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lbe.com/view/11183653531
-금본위제도 대해 대충 알아보자.araboja-

화폐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원하는 물건을 구할때는 물물교환으로 했다
허나 과거 사람들이 원하는 물건을 서로 교환시도할 때 교환을 할 물건의 가치부분에서
서로간의 의견차이로 공정하게 거래가 안된다는 문제가 자주 발생했다

이 문제는 물건의 가치를 매겨줄 대체품을 찾아야 했고
결국 어느나라든 가치에 변함이 없는 금이란 금속을 금화라는 화폐로 사용하게 되면서 
물물교환에서 유통화폐로 발전하게 되었고 후에 금을 대체할 수 있는 화폐의 가치는
금의 일정무게를 기준으로 고정시켜 놓은 통화시스템인 금본위제도를 만들어 사용했고
금을 직접 금화라는 화폐료 사용하는 금화 금본위제도를 이용했다


하지만 금 생산량이 유럽 전국 통화량에 미치지 못했기에
금과 같이 사용할만한 대체 금속을 찾아야 했고 곧 은이란 금속을 눈여겨보게 된다
은은 금보다 가치가 떨어지긴해도 생산량 부분에서 금보다 많았으며 
은 순도부분에서 은 제련술에 따라 순도가 높아지면 금보다 높은 가치성을 가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은을 은화라를 화폐로 만들어 금화만으로 부족한 통화량을 채우게 시작했고
금과 은의 1:13 교환비율을 정하며 금과 은을 같이 사용한다는 금은 복본위제도를 사용했다


허나 세월이 흐르면서 금을 채굴하는 금광보다 은광이 많아지게 되는데
유럽이 발전하면서 늘어나는 통화량를 따라잡기 위해 금화만으로 부족한 통화량부분을 은화로 점점 메꾸게 되었다
그렇게 부족한 통화량을 은화로 메꾸기 시작하면서 은화가 흔한 화폐가 되버리자 
은화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게 되었고 곧 유럽전국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화폐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늘어나는 금화의 가치가 점점 늘어나면서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점점 벌어지게 되는데
여기서 금으로 물건을 사는 것보다 오랫동안 보관을 해서 나중에 점점 가치가 떨어지는 은화로 교환해 사용하는 것이 
이득인걸 알게 된 상인,왕족,귀족,교회 세력들이 유통되는 대부분의 금화를 금고에 보관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유럽의 금은 복분위제도는 유명무실해지고 
실상은 은화가 유럽 통화량을 담당하는 은본위제도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금융서비스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은본위제도로 유럽은 은화가 기준화폐가 된 지 16세기가 무렵
스페인이 아메리카 남미대륙에서 거대한 은광을 발견하면서 전환을 맞게 된다
남미대륙에서 오는 은의 무게가 kg 단위가 아닌 Ton 단위로 18세기 말까지 꾸준하게 스페인으로 들어왔고
덕분에 은본위제도를 사용하던 유럽에서 스페인이 강력한 은 생산국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스페인이 제조하는 8레알 은화는 무게와 순도를 지켜야 할 은본위제도의 규칙을 무시를 하며 
제조할 때마다 무게와 순도가 불규칙적으로 8레알 은화를 제조생산하는게 문제였다
하지만 스페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8레알 은화를 무한정으로 생산했고 스페인은 잦은 전쟁으로 
스페인 국고 70%가 유럽전쟁비용으로 이 은화가 유럽 전 곳곳에 빠져나가게 되었다
결국 불규칙한 무게와 순도를 가진 8레알 은화임에도 불구하고 무지막지하게 제조해서 전 유럽에 뿌려 흔하딘 흔한 은화가 되었고
16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유럽 은화의 기축통화로서 자리잡게 되어 국제무역이 활발하게 되었다.

==은행의 등장과 금핵 금본위제도==
금을 직접 화폐로 한 금화 덕분에 물물교환에서 유통화폐로 자리잡게 된
금화 금본위제도도 편하긴 해도 몇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금화의 무게였다
금의 밀도량이 은의 밀도량보다 높았기에 적은 부피로도 무게가 나가서
소량의 금화로는 문제가 없지만 대량의 금화를 소지하고 다니는데 상당한 불편을 지니고 있었다

두번째는 화폐 훼손문제였다
일정한 규격과 순도로 생산한 금화라 할지라도 사람의 손을 거치다보면 자연스레 마모가 되어버리고
금을 직접 화폐로 만들어서 유통시키기에 금화의 순도는 높아야 되는데
금은 복본위제도에서 은본위제도로 넘어가며 금의 가치가 올라가자 
금화의 테두리를 조금씩 깍은 소재라도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 이것을 되팔이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번째가 가장 문제였는데 인간의 욕심이였다
금이란 시간이 지나거나 많이 모아도 가치의 변함이 없었고
모든 물건 구매에는 반드시 금화가 필요하다는 공통된 인식때문에
인간의 생명이 간단히 사라지는 옛날 치외법권 세상에는
금화를 소지한 사람들한테 훔치거나 죽이고 금화를 빼앗는 도적들이 많았다


이렇듯 언제 금화를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은 사람들은
자신의 금화를 안전하게 보관해줄 시설을 원하게 되었고
10세기 유럽과 아랍 중국에서 은행이 등장하게 되었다
은행은 금화를 안전하게 보관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으며
금화를 맡겨준 사람에게 종이나 양피지에 증서를 작성해서 주는데
이는 금화를 대신을 할 화폐를 발행해서 유통하는 방법이라고 해서
금핵 금본위제도라고 부른다


이 금핵 금본위제도는 금화 금본위제도보다 압도적으로 편한점은 엄청난 활용도였다
종이나 양피지에 글만 적었을 뿐인데 금화랑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고
금화보다 무게가 가볍고 접던가 돌돌 말아 넣던가 겹치던가 등 휴대하기 편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대신 증서는 마음만 먹으면 금화보다 쉽게 위조할 수 있는 단점이 있어서 잘못하다 사기당할 우려가 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물건을 살 때 필수적인 금화가 아닌
금화를 여기 은행에 보관을 했다는 종이나 양피지에 작성을 한 증서뿐인지라
금화랑 동등하다는 증서라는 화폐는 물건 파는 사람 입장에서 과연 이걸 믿고 사용할 수 있냐는 신용 문제였다
신용이 없어지면 금과 동등한 가치가 있다는 증서는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되버리기에 
상인,은행,국가,교회 등 금핵 금본위제도를 사용하긴해도 상당한 신용 없이는 사용하기 무척이나 어려웠고
신용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사용을 해왔기에 금핵 금본위제도는 대중에게 퍼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처럼 은행의 업무는 금화를 언제 뺏기거나 잃어버릴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금화를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해 둔 대신으로 예금주에게 적당한 수수료를 받고 
은행은 예금주가 여기에 예금했다는 증서를 써서 예금주에게 나눠주는
예금 과 출금 업무로 끝날을텐데 아직 한가지가 남았다

예금주들이 은행에 금화를 보관하면
오랫시간동안 증서 가지고 환금하러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은행인들은 깨달았고
금고에 예금된 금화를 다른사람에게 빌려준 뒤 거기서 얻는 대출이자로 은행의 수익을 올리는
대출 업무를 하게됐다


물론 은행에 금화를 맡긴 예금주들은
본인 허락없이 맘대로 금화를 다른사람에게 준 사실을 알고 ㅂㄷㅂㄷ거리며 화를 냈지만
은행들은 대출하면서 얻는 은행의 이자수익의 일부를
금화를 예금한 예금주들에게 나눠주는 예금이자 방식으로 잘 무마해서 해결했다


물론 은행의 대출은 상당한 리스크를 따르는 방법이였고
대출하는 은행도 대출받는 사람간의 상당한 신용도가 필요한 부분이였으며
은행이 대출 잘못하다 실패해서 금화 떼먹혔다는 소문이 예금주들 귀에 들리면 
증서들고 금화 찾으러 은행에 우르르 처들어가 금화를 돌려받을려는
뱅크런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은행은 예금업무 / 출금업무 / 대출업무 로 일하면서
대출금리를 정해서 다른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일정기간마다 대출의 이자로 수익을 올리고
예금금리를 정해서 대출금리로 얻은 수익의 일부분을 예금주들에게 은행의 이익의 일부를 나눠주는 등
점점 세분화와 전문성이 늘어나며 은행/보험/증권사 등의 금융서비스 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다  

==중앙은행의 첫 탄생==

16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는 네덜란드는
대서양과 지중해 무역 중심지로 유럽의 모든 물건이 네덜란드 중계지점으로 모여드는 
황금알을 낳는 나라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비록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는데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5세는 네덜란드한테 자치권을 줄 정도록 관대한 지배자였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왕가의 남미대륙식민지를 제외하고도 유럽의 거대한 영토로 가지고 있어 
유럽 주변국과의 잦은 전쟁을 벌어야 했으며 전쟁에 필요한 군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네덜란드한테 과도한 세금를 징수해 가 자츰 불만이 커져가고 있었는데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선언이후 네덜란드내에서 개신교세력들이 늘어나자 
전통 카톨릭교를 믿는 카를5세 입장에선 아주 악질적인 악마들로 보고 
관대함을 벗어나 몽둥이로 강력하게 뚜드리며 억압을 하며
네덜란드와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종교충돌이 번번히 일어나면서 혼란이 커져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노년에 접어든 카를 5세는 자신을 뒤를 이은 스페인 펠리페 2세에게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위를 물러준 뒤로 퇴위했고
왕위를 이은 펠리페 2세는 건방떠는 네덜란드 태도에 관대한 아버지 카를 5세처럼 아닌 무력으로 탄압했으며
네덜란드에 살고있는 개신교들을 축출하여 충선스런 카톨릭교도들로 만든 후
자치권을 폐지해서 스페인 중앙집권화로 만들려는 행동에
네덜란드는 스페인 상대로 기나긴 독립전쟁을 벌이게 되버린다

스페인상대로 기나긴 독립전쟁을 벌이던 네덜란드는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 인베치블 대함선이 영국과 네덜란드 연합함선에 대패를 하면서
스페인의 네덜란드 원정계획이 무너지게 되면서 네덜란드가 대서양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1607년 지브롤터 해전에서 네덜란드 함선이 스페인 함선을 이기게 되면서
스페인은 더이상 네덜란드와 전쟁할 여유가 없어지게 되자 네덜란드를 협상에 불러들여 12년 휴전조약을 맺고 철수하게 되었다
이 12년 휴전협약으로 네덜란드는 12년이라는 독립을 만끽하면서 대서양의 강대한 함선을 보유한 강국이 되었고
동인도 회사에서 들여오는 수많은 물건과 기호품으로 부를 채워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벌이는동안 무역도 하고 여기저기 나라에서 네덜란드 독립전쟁지원도 받다보니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스페인 8레알 은화뿐만 아니라 가지각색의 나라에서 들어온 은화과 금화가 뒤섞이면서 
무려 1000여종이나 되는 화폐주화가 네덜란드에 유통되는게 문제였다
이 문제로 네덜란드 상업은행들간의 화폐거래 시스템에서 많은 혼란이 일어났었고 
금과 은의 순도 함유량이 불량인 것과 위조가 섞인 화폐가 있어 화폐 신용 또한 떨어져가고 있는 중이였다


그래서 네덜란드 시의회에서 다양한 금과 은의 화폐의 제도를 바로잡아서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17세기1609년 네덜란드는 유럽 최초로 중앙은행인 암스테르담 은행을 설립했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민간이 세운 상업은행이 아닌 정부가 직접 세운 중앙은행으로서
우선 암스테르담에 돌아다니고 있는 다양한 금과 은의 화폐를
금괴부터 시작해서 일반적인 금화나 훼손된 금화까지 네덜란드 화폐단이인 길더로 품질과 가치를 매겨
화폐를 표준화를 시켰다 그리고 지역에 흩어져 있는 조폐소들을 암스테르담 은행 한 곳으로 모아두어
화폐의 발행권을 정부가 독점해서 관리를 했다 
그다음으로 계좌를 가진 상인으로부터 금과 은을 예금하면
은행화폐라는 일종의 수표개념을 계좌를 가진 상인에게 주는데
"이 은행화폐는 네덜란드 중앙은행에서 만들었으며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금 은을 주고받을 필요없이 거래가 가능하며 은행에서 환금가능하다"
는 은행화폐의 보증부분을 민간 상업은행이 아닌 네덜란드 정부가 직접 보증을 맡았다
마지막으로 암스테르담 은행으로 네덜란드 상인들은 계좌를 개설하고 은행에 예금을 하러 몰려들게끔 하기 위해
600 길더 이상의 거래를 할경우 무조건 은행화폐를 통해 거래하도록 규정했다
다만 설립 초기에는 거대 대출업무는 하지는 않았다

민간이 세운 상업은행이 아닌 국가가 세운 중앙은행
복잡하고 다양한 금 은 화폐의 품질과 가치를 매기고 네덜란드 화폐단위인 길더로 표준화
흩어져 있는 조폐소들을 한곳에 모아두어 정부가 화폐발행을 직접 관리하는 화폐발행권 독점화
금핵 금본위제도의 단점인 신용문제에서 은행화폐의 보증은 국가가 보증한다는 국가신용
흩어진 상업은행들의 자금들을 중앙은행 한 곳에 모으는 시스템 관리 등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은행은 유럽대륙의 중앙은행의 역할로서의 본보기가 되어주었고


1668년 스웨덴 릭스뱅크 / 1694년 영국 뱅크 오브 잉글랜드 등 
각 유럽나라마다 중앙은행을 설립하게 되었다

==미국의 우역곡절 중앙은행 첫 탄생==

18세기 ​말 1781년 10월 19일 영국군의 마지막 거점이였던 버지니아 식민지의 요크타운 거점에서 
영국군 장교 찰스 콘월리스는 미국독립군을 이끄는 조지워싱턴에게 항복문서를 작성함으로써
7-8년 가까이 독립전쟁을 벌이던 미국은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얻어냈다 
그 후 1783년 파리규약으로 미국의 독립은 인정되며 신생독립국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영국으로 독립한 신생국가인 미국은 새로운 정부를 만들기 위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대의원이 모두 모여 
55명이 1787년 5월25일부터 9월 17알까지 펜실베니아 필라데피아에서 회의를 거치게 되었고 희의끝으로
미국 헌법이 제정되어 나라의 기틀을 잡게 되었으며 1789년 4월 30일 미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미국의 헌법은 크게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삼권분립이라는 권력분립을 기초로 두었으며
미국 독립이전부터 식민지생활할 때 영국의 과도한 조세정책으로 진절너리가 난 대부분 미국인들과 미국 주들은 
미국연방정부는 주의 간섭을 최소화 해야한다는 작은정부로 있어주기를 선호했다


하지만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을 역임한 알렉산더 해밀턴의 견해는 달랐다
연방주의자이인 알렉산더 해밀터는 영국 국가의 정치 롤모델 모범으로 해야한다며 
민주주의란 국민의 변덕과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분위기에 좌우하는 통치로 보고있었고
상업과 공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원했다

특히 독립전쟁으로 늘어난 국가채무는 없던걸로 하자는 주 의원의 주장에 반대하며
미국 국민들이 이미 갚지 못한다는걸 알고 있고 이들의 채권이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는걸 안된다며
국가의 신용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 채무는 미국연방정부 끝까지 떠안아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대신 국가 채무의 빚을 갚기위해 주에서 사이좋게 분담하기로 주장했다

물론 그의 주장은 미국의 반연방주의자들의 거센 비난을 받아왔고
반연방주의자의 대표인물인 초대 국방장관인 토머스 제퍼슨과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반연방주의자인 토머스 제퍼슨은 프랑스 정치 롤모델 모범으로 삼으며
해밀턴이 극도록 싫어하는 민주주의를 국가의 자유로 보고있었고
또한 농업과 소작농민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작은 정부를 원했다

게다가 해밀턴이 국가채무를 갚기위해 빚을 주마다 공평하게 분담해서 나눠갚자는 주장엔 반대를 내세우며
빚을 지고 있는건 북부지역들인데 빚이 별로 없는 남부지역주까지 끌여들이냐며
주의 빚은 각각 주에서 해결하는걸로 주장했다


결국 해밀턴과 제퍼슨의 국가채무 분담문제 싸움에서 군인으로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을 바라보는 조지워싱턴은
토머스 재퍼슨의 말대로하다간 각 주마다 알아서 빚을 갚는다면
미국 국가로서 단합이 안되고 내전이 일어날것이 예상했기에
알렉산더 헤밀턴의 의견을 들어주었고 이어서 남부지역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수도를 워싱턴 DC로 옮기기로 결정을 해서 남북 지역 주들은 합의를 보았다 


이렇듯 초대 재무부 장관 알렉산던 헤밀턴과 초대 국방부 장관 토머스 재퍼슨의 싸움은
미국 재정정책에서도 서로 의견이 갈라지게 되는데
 
알렉산더 해밀턴은 연방정부가 각 주마다 은행지점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중앙은행 설립을 주장했다
이어서 연방조폐국을 설립하여 화폐발행권 독점을 내세우며
미국에서 자라나는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한 내국소비세를 사용하는 관세제도를 찬성했고
불안정한 국가재정을 안정화와 자금력 확장하기 위해선 반드시 중앙은행의 설립의 필요성을 내세웠다
 
토머스 재퍼슨은 주의 권리를 대변해서 중앙정부는 주의 경제권과 국가를 침해해서는 안되며
미국헌법을 내세우며 중앙정부는 은행을 설립할 권한이 부여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중앙은행이 정말로 필요한건 북부지역 상인과 부자와 부동산 소유자나 금융관계자들간의 이해관계가 맞았떨어졌기에 한 것이며
버지니아 주를 포함하여 농업을 중심으로 한 남주 지역에 살고 있는
농민들과 소기업들이 의지하는 주 은행을 지배하기 위해 도구로써 사용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 두사람의 상반된 견해 싸움에서 미연방정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알렉산더 해밀턴의 주장에 손을 들었으며
대신 영구적인 설립이 미의회의 승인기간을 거쳐 20년간 단기운영하기로 조건으로 미의회에 승인이후 조지 워싱턴이 사인을 했고
1791년 2월 25일 미국연방정부에서 처음으로 미 합중국 제 1 은행이 완공되면서 20년간 미국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 재정쪽에 커다란 큰 획을 그어버린 알렉산더 해밀턴은
1804 년 7 월 11 일 미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인 애런 버와 알렉산더의 해밀턴의 결투 사건으로 허망하게 사망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다음 이야기는 미국 제 2 중앙은행 설립과 앤드류 잭슨 대통령 vs 중앙은행싸움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