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ilbe.com/view/179854526 (1편 - 전쟁 프롤로그)
https://www.ilbe.com/view/153220626 (2편 - 알프스 행군)
https://www.ilbe.com/view/156383566 (3편 - 트라비아 전투, 트레시메누스 호수의 전투)
https://www.ilbe.com/view/158193101 (4편 - 파비우스 전략)
https://www.ilbe.com/view/160099287 (5편 - 칸나이 전투 )
https://www.ilbe.com/view/163928394 (6편 - 카푸아와 한니발의 동맹)
https://www.ilbe.com/view/167393061 (7편 - 이탈리아 전역)
https://www.ilbe.com/view/174975159 (8편 - 지중해 전역으로의 전쟁의 확대)
https://www.ilbe.com/view/10797401441 (9편 - 시라쿠사의 반란)
https://www.ilbe.com/view/10804711487 (10편 - 시라쿠사의 전쟁 I)
https://www.ilbe.com/view/10813710862 (11편- 타렌톰의 함락, 한니발의 연승)
https://www.ilbe.com/view/10825966530 (12편- 시라쿠사 전쟁 II - 로마의 승리)
http://www.ilbe.com/view/10840167835 (13편 한니발 전쟁기 - 스페인 로마군단의 전멸)
http://www.ilbe.com/view/10853485319 (14편 한니발 전쟁기 - 한니발의 로마 공격, 로마의 카푸아 함락)
http://www.ilbe.com/view/11199613730 (15편 한니발 전쟁기 - 스키피오의 등장과 마르켈루스의 집정관 취임)



로마(210 BC)



로마 원로원에게 카푸아 사절은 눈물로 호소였다. 그들은 카푸아와 로마인의 오랜 밀접한 관계를 상기시켰으며, 두 도시민 사이에 결혼한 이들이 많음을 지적하였다.

이미 로마를 배신한 지도층은 모두 처형당하였고, 선동한 시민들도 모두 그 대가를 치룬 점을 말하였다. 그러고 카푸아 시민이 과거와 같은 자치권을 누리게 해주기를 간곡히 부탁하였다.

원로원은 판결하기에 앞서 이를 민회에 회부하기로 하였다. 민회에서는 민회의 판결 시 쓰는 관용어인, “우리의 소망과 명령” (Our Wish and Command)으로 시작되는 공문과 함께 로마 시민은 해당 문제를 원로원에게 맡긴다는 답변을 하였다. 

이에 원로원은 카푸아 시민들의 라틴시민권을 박탈하고 자치권을 박탈하며, 이후 통치는 로마에서 파견 나온 관리가 할 것이며, 시민들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방침을 선고하였다. 

이 일이 끝난 뒤 해군을 유지할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를 논의하였다. 이때 로마의 국고는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원로원은 논의 끝에 이를 각 시민들에게 공출 받기로 하고 이 방침을 발표하였다. 



집정관이 포럼에 나와 이를 낭독하니, 로마 시민들은 엄청난 격노에 휩싸였다. 

This announcement met with such a howl of protest, and such indignation, that what was lacking for a riot was not so much the conditions as a leader. The consuls, people claimed, had now picked on the common folk of Rome,* after the people of Sicily and Capua, as their next victim for ruin and persecution. Drained year after year by tribute, they were now left with nothing but their land, and that was bare desert, they said. The enemy had burned their houses, and the state had appropriated the slaves that worked their land, buying them up cheaply for the army, or else commandeering them as oarsmen. All silver or bronze in anyone’s possession had been taken from him to pay oarsmen and the annual taxes. And now there was no coercion, no authority by which they could be forced to give what they did not have. The state could sell their property, and maltreat their bodies––which was all that remained to them! They had nothing more with which they could even be ransomed!

집정관이 낭독하자 마자 바로 불만에 가득한 함성을 맞닥뜨렸다. 시민의 분노는 상당해 만일 선동하는 인물이 있었다면 반드시 폭동으로 번졌을 것이다. 

“시칠리아와 카푸아 시민의 재산을 강탈하고 나니 이제 로마 시민의 재산도 탐내는 건가? “

“해마다 재산을 징발해서 이제 남은 건 불초지가 된 농장 밖에 없고, 집이라고 있는 건 한니발이 와서 싹 불태워버렸다. 그런데 정부가 와서 헐값에 노예를 끌고 간 다음, 모든 귀금속은 세금이랍시고 노잡이 고용한다고 싹 털어 가기만 하더니, 이제는 없는 재산까지 내놓으라고 하는가?“

“시민의 재산을 압류해 팔아 치우고 몸뚱이만 남음 그걸 인질로 잡은 뒤 몸값을 요구하면 되겠군!!”



집정관은 상황을 간신히 모면한 뒤 원로원에 와서 발언하길, 시민들에게 징발하려면 우선 지도층이 모범을 보여야한다고 말하였다. 원로원은 각자 그들의 재산을 내놓았으며 이를 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선단을 유지할 자금을 확보해내는데 성공한다.

이로서 모든 조치가 끝났고, 두 집정관은 각자 자신이 맡은 지역으로 가기 위해 도시를 떠났다.


이탈리아 (210 BC)

한편, 카푸아가 로마에 의해 점령당하였고 한니발이 이를 지켜내지 못함을 본 이탈리아 내의 친 카르타고 도시들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들 중 살라피아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이 도시의 지도자 중 한명인 블라티우스는 로마 측에 붙고자 하였다. 그는 동료 지도자인 다시우스를 만나 이 계획을 말하였는데 다시우스는 동의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잡아 한니발에게 끌고 갔다. 



이때 한니발은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두 지도자가 그를 만나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하자 꽤 성가셔 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음해하는 거라고 생각한 한니발은 조사없이 이들을 돌려보냈고, 도시로 돌아온 두 지도자는 마음을 바꿔 로마 측에 붙기로 결정한다. 이들은 마르켈루스에게 편지를 보낸 후, 충성의 표시로 그 도시에 주둔한 한니발의 500명의 누미디아 기병을 습격하였다. 예고없이 이루어진 습격임에도 이 500명은 최후의 순간까지 저항하였는데, 전투 중 생포된 50명 빼고 모두 죽을 때까지 싸운 것이었다.

한편 타렌톰에서 로마 해군과 타렌톰 해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타렌톰 해안가에 로마군이 주둔한 성채가 있었는데, 이 성채에 보급하기 위해 로마 해군 장교 퀸티우스가 20척의 선단을 이끌고 온 것이었다. 퀸티우스는 3척의 선단을 받아 운용하다 차츰 능력을 인정받아 20척을 지휘하는 지위까지 올라간 장교였다. 

퀸티우스의 해군이 나타나자 타렌톰 지도자인 니코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선단을 이끌고 나왔다. 두 해군은 닺을 내리고 백병전을 시작하였는데, 로마 사령관 퀸티우스가 경솔히 앞장서서 진두 지휘하였고, 이를 본 니코가 기함을 이끌고 돌격하여 그를 운 좋게 전사시킨다. 사령관의 죽음을 본 로마 해군은 싸움을 멈추고 철수하였고, 그 결과 타렌톰 해군이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한니발 본대 외엔 항상 지기만 하던 카르타고 측이 모처럼 얻은 승리였다.


시칠리아 (210 BC)

시칠리아에서는 로마 집정관 라에비누스가 상륙하여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는 중 이였는데, 마침 아그리젠툼에 주둔한 카르타고군 내에서 내분이 일어났다.

시칠리아 주둔 중인 카르타고 군의 누미디아 기병대를 지휘하는 기병사령관은 무티네스였다. 그는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보낸 군인으로 한니발은 직접 편지를 써서 그의 능력이 대단함을 스스로 보증한 바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그는 카르타고인이 아닌 누미디아인임에도 불구하고 누미디아 기병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의 직책을 받았고, 수행할 수 있었다.

그는 기대에 걸맞게 기병대를 이끌고 친 로마측 도시를 수없이 공격하고 다녔다. 그가 논밭을 불사르고 약탈하고 심지어 점령도 하고 다니자 친 카르타고 계열의 도시민들에게 무티네스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카르타고군 사령관인 한노가 이를 탐탁치 여지기 않았다. 카르타고 본국에서 시칠리아 담당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군사지휘권과 함께 보내진 한노는 자신의 신분과 누미디아인인 무티네스를 비교하면서 그의 명성을 질투하였다. 무티네스의 명성이 높아질 때마다 그는 기분 나빠 하였으며, 급기야 무티네스가 전공을 세울 때마다 기뻐하기는커녕 분노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한노는 무티네스의 기병 지휘권을 박탈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무티네스를 기병사령관에서 해임하고 자신의 아들에게 누미디아 기병대 지휘권을 넘겨준 것이었다. 

이 결정을 들은 무티네스와 그를 따르는 누미디아 기병은 로마에 붙기로 하였고, 이들은 집정관 라에비누스에게 편지를 보내 아그리젠툼을 공격하면 안에서 호응하겠다고 하였다.

약속이 정해졌고, 로마 집정관 라에비누스는 시칠리아 휘하의 군을 소집해 아그리젠툼을 공격하였다. 과연 무티네스는 공격이 시작되자 마자 성문 수비대를 살해한 뒤 성문을 열었다. 로마군은 도시에 순조롭게 진입하였다. 

한노는 잠을 자고 있다가 소동이 벌어지자 잠에서 깼다. 사방에서 들리는 라틴어 억양의 고함소리에 무슨 상황인지 파악한 그는 에피사이데스를 불러와 작은 배를 타고 카르타고로 도망간다. 사령관이 도주하자 남은 카르타고 군은 모두 생포되어 처형되거나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다.

아그리젠툼이 함락되고 도시에 주둔한 카르타고의 주력군이 소멸한 소식이 퍼지자 시칠리아 섬의 친 카르타고 도시는 모두 저항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40개의 도시가 항복하였고, 20개의 도시가 내통하여 로마 측에 성을 넘겼고, 6개의 도시는 저항하다 함락당하였다. 이렇게 총 66개의 도시가 로마 측에 넘어 감으로서 로마가 시칠리아 섬을 완전히 평정하게 되었다.


스페인 (209 BC)

한편 스페인으로 떠난 스키피오는 에보로강 북쪽 주둔지에 머무는 로마군에게 자신이 도착하는 장소에 집결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주변 동맹시에게 그 지역으로 보조군을 보내라는 공문을 보낸 뒤 배를 타고 그곳으로 향하였다. 자신이 지휘할 병사들과 첫 만남을 가진 스키피오는 장문의 명연설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3,000 보병과 300 기병을 그 지역에 남기고, 나머지 25,000 보병과 2,500 기병과 함께 남쪽을 항해 행군하기 시작하였다. 스키피오는 그에게 주어진 35척의 전함을 자신의 친구인 가이우스 라이리우스에게 맡겨 자신이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합류하라고 하였다. 그 목적지는 바로 카르타고 스페인 세력의 수도, 카르타헤나였다. 





역사가 리비우스에 따르면 스키피오는 단 6일만에 카르타헤나에 도착하였다고 하였고 폴리비우스에 따르면 7일이라고 하였다. 이는 하루 80 KM를 행군해야 하므로 불가능한 속도이다. 어떤 학자의 설명으로는 17일을 7일로 잘못 적은 것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Seventeen을 Seven으로 잘못 적었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사실이건 간에 스키피오는 기습의 효과를 얻기 위해 매우 빠른 속도로 행군하였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카르타헤나에 도착한 스키피오는 진영을 꾸리고 연설을 한 뒤 곧장 공격을 개시하였다. 카르타헤나 수비 사령관인 마고에겐 고작 2천명의 병력이 있었는데, 그는 서둘러 2천명의 성인 남성을 무장시켜 병력을 늘렸다. 그 뒤 이들과 함께 성문을 열고 로마군 진영을 향해 돌격하였다. 

마고는 기습이라 생각하였지만 스키피오는 예상하고 있었다. 응전하러 온 로마군이 팽팽히 맞섰고, 뒤이어 나타난 지원군에 의해 스페인 시민병은 패주하여 달아났다. 






이제 남은 것은 공성전이었다. 스키피오는 모든 병사에게 진영에서 나와 사다리를 들고 공성을 시작하라 명령하였고 자신도 직접 성벽을 향해 달려갔다. 투석무기가 쏟아지자 세명의 젊은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스키피오를 보호하였다. 

한편 로마 전함도 나타나 바다를 면한 성벽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 공격으로 적이 신경이 분산되는 틈을 타 로마군은 사다리를 성벽에 놓았다.

이를 본 카르타고 측의 수비대장 마고는 서둘러 더 많은 수의 병사를 성 위에 배치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로마군에게 있어 더 괴로운 것은 병사보다는 성벽의 높이였다. 성벽은 대부분의 사다리보다 높았고 긴 사다리는 많은 병사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사방에서 사다리와 로마병사들이 떨어지기 시작하였고 카르타헤나 수비군은 환호하였다. 

그러나 스키피오는 동요하지 않고 병사들이게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것을 지시하였다. 이때 드디어 썰물이 오기 시작하였다. 도시의 북쪽에 얕은 바다호수가 있었는데 썰물이 되면 수심이 낮아져 성벽을 통하는 통로가 드러나는 약점이 있었다. 스키피오가 이를 공략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스키피오는 5백명의 병사를 자신이 직접 이끌고 이곳을 향해 나아갔다. 이때 스키피오는 병사들에게 주장하길 자신은 신의 계시를 받았으며 길을 터주어 인도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공격이 카르타헤나의 점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현대의 학자들은 왜 수심이 얕아지는지 추정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중해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거의 없는 바다이고, 바다호수는 이미 18세기에 메꾸어 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고가 이곳에 병사를 배치해두지 않은 것 또한 의문을 자아낸다. 하지만 무엇이건 간에 기록에 따르면 이곳을 통해 스키피오와 5백 병사는 저항없이 도시 내로 진입하였고, 곧장 공성전이 벌어지는 성문으로 이동하여 카르타고 수비병의 배후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를 본 수비병이 혼란에 빠지는 동안 스키피오와 그의 병사들은 성문을 열었고, 로마 병사는 대형을 갖춘 상태로 그대로 성문안으로 돌진하여 시내의 포럼까지 이동하였다.

로마군이 진입하자 마고는 성채로 달아났고 성 위의 수비병은 마고를 따라 성채로 달아나거나 혹은 북쪽의 언덕으로 도망갔다. 로마군은 첫번째 돌격에 북쪽의 언덕을 점령하였고 나머지는 성채를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였다. 

이 와중에 도시를 가득 메운 로마군은 그들과 마주치는 모든 생명을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폴리비우스에 따르면

[The Roman general Scipio Africanus] directed [his soldiers], according to the Roman custom, against the people in the city, telling them to kill everyone they met and to spare no one, and not to start looting until they received the order. The purpose of this custom is to strike terror. Accordingly one can see in cities captured by the Romans not only humans who have been slaughtered, but even dogs sliced in two and the limbs of other animals cut off. On this occasion the amount of such slaughter was very great

스키피오는 병사들에게 로마의 관습에 따라 만나는 모든 이를 죽이고 누구도 살려주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명령이 있을 때까지 어떤 약탈도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해당 관습의 목적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로마인이 점령한 도시는 항상 사람 뿐 아니라 심지어 개까지 둘로 쪼개지거나 사지가 절단되어 있었다. 이 점령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수의 생명이 살육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리비우스도 다음을 서술하였다

Until the surrender of the citadel the slaughter continued throughout the city, and no adult male meeting the Romans was given quarter. Then, the signal given, the bloodbath ceased, and the victors turned to the plunder––an enormous assortment of all sorts of things

성채가 항복할 때까지 살육은 전 도시에 걸쳐 자행되었다. 로마인을 만나는 어떤 성인 남자도 생명을 보존할 수 없었다. (성채가 항복하자) 살육을 멈추라는 신호가 보내졌고, 병사들은 약탈을 하기 시작하였다. 엄청난 양의 전리품이 쏟아져 나왔다. 


마침내 마고가 항복하였고 로마군은 10,000명의 남자 자유민을 포로로 잡았다. 스키피오는 이들 중 카르타헤나 시민을 풀어준 뒤 도시를 재건하라고 명령하였다. 또 2천명의 기술자도 잡았는데, 스키피오는 이들을 국유화할 것을 선언한 뒤 노예로서 로마군에 봉사하게 하였다. 젊은 외국인과 노예들은 모두 로마 전함과 수송선의 노잡이로 징발하였다. 도시내의 엄청난 수의 군수물자와 식량, 그리고 금과 은도 모두 로마군이 차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