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6.25 전쟁의 개전이 있고 나서 제일 주목받는건 육군, 그리고 해군의 대한해협 전투임. 공군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주목도가 떨어지는데, 그 이유는 대한민국 공군에 제대로 된 전투기가 한 대도 없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남북간 공중전 또한 6.25 초반에 있지 않았기 때문임. 솔직히 말하자면 할 수 있는게 없어 그냥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한 수준이기 때문이기도 함. 당시 북한 공군은 IL-10 70대, Yak-9 40대를 원조받은 반면 아측은 전투기 0대! 단 1대도 없는 0대! 였으니까 말야.
물론 이 일들은 북한군에게 얻어맞기만 해서 강조되지 않는것도 아님. 북한 공군은 개전 3일만인 27일부터 미 공군에 의해 활동이 제약되기 시작했고, 이에 작전범위와 세력은 급감하여 8월 초가 되면 사실상 공군이 없는 수준에 도달했음. 즉 남측은 쓸 비행기가 없어 얻어만 맞았고 북측은 3일동안 찍 싼후 미공군에 의해 쓰나미 처맞듯 쓸려나가 뭐 남은게 없다고 봐야 맞겠음.
참고로 우리 공군은 7월 3일부터 활동에 들어가는데 그때쯤이면 북한 공군은 이미 아측 공역에서 활동이 불가한 상태였음.


6월 25일

북측 전투기가 오전 10시부터 서울 상공을 정찰하기 시작했음.​ 당연히 마땅한 대공 수단도 전투기도 없는 아측이 이를 요격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적기는 유유히 정찰을 하고 돌아갔음. 이후 12시부터 북한 공군 소속 Yak-9 4대가 기총과 폭탄을 이용해 용산과 여의도 비행장을 공습했음.

같은 날 16시에는 김포 비행장과 5대의 Yak-9이 공습을 가해 아공군 소속 T-6 연습기 1대와 미국인 소개용 미공군 소속 C-54 수송기 1대를 파괴함. 김두만 전 공군참모총장은 이날 공습에서 공군 요원들의 월북을 막기 위해 연락기와 텍산에 연료를 모두 빼 두었는데 이 덕분에 다른 항공기들이 추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전했음. 실제로 1950년 5월 이명호 소위가 T-6 텍산 한 기를 몰고 임무수행 중에 월북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임.




 

 

 

-김포 비행장에 유기되어 있는 북한 공군 소속 IL-10 슈트르모빅
 

 

-김포 비행장에 파괴된 채 유기된 북한 공군 소속 Yak-9
 

 

-건국기라고 불리는 T-6 텍산 훈련기
 

 

-김포에서 파괴되었던 미 공군 소속 C-54 스카이마스터




6월 26일~27일

6월 26일에는 김포비행장과 여의도 비행장이 북한 공군 Yak-9 2기에 의해 추가로 공습이 이루어짐
6월 27일에는 여의도 비행장과 서울시내 주요 표적을 향한 Yak-9의 공습이 이루어짐.

상세한 기록이 많이 없는 것으로 보아 큰 피해를 입은 것 같지는 않으나, 27일부터는 북한 공군과 미 공군과의 본격적인 공중전이 있었음. 북한군은 27일 미 공군 F-80 편대와의 두 번의 교전에서 La-7, Yak-11, IL-10 슈트르모빅 등의 기체 총 7기를 손실한 반면 미 공군은 단 한대도 격추되지 않으면서 북한 공군은 큰 손실을 입었음.



6월 28​~29일

6월 28일, 북한 공군은 수원비행장을 급습하여 주기되어있던 미 공군 소속 기체 F-82 2기, B-26 1기, C-54 1기, 도합 4기를 격파했음. 그동안의 성과에 비하면 제일 나은 성과를 보여준 날이기도 함. 28일에 서울이 북한군 수중에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군은 더 남쪽으로 작전범위를 확대해 수원비행장을 공습한 것으로 보임.

6월 29일 역시 수원비행장을 급습하여 C-54 한대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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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맥아더는 방금 공습당한 수원비행장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와 전황을 살피기 시작했고, 미 해군과 공군의 작전범위를 한반도 전체로 늘렸음. 결과적으로 미 공군과 해군은 좀 더 공세적인 작전을 펼치게 되었고 북한 공군은 짧디짧은 공세작전을 뒤로 한 채 미 공군에게 죽도록 얻어맞는 상태가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