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냥





성냥의 역사는 독일의 화학자 헤니히 브란트가 저절로 불이 붙는 인을 처음 발견하였던

1669년에 시작됬지만,너무나도 쉽게 발화되는 흰 인은 사용하기 쉽지 않고 또한 위험하였다.






그후 1680년에 영국의 과학자 보일이 건조시킨 종이에 인을 발라 문질러

불을 일으키는 원리를 알아냈지만 결국 성냥으로 완성시키지는 못하였다.








그후 1827년이 되어서야 영국의 약제사인 존 워커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마찰성냥'을 만들어 자신의 고향에서 팔았다.

루시퍼라고 불리우는 이 성냥은 1826년 화학실험 중에 우연히 염소산칼륨과 황화안티모니를 섞는 실험을 하다가 발명되어졌고

그 방식은 나뭇개비에 두 화학물질을 바르고 종이에 유리가루, 규조토를 발라 서로 마찰시켜 불을 붙이는 방식이였다.

존 워커는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에서 루시퍼 성냥을 팔았지만 불꽃이 너무 크게 발생하여

위험한 물건처럼 보였고, 사람들의 눈에는 그다지 쓸모가 있어보이지 않았다.




이후 계속되는 가계부채로 인하여 자신의 성냥레시피를 영국의 사업가인 이삭 홀든경에게 판매하였고

홀든경은 성냥에 대한 모든 특허를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 낸 뒤 이후 스웨덴의 화학회사에 판매하여 큰 이익을 낸다.

결국 최초의 현대식 성냥을 만든 존 워커는 자신의 희대의 발명품으로 인한 수익을 얻지 못한채 사망했다.





2. 전함용 증기엔진



19세기 미국에서 태어난 벤자민 브래들리는 노예의 신분이였다.

그 당시의 다른 노예들 처럼 그는 학교가 아닌 주인의 자녀들에게 교육받으며 자라왔다. 





뛰어난 수학 능력과 독서 능력을 가졌던 그는 1830년 경에 기술자로 인정받아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에 있는 미 해병아카데미에서 여러 실험을 돕기 시작하였다.





기술자일을 하던중 벤자민은 기존에 있던 증기기관을 전함엔진으로 소형화 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는 수많은 전함에 장착되었다.





하지만 노예였던 그의 신분으로 인하여 특허도 내지 못한채, 이 희대의 발명가는 한달에 고작 2달러를 받았으며, 나머지 수익은 모두 그의 주인에게 돌아갔다. 자신의 발명품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없었지만 이후에 그는 자신이 모아온 돈으로 신분을 사 자유민이 되었다.







3. 감자칩




지금도 우리들에게 친숙한 먹거리인 감자칩은 미국의 요리사 조지 크럼에 의해 발명되었다.

인디언과 흑인의 혼혈이었던 크럼은 다혈질로 화를 잘냈고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만약 손님이 음식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으면 다음에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이상한 음식으로 만들어 다시 내놓았으며

그러고는 화를 내거나 문을 박차고 나가는 손님의 반응을 보고 즐기는 괴짜 요리사였다.



1853년 어느 날 자신의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이 주문한 감자 튀김이 너무 두껍고 제대로 익지도 않았다며

불평을 쏟아내고 다시 만들어오라고 하자 화가난 크럼은 특유의 괴짜 버릇이 발동하여 주방장에게 포크로

감자를 찍을수 없도록 최대한 얇게 썰라고 주문하였다. 





그런 다음 냅킨에 싸서 30분 동안 얼음 물에 담가 놓았다가 뜨거운 기름에 넣어 튀겼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감자 위에 소금을 잔뜩 뿌린 후 손님의 식탁에 내보냈다.




그런데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내왔다며 화를 내며 떠나야할 손님이 오히려 맛있다며 더 달라고 주문을 하자

크럼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렷다. 손님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아예 '포테이토 크런치'라는 메뉴로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이후 크럼의 레스토랑에서만 서비스를 하던 이 음식은 식당의 주방장이 독립하면서

고객을 끌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사라토가 칩이란 이름으로 서비스하였다.

하지만 처음 감자칩을 만든 조지 크럼이나 나중에 독립하여 사라토가 칩을 유행시킨

주방장 모두 특허를 받지않아 전 세계적인 음식을 만들어 놓고도 큰 수익을 얻지 못하였다.




4. 마우스


 

1968년 캘리포니아의 시빅센터에서 열린 합동 컴퓨터 컨퍼런스에 마치 공상과학영화에

나올 법한 특이한 차림의 인물이 발표장 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의 손에는 네모난 나무통에 두개의 금속 원반을 수직으로 갖다 붙인 기괴한 상자가 들려있었고

청중들은 그때까지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던 새로운 물건을 모두 놀랍고도 궁금한 표정으로 숨죽여 바라보았다.





이날 청중들은 그의 발표와 손에 들린 물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존의 복잡한 입력방식이 아닌 조그만한 상자를 휘두르는 것 만으로도 고 난이도의 작업을 할 수있다는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훗날 '마우스'라고 불리는 이 조그만한 상자의 개발자인 더글라스 엥겔바드는 마우스를 전혀 상업적으로 판매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오로지 과학 혁신과 컴퓨터가 인류에게 유용한 작업 도구로 사용될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있었기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일하고 있던 회사인 SRI는 엥겔바드의 허락 없이 마우스에 특허권을 자사에 부여한 이후

단돈 4만 달러에 APPLE에 팔아 넘겼으며 이로 인한 수익금은 엥겔버드에게 단 한푼도 돌아가지 않았다.





5. 스마일리




누구나 다 아는 이 웃는 표정은 1962년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던 하비 볼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회사인 스테이트 뮤추얼 라이프 어슈런스는 오하이오 주에 있는 개런티 뮤추얼 컴퍼니라는 회사를 인수하였다.
회사는 하나가 됬지만 직원들은 쉽게 하나가 되지 못하였고 서로 보고도 그저 데면데면 했다.




회사 간부진은 직원들을 융화시키기 위하여 '우정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그 캠페인에 쓸 웃는 이미지를 당시 광고 대행사를 운영하던 하비 볼에게 주문하였다.볼은 불과 10분만에 웃는 얼굴을 그려서 '스마일리'로 이름 지은 뒤 회사에 넘겨줬으며 회사는 그것을 뱃지로 만들어 돌렸다.





처음에 돌린 100개에 대한 반응이 좋자 1만개를 제작하기 시작하며 용도가 사내 융화가 아닌 고객 마케팅에 활용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양복의 옷깃에 스마일리 뱃지를 달고 다니며 전화를 받을 때나 고객을 만나 상담할 때 항상 웃도록 지시했다.




이후 스마일리는 미 전국으로 퍼져 나갔지만 돈을 번 사람은 하비 불이 아닌 머레이와 버나드 스페인이라는 형제였다.
이들은 뱃지와 커피 잔, 티셔츠, 범퍼 스티커 등에 스마일리를 인쇄하여 팔았고 72년까지 5천만개의 뱃지가 팔려나갔다.
볼이 스테이트 뮤추얼 라이프로 부터 불과 45달러밖에 받지 못한 것과 극히 대조적이었으며

나중에 볼이 특허를 출원하려고 할때는 이미 신청기한이 지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