르타고 병사들은 매우 의욕적으로 임하였다. 

두시간에 걸쳐 전투가 벌어졌다. 역시 이 전투에서도 한니발의 우수한 기병대의 활약이 보이지 않았다. 전투는 보병끼리의 힘겨루기로만 진행되었는데, 격렬한 전투 끝에 로마의 우익을 구성하는 동맹시군단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마르켈루스는 이를 보자마자 후열에 머물던 로마군단 18번대를 선두의 전열과 교체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런데 교체하기 위해 뒤로 물러가는 로마군의 전열의 뒤를 쫒아 한니발 군이 강력히 압박해 들어왔고 교체하기 위해 뒤로 물러가던 로마군이 그냥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교체하려고 전진하는 병사들과 도망가는 병사가 서로 충돌하면서 로마군단은 혼란에 빠졌고 이를 본 카르타고 보병은 맹렬히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로마군 전체에 공포가 전염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로마군 전원이 패주하여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이때 로마군 2,700명이 전사하였다고 하였다. 

마르켈루스는 진영에 돌아오자마자 병사들을 심하게 질책한 뒤 다음날 다시 전투를 하겠다고 말하였다. 병사들은 패배를 분하게 생각하였으므로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로마군은 대형을 짜 다시 한니발에게 전투를 걸었다.

이를 본 한니발은 국내에 잘 알려진 발언을 하였다.

“승리하면 기세가 오르고, 지면 수치라고 생각하는 저 사람한테는, 승리도 패배도 전의를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인가?” 

한니발도 병사를 내보내 회전을 치르게 하였다. 


마르켈루스와 한니발의 두번째 대결 (209 BC)

마르켈루스는 동맹시 군단을 좌익에 세우고, 자신의 18번대 로마군단병을 우익에 세웠다. 이 군단의 선두열에는 하루 전 무너져 패배를 초래한 동맹시 군단을 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중앙에 서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한니발은 자신의 정예 병력인 스페인 보병을 선두에 세웠고 병사의 제일 앞 열에 전투코끼리를 배치하였다. 한니발은 이 전투 코끼리로 로마군의 전열을 붕괴시켜놓음으로서 싸움을 유리하게 가져올 생각이었다.





이때 한니발이 전투 코끼리를 선두에 세웠던 배치를 주목해야 하는데, 이는 다름아닌 저 자마회전에서 한니발이 스키피오의 로마군을 상대로 쓴 전술이었다. 

그런데 리비우스에 따르면 로마 병사들은 이 전투 코끼리를 보고 처음에는 공포에 질렸으나 대대장(Military Tribune) 가이우스 데키미우스가 투창을 던지게 하여 물리쳤고 이 코끼리가 도망치면서 카르타고군을 밟고 지나가 카르타고가 졌다고 기록하였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한니발이 코끼리를 선두에 세우는 전술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는데, 왜 한니발이 굳이 이 전술을 중요한 자마회전에서 똑같이 썼는지 의문을 자아낸다. 

아무튼 이 로마인 역사가는 그 코끼리 문제로 마르켈루스가 승리하였다고 하는데, 

문제는 리비우스가 마르켈루스가 승리했다고 써놓고 바로 뒤에 대부분이 부상을 입었다 (The number of the wounded, citizens and allies, was very high) 라고 마치 패배를 암시하는 구절을 써놓은 것이다. 또한 한니발이 전투이후 그 지역을 떠났음에도 마르켈루스는 부상병이 워낙 많아서 그를 추격할 수 없었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마르켈루스는 이 전투 이후 더 이상 활약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군을 그대로 베누시아 (Venusia)로 후퇴시켰으며 여름에서 겨울까지 반년 내내 아예 활동없이 지낸다. 그 결과 그는 호민관에 의한 탄핵까지 받게 된다. 

Marcellus was even in disrepute––apart from his poor performance in his first battle, he had led his men off to their quarters in Venusia in midsummer, when Hannibal was still at large in Italy. (Livy 27.20)

마르켈루스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첫번째 전투에서 형편없이 지휘했을뿐 아니라 그는 병사를 베누시아에 물려 한니발이 날뛰는 것을 방관하였다는 것이었다. 

Marcellus had a personal enemy in the plebeian tribune Gaius Publicius Bibulus. Ever since that first battle which had gone badly for Marcellus, Bibulus had been continually making speeches that had discredited him and made him unpopular with the plebs. Now he was advocating the annulment of his imperium. (Livy 27.20)

마르켈루스에게 호민관 가이우스 푸빌리우스 비불루스라는 정적이 있었다. 그는 마르켈루스를 첫번째 전투 이후 사사건건 비난하였다. 비불루스는 꾸준히 그를 비난하는 연설을 하여 대중에게서 그의 평판을 낮추었다. 이제 그는 그의 군단지휘권 (임페리움)을 박탈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와 동료 호민관은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하였다.

It was thanks to the nobles’ treacherous and dilatory conduct, he said, that Hannibal had been, for nine years now, holding Italy as his own province, having spent more of his life there than in Carthage! The people of Rome were reaping the benefits of the extension of Marcellus’ command, he added: his twice-beaten army was having its summer season quartered in Venusia! (Livy 27.21)

귀족들이 보여준 느려터진 반역 행위를 한니발이 고마워하면서 이탈리아의 총독인양 9년동안이나 있습니다.
한니발이 카르타고에서 평생 보낸 시간 보다 더 오랫동안 말입니다!
로마 시민이 마르켈루스의 임페리움을 두번이나 연장해 줬더니 마르켈루스가 좋은 보답을 해줬죠.
두번이나 진 다음 한여름부터 쭉 베누시아에서 쉬면서 말입니다!


해당 마르켈루스군의 정황과 호민관의 연설은 마르켈루스가 두번째 전투에서 승리하였다면 나올 수 없는 것이며, 또한 호민관이 우리가 마르켈루스에게 받은 보답은 ‘두번’이나 전투에서 져서 한여름부터 내내 쉰 것이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면 두번째 전투에서 마르켈루스가 한니발에게 대승하였다는 기록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어쨌건 사실이 아니겠으나 리비우스가 기록한 두번째 전투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전투 코끼리가 돌진하자 로마군은 투창을 던져 저지하였고, 부상을 입은 코끼리는 방향을 바꿔 카르타고군에게 돌진하였다. 카르타고 군은 혼란에 빠졌고, 이를 본 로마인이 돌격하였다. 마침내 카르타고군이 무너져 도망치자 마르켈루스가 기병을 보내 처리했다는 것이었다. 이 전투에서 8천의 카르타고군을 전사시켰다고 기록하였다. 

이 기록이 과장임이 분명하고, 정황상 마르켈루스가 졌거나 최대한 좋게 봐줘도 비겼을 것이다. 어쨌건 간에 마르켈루스는 궤멸까지 당하지는 않았고, 한니발은 군대를 물려 그 지역을 철수하였다. 마르켈루스는 승리까지는 못하였지만 한니발의 군에게 소모적인 전투를 강요하였다. 즉 마르켈루스가 한니발의 전력을 천천히 소모시키는게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은 분명하였다. 

이때 다른 집정관 풀비우스는 루카니아 지역을 유린하고 있었다. 이때쯤 이미 한니발이 따로 운용케 한 한노의 카르타고 군단은 소멸된 것으로 보이며, 로마군을 저지할 수 있는 군단이 그 지역에 없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카르타고 세력에는 오직 한니발이 이끄는 군단만 존재하였다. 



타렌톰의 함락 (209 BC)




한니발은 이윽고 브루티움을 지키러갔고 이로서 아풀리아 지역은 공백지가 되었다. 그 결과 타렌톰은 로마의 직접적인 공격에 노출되었다. 집정관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2만 병력을 이끌고 타렌톰 인근에 나타났다. 

또 여기서 카르타고의 고질적인 문제가 터졌는데, 즉 지휘관의 한심한 자질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이었다. 한니발은 이 도시를 지키라고 브루티움에서 군대를 받아 배치해놓았는데, 이 군대의 지휘관은 브루티움인이었다. 그런데 이 지휘관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여자친구를 사귀었고, 그 여자친구의 오빠가 파비우스 군에 복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동생은 이 오빠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내용이 다음과 같았다.

타렌톰에서 새로운 외국인을 사귀게 되었는데 그는 부자이고, 또 그가 거느리는 무리로부터 존경받는다는 내용이었다 

2천 2벡년 전 지중해에서도 여자가 남자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똑같긴 한데, 아무튼 

오빠는 이를 파비우스에게 보고하였고 파비우스는 그 오빠로 하여금 탈주병으로 위장하여 성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였다.

성에 들어간 오빠는 여동생의 남자친구인 그 한심한 사령관을 만나 금방 친해졌고, 마침내 그 한심한 사령관은 타렌톰을 배신하고 로마에 붙기로 하였다. 그는 로마인이 잠입할 수 있게 협조해주기로 하였다.

약속한 날이 되자 파비우스는 성의 동쪽에 은신한 뒤, 타렌톰 항구에 있는 성채에 머무는 로마군에게 함성을 지르게 하였다. 이 성채는 한니발이 계속 점령을 시도했으나 못한 바로 그 성채였다. 

본대로부터 신호가 떨어지자 성채의 로마군은 과연 고함을 질러댔다. 이 소리에 놀란 타렌톰 사령관은 성채쪽으로 군을 이동시켰다. 이 순간 파비우스의 군은 사다리를 놓은 뒤 성벽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성벽에는 이미 로마군과 내통하기로 한 브루티움 사령관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로마인이 성벽에 오르는 걸 거들어 준 뒤 이들을 도시 내로 안내해주었다. 이 시점서 성문이 열리고 로마군이 도시 안으로 쏟아져나왔다. 로마군은 도시의 포럼을 향해 돌진하였다. 



이때 포럼에는 타렌톰군이 나와있었고 두 군대가 마주치자 곧장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로마인은 십년에 걸친 전투로 단련되었으며 타렌톰인은 전투경험이 없었다. 과연 타렌톰군은 순식간에 괴멸되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도망가거나 친구의 집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니코와 데모크라테스, 그리고 필레메누스는 한니발에게 도시를 넘겨주고 그 대가로 권력을 차지한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끝까지 남아서 싸웠고 곧 니코와 데모크라테스가 전사하였다. 필레메누스는 패배가 확실해지자 말을 타고 전장에서 빠져나갔다. 얼마 안 있어 필레메누스의 말이 배회하는 것이 목격되었고 이후 필레메누스는 영영 찾을 수 없게 되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그는 우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하였다. 

카르타고군 수비대장인 카르탈로는 패배가 확실해지자 항복한 뒤 파비우스를 만나러 갔다. 놀랍게도 그의 아버지와 파비우스 아버지 사이에 친분이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파비우스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로마인 병사가 그를 찔러 살해한다. 

승리가 확실해졌음에도 로마군은 살육을 그치지 않았다. 수많은 남성들이 로마인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었다. 심지어 로마인을 안내한 브루티움인들도 상당수 살해당하였다.

살해가 멈추자 이제 로마인은 도시를 약탈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3만명을 생포한 뒤 노예로 팔기로 하였고,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거두어 들였다. 또한 도시내의 예술품도 모두 꺼내 로마로 보내기로 하였다.



안타깝게도 이때 한니발은 군을 이끌고 타렌톰을 구원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오고 있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도시가 함락되었을 때 이미 한니발이 타렌톰에서 5마일 근처까지 왔다고 하였다. 파비우스가 동원한 군대의 규모가 고작 2만에 지나지 않은 것을 보아, 하루만 더 버텨 한니발이 도착했으면 로마인이 성을 점령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2차 포에니 전쟁 내내 이러한 경향이 너무도 많이 나오는데, 공성전에 있어 로마인은 너무도 쉽게 점령하지만 카르타고인과 동맹시는 너무도 쉽게 점령당하였다. 또한 로마인이 지키면 점령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심지어 한니발의 본대조차도 로마인이 지키는 성을 공성전을 통해 점령을 한 실적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한니발 외에 다른 카르타고 지휘관, 동맹시 지휘관들은 반드시 어딘가 나사빠진 모습이 하나씩 보이는데 비해, 로마장군들은 아무나 지휘관으로 갖다 놓아도 나름 구석구석 철저하고 신중한 면모를 보이고 빈틈이 없었다. 

한니발이야 무적의 전투 귀신이고 그의 본대도 야전에서 무적이지만 이미 해마다 25만씩 투입되어 지중해 전역으로 확대된 대규모 총력전에서 한니발 혼자 나사빠진 지휘관들을 모두 커버해가며 로마장군들을 몽땅 무찌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일이 꾸준히 누적되어 결국 카푸아, 시라쿠사, 타렌톰 이 세 도시를 모두 상실한 상황까지 되었고, 이 시점에서 카르타고의 패배는 거의 결정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아직도 기대할 수 있는 반전이 있긴 있는데, 이는 오직 스페인 전역 뿐이었다. 베티스 고지에서 두 스키피오 형제와 그의 군대를 소멸시켰으니 스페인만 놓고 보면 이 시점에서 카르타고가 우세하게 되었다. 그러니 내친김에 스페인에서 로마인을 완전히 제압 뒤 이탈리아에 우르르 들어와 다시 로마 동맹시의 이탈을 유도했다면 불리한 상황이 리셋될 수도 있었다. 로마인과 이탈리아인은 이미 10년간 이어진 전투로 인해 죽을 정도로 힘들어했는데 스페인에서 꾸준히 카르타고군이 드롭되면 이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타렌톰까지 상실한 한니발에게는 이게 유일하게 가능성있는 시나리오이자 희망이었는데, 하필 들어가도 로마 역사상 비교할 장군이 없는 천재로 손꼽히는 스키피오가 그쪽에 들어가버린 것이었다.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무튼 한니발은 병사를 이끌고 와서 타렌톰 성밖에서 다시 머물다가 메타폰툼 (Metapontum)으로 이동하였다. 여기서 한니발은 이 도시의 유력자 둘을 파비우스에게 보내 항복하고 싶으니 만나자고 전갈을 보낸다. 파비우스가 여기에 속아 이들을 만나러 오면 암살할 목적이었다. 그런데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점을 쳐보더니 불길하다면서 이들을 만나지 않았다. 


스페인 (208 BC)

스키피오는 이때 외교전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때 카르타고인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많은 수의 스페인 부족이 스키피오와 협력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들 중 주목할 만한 자로는 스페인 부족장 인디빌리스가 있었다.

또한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해군이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수병을 고스란히 육군에 편입시켜 병력의 규모를 늘려버렸다. 스키피오가 점점 강성해지자 하스드루발 바르카가 더 이상 놔두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군을 이끌고 스키피오 앞에 나타났다. 마침내 스페인의 두 세력의 최고 지휘관끼리 전투를 치루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