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ilbe.com/view/179854526 (1편 - 전쟁 프롤로그)
https://www.ilbe.com/view/153220626 (2편 - 알프스 행군)
https://www.ilbe.com/view/156383566 (3편 - 트라비아 전투, 트레시메누스 호수의 전투)
https://www.ilbe.com/view/158193101 (4편 - 파비우스 전략)
https://www.ilbe.com/view/160099287 (5편 - 칸나이 전투 )
https://www.ilbe.com/view/163928394 (6편 - 카푸아와 한니발의 동맹)
https://www.ilbe.com/view/167393061 (7편 - 이탈리아 전역)
https://www.ilbe.com/view/174975159 (8편 - 지중해 전역으로의 전쟁의 확대)
https://www.ilbe.com/view/10797401441 (9편 - 시라쿠사의 반란)
https://www.ilbe.com/view/10804711487 (10편 - 시라쿠사의 전쟁 I)
https://www.ilbe.com/view/10813710862 (11편- 타렌톰의 함락, 한니발의 연승)
https://www.ilbe.com/view/10825966530 (12편- 시라쿠사 전쟁 II - 로마의 승리)
http://www.ilbe.com/view/10840167835 (13편  - 스페인 로마군단의 전멸)
http://www.ilbe.com/view/10853485319 (14편 - 한니발의 로마 공격, 로마의 카푸아 함락)
http://www.ilbe.com/view/11199613730 (15편 - 스키피오의 등장과 마르켈루스의 집정관 취임)
http://www.ilbe.com/view/11200821173 (16편 - 로마의 시칠리아 평정, 카르타헤나 공성전)


스페인 (209 BC)

카르타헤나를 단 하루만에 점령한 스키피오는 부하에게 공에 따라 포상을 한 뒤, 스페인 부족이 카르타고에게 보낸 인질을 데려오게 하였다. 이들은 카르타고에게 정복된 스페인 부족의 유력자들이 보낸 인질들이었다. 




스키피오는 그들에게 친절을 베푼 뒤, 각 부족에게 연락을 하여 이들을 데려가라고 하였다. 인질 중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는데, 스키피오는 곧장 그녀의 가족과 약혼자에게 그녀를 만나러 오게 한 뒤, 이들 앞에서 결혼을 중재하는 역할까지 하였다. 이는 스키피오의 고결한 인품을 보이는 일화이나, 스키피오가 카르타헤나 시민 상당수를 살육과 약탈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확히 스키피오는 스페인 부족의 유력 정치가의 인질들에게만 친절하였고 이는 다분히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던 것이었다. 

카르타헤나에 머무는 동안 스키피오는 세심한 훈련 일정을 짠 후 부하들에게 따르게 하였고 도시를 요새화 하였다. 그 뒤 군을 이끌고 타라코를 향해 떠났다. 

한니발의 형제들은 카르타헤나 점령 소식을 듣고 이는 불운한 기습으로 한 도시가 점령당한 사건일 뿐이라며 일축한 뒤, 우리들 세명의 사령관이 각자의 군을 이끌고 당도하면 스키피오는 자신의 일족과 같은 운명이 될 뿐이라며 호언장담하였다. 하지만 그 도시의 지리적 역할과 상징성, 그리고 그 도시에 축척한 부를 모두 날려버린 것은 카르타고 세력에게 있어 큰 타격임은 분명하였다.



아풀리아 – 이탈리아 (210 BC)





집정관 마르켈루스는 삼니움 지역에 있는 도시를 점령한 뒤 3,000명의 카르타고 군을 생포하였다. 흔히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보급없이 싸웠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한니발이 자신이 이끄는 본대 이외에 각 도시에 수비대를 남겨놓을 정도의 여력이 있었다. 이를 보면 한니발은 쭉 자신의 동맹시에게 병력조달을 받아가면서 싸웠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때 로마는 바로 전해의 집정관,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와 당해의 집정관 마르켈루스를 아풀리아에 투입한 상태였다. 이때 한니발은 부르티움으로 갔는데, 이 소식을 들은 켄투말루스는 2개 군단과 함께 남하하여 헤르도니아의 점령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니발이 군을 이끌고 그 앞에 당도하였다.

한니발의 군대를 본 켄투말루스는 병력을 이끌고 나와 한니발과 회전을 치루었다. 전직집정관은 로마군단 5번대를 선두에 세우고 두번째 라인에 로마군단 6번대를 두었다. 한니발은 보병끼리 교전케 한 뒤 기병에게 교전이 무르익으면 이들을 배후를 치라고 명령하였다. 또한 이 기병대의 이들의 일부는 따로 기동하여 로마인의 진영을 약탈하라고 하였다.

이윽고 벌어진 전투에서 로마군단은 팽팽히 싸웠으나 배후에 카르타고 기병이 나타나 공격을 시작하였다. 또한 로마군 진영에서도 카르타고 기병이 지르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두번째 라인에 머물던 로마군단 6번대는 패닉에 빠져 도주하기 시작하였고 이 공포는 곧 선두에서 싸우는 로마군단 5번대에까지 전염되었다. 마침내 군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남은 것은 살육이었다. 13,000여 혹은 7,000에 달하는 로마군이 전직집정관 켄투말루스와 대대장 (Military Tribune) 11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로마군이 소멸되자 한니발은 헤르도니아 시민들에게 그들의 도시를 비우고 브루티움으로 이동하라고 명령하였다. 이 명령은 충실히 이행되어졌다. 이 일화에서 우리는 한니발이 그의 이탈리아내의 동맹시에게 왕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카푸아를 뺏긴 이후 한니발의 영향력은 남부 이탈리아로 제한되었으며, 그 지역조차도 한니발 홀로 지키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시민을 이주시킬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파비우스가 주창한 지구전의 효과는 느리지만 천천히 나타나고 있었다. 




전직 집정관이 참패했다는 소식은 그 근방에 머물고 있던 마르켈루스에게 전해졌다. 집정관 마르켈루스는 이 소식을 원로원에게 전한 뒤 자신의 군을 이끌고 한니발과 싸우러 떠났다. 누미스트로(Numistro)에서 두 군이 만난 뒤 곧장 전투가 벌어졌는데 마르켈루스는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패배하지도 않았다.

스키피오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 로마 공화국 내에서 가장 군재가 탁월한 장군은 바로 마르켈루스였다. 명성에 걸맞게 그가 한니발과 회전을 치렀음에도 패배까지 이르지 않은 것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마르켈루스가 한니발과 전투를 치룰 때에는 유독 한니발의 우수한 기병의 활약이 전혀 보이지 않는 특징이 있다. 

마르켈루스는 아마도 적절한 로마군의 배치와 대기병전술을 통해 아마 한니발의 기병을 무력화 시켜놓은 이후 보병끼리 만의 교전을 유도했는지도 모른다. 예를들어 로마인은 앞서 일어난 카푸아 포위전때 이미 대기병 전술을 선보인 바 있었다. 이때 로마군은 기병에 경무장한 투창병을 태운 뒤 상대방 기병이 나타나면 투창병이 말에서 내려 투창을 던지면서 같이 싸움으로서 숫적 열세를 극복하였다.

이를 마르켈루스가 실제로 썼는지 기록에는 없으나 상대방의 기병이 배후를 칠 것임을 알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으며, 마르켈루스가 치룬 전투에서 유독 한니발 기병의 활약이 안 나오는 것은 어떠한 대비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두 장군은 한바탕 전투를 치른 뒤 밤이 되자 병력을 물렸는데, 리비우스는 비겼다고 기록하였고, 후대의 역사가 프론티누스는 한니발이 승리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무엇이 사실이건 간에 마르켈루스의 군대는 그 지역에 남았고, 한니발은 그날 밤 진영을 비우고 그 지역에서 철수하였다. 마르켈루스는 전략적으로 한니발을 해당 지역에서 격퇴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로마 (209)

이렇게 한 해가 다 지나고 로마에서는 다음 집정관 선거를 개최할 때가 되었다. 로마법에 따르면 집정관이 선거를 주재해야했는데 집정관 마르켈루스는 원로원에 서신을 보내 자신은 한니발과 대치하고 있으므로 도저히 로마로 갈 수가 없다고 말하였다. 원로원은 시칠리아에 있는 라에비누스를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집정관 라에비누스는 배 10척과 함께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원로원과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가 시칠리아섬을 완전히 평정하였다고 선언한 뒤 항복한 무티네스를 보여주었다. 원로원은 무티네스에게 약속한 포상을 준 뒤 그에 더해 로마 시민권까지 주었다. 그에 더하여 무티네스는 라에비누스의 씨족의 이름을 받았다. 또한 라에비누스는 시칠리아에 머무는 수천명의 강도떼도 데리고 왔는데, 이들을 군에 편입시켜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레기움에 주둔시켰다.

이때 라에비누스가 보낸 해군이 아프리카에 상륙해 우티카 인근을 약탈한 뒤 카르타고인 여럿을 사로잡았다. 심문끝에 로마함대 사령관은 카르타고가 시칠리아를 다시 탈환하기 위해 전함을 건조중이며, 카르타고 본국은 스페인의 하스드루발 바르카에게 스페인을 떠나 이탈리아로 상륙해 한니발과 같이 싸우라고 명령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 소식을 보고받은 원로원은 라에비누스를 지체없이 시칠리아로 보내기로 하였고, 그에게 빨리 집정관 선거를 주재할 독재관을 지명하라고 요청하였다. 이때 라에비누스는 전함을 이끄는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리아를 임명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원로원은 그가 이탈리아 밖에 있음을 들어 반대하였다. 

이 논의가 길어지자 호민관 루크레티우스가 나서서 이를 민회에 회부하였고, 민회에서는 카푸아 점령을 지휘한 퀸투스 풀비우스를 독재관으로 선출하였다. 집정관 라에비누스는 로마법상 독재관 지명은 집정관이 하는 것이 민회가 지명할 권한이 없음을 들어 반대하였고, 자신은 오직 발레리우스 메살리아를 지명할 뿐이라며 고집을 부렸다.

라에비누스가 왜 독재관으로 자신의 부하인 메살리아를 고집하는지는 기록에 없어서 알 수 없으나, 결국 원로원은 할 수 없이 다른 집정관 마르켈루스에게 로마로 방문해 독재관을 지명하라고 요청하였다. 마르켈루스가 단신으로 와서 퀸투스 풀비우스를 지명하고 떠남으로서 이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이윽고 집정관 선거가 개최되었는데 여기서 퀸투스 풀비우스가 입후보하였다. 선거를 주재하는 독재관이 스스로 입후보 하는 게 말이나 되는지 여부가 두 호민관에 의해 제기되었고, 퀸투스 풀비우스는 로마법에 의해 적합하다고 맞섰다.

풀비우스에 따르면 저번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선거를 주재하면서 집정관에 선출된 일이 선례가 있고, 이는 바로 한니발이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은 숙련된 지휘관을 집정관에 얼마든지 임명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둘다 양보가 없자 결국 원로원에게 이 문제가 맡겨졌는데, 원로원은 지금과 같은 전시상황에서는 선출해도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때 40척으로 이루어진 카르타고 전함이 사르데냐섬을 약탈하는 사건이 생겼다. 그 지역 사령관 만리우스 불소가 요격하러 나오자 이들은 우회하여 다른 지역을 약탈한 뒤 아프리카로 돌아갔다.

그해 집정관으로 퀸투스 풀비우스와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선출되었다. 둘은 모두 이탈리아를 담당키로 하였다. 파비우스 전략의 주창자 파비우스 막시무스에게는 5번째 선출이었으며 퀸투스 풀비우스에게는 4번째 선출이었다. 풀비우스는 루카니아와 브루티움을 공격하기로 하였고, 파비우스 막시무스에게는 타렌톰 공격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감찰관으로는 필로와 크라수스가 선출되어 원로원 의원을 다시 조정하였는데, 칸나이 전투 뒤 로마를 떠나야한다는 발언을 한 의원들 8명을 제명하였다. 이 조치가 끝난 뒤 로마 원로원은 앞서 한니발에게 패배한 켄투말루스군의 생존자를 시칠리아섬에 머무는 칸나이 패잔병과 함께 복무하게하는 처벌을 내린다.

이 조치에 로마 식민지민들이 분노한다. 로마 식민지, 즉 Colony는 로마인이 창설한 제도로 현대 식민지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데, 현대와 달리 로마 시대의 Conoly는 로마가 외부 점령지에 로마인을 이주시켜 도시화시킨 도시들이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로마시에 살지 않지만 여전히 로마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군복무할 의무를 지고 있었다. 패배한 켄투말루스 군의 상당수가 로마식민지 출신 시민들이었다. 



이들의 대표는 로마 집정관을 만나 해당 조치에 항의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For nine years, they were saying, they had been drained by having to raise troops and supply their pay; almost every year they faced some terrible defeat in battle; and their men were either being killed in the field, or carried off by disease. A compatriot conscripted by the Roman was more lost to them than one captured by the Carthaginian, they said: by the enemy he was sent home without ransom, but by the Romans he was taken out of Italy into something more aptly termed exile than military service. For seven years the soldier who had fought at Cannae had now been growing old in that exile, and he would die before the enemy––right now at the height of his strength––left Italy. With old soldiers not coming home, and new ones being conscripted, there would soon be no one left! So, they said, they should refuse the Roman people what the circumstances were shortly going to refuse them anyway, and do so now before reaching extreme depopulation and poverty. If the Romans saw the allies in agreement on this, they would certainly consider making peace with the Carthaginians; otherwise Italy would never be free of war as long as Hannibal lived. Such were their discussions at their meetings

구년동안 우리는 병력을 뽑고 이들에게 급여를 지불하느라 모든 것을 탕진하였습니다. 해마다 한번씩은 끔찍한 패배를 겪으며, 때문에 우리 도시의 젊은이는 전투로 죽고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병에 걸려 죽음을 당합니다. 동포인 로마를 위해 싸우는 젊은이는 죽어 없어지고 카르타고인에게 붙들린 이들은 살아남는 게 현실입니다. 

적은 우리 젊은이를 몸값없이 돌려 보내주지만 동포인 로마인은 이들을 전쟁터에 끌고가 죽게 하거나 살아남음 유배형에 처하지 않습니까? 칸나이 전투를 치룬지 어느덧 7년인데, 이 전투의 생존자들은 하루하루 다르게 늙고 있으며 이탈리아에 있는 적보다 더 빨리 죽을 것입니다.

노병은 돌아오지 않고, 젊은이는 계속 징병당하니 결국 우리 도시엔 아무도 남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인구 고갈과 기근으로 멸망하느니 차라리 로마인의 요구를 거절할 생각입니다. 만일 로마인이 이 조치를 반대하면 우리는 카르타고인과 강화를 맺을 겁니다. 한니발이 살아있는 동안 이탈리아에서의 전쟁이 끝날리 없지 않겠습니까?


로마에겐 30개의 식민도시가 있었는데 12개의 도시가 이런 의향을 내보였다. 집정관은 이들을 꾸짖으면서 이는 로마에 대한 배신이며, 그들은 카푸아인도, 타렌톰인도 아닌 다름아닌 로마인임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들의 선조는 바로 로마인인데 어떻게 로마를 배신하고 한니발에게 승리를 넘겨주느냐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 설득도 소용없었고, 결국 이를 원로원에게 보고하였다. 원로원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The consuls saw they were adamant, and they reported the matter to the Senate. Here such panic struck the members that most said the empire was finished, that other colonies and the allies would follow suit, and that they had all banded together to betray the city of Rome to Hannibal.

집정관은 이들이 단호한 것을 보고 해당을 원로원에게 보고하였다. 원로원 의원들은 패닉에 빠졌고 이제 공화국은 완전히 끝장났다고 말하였다. 이들이 배신하였으니 다른 식민도시와 동맹시도 배신할 것이며, 이들은 똘똘 뭉쳐 로마를 배신하고 한니발에게 달려갈 거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