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의 대명사와 같은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1897년 태어났다. 괴벨스의 부모는 둘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들이었고 종교적인 가풍은 괴벨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괴벨스의 가장 큰 컴플렉스는 바로 나약한 육체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았다. 어릴 때 폐질환을 앓아 체력이 매우 약했고, 게다가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다리가 기형이었다. 괴벨스의 부모는 안쪽으로 휜 오른쪽 다리를 교정하는 수술을 받게 했지만 끝내 괴벨스의 다리는 정상으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괴벨스의 오른쪽 다리는 정상적인 왼쪽 다리보다 굵고 다리가 짧았다. 괴벨스는 다리 길이를 맞추기 위해 특수 제작한 오른발 구두를 신고 다녀야 했다.

괴벨스는 다리에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군대 면제 대상이었다. 그러나 장애가 극도의 열등감이었던 괴벨스는 군대에 자원 입대한다. 하지만 신체 검사에서 장애는 바로 드러났고 설상가상으로 폐활량도 약한 괴벨스는 바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이 일로 괴벨스는 은둔형 외톨이와 같은 생활을 보냈다.


학업을 계속한 괴벨스는 1921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괴벨스의 열등감은 채워지지 않았다. 괴벨스가 평생 안고 살았던 육체적 장애에 대한 열등감은 강건한 육체를 가진 남성을 예찬하고 그것이 곧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임을 강조하는 나치 정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괴벨스는 다리를 노출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으며 자신을 강인한 남성을 보이기 위해 군복 코스프레를 즐겨했다.

 

괴벨스가 언론을 주무르기 전, 에른스트 룀과 같이 찍은 이 사진에서 괴벨스의 컴플렉스인 다리 장애가 드러나 있다.





엄격한 카톨릭 신앙의 가정, 그리고 육체에 대한 열등감은 괴벨스로 하여금 여성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괴벨스는 젊을 때 연애를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성을 멀리하며 한때 카톨릭 사제가 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철학에 심취하고 다양한 철학자들의 저서를 읽으면서 종교에 대한 환상을 버렸고 대신 작가가 되고자 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평생 소련을 증오했고 러시아인을 열등하게 여겼던 괴벨스가 제일 좋아했던 소설가는 도스도예프스키였다. 소설가가 되려고 했던 괴벨스는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습작을 썼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 때 괴벨스는 3살 연상의 여성과 교제하게 되었는데 곧 헤어졌다. 처음 사귄 여자와 헤어진 충격은 컸다. 괴벨스는 자살을 시도했을 정도로 괴로워했다.


괴벨스의 여성에 대한 욕망은 극도로 눌려 있었고 훗날 권력을 잡게 되자 그의 여성에 대한 집착은 매우 심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괴벨스는 한 여자와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으며 주변에는 자기가 따먹은 여자들의 숫자를 자랑했다. 게다가 전쟁에 여성을 징집해야 한다고 히틀러에게 건의했을 정도로 (독일군 장성들은 여성을 징집하는 것에 반대했다) 여성을 인격체로 보지 않았다.





미술에 뜻을 두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히틀러처럼 괴벨스도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재능이 그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괴벨스는 생계를 위해 소설가의 꿈을 접고 은행원으로 일했는데 자신을 위대한 사상가 + 문호라고 굳게 생각하던 괴벨스는 은행원 생활을 혐오했다. 그는 자신이 은행원이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자리에서는 자신의 최종학력인 철학 박사임을 내세웠다. 그는 나치 정권에서 공식 직함을 맡은 후에도 주변에서 '괴벨스 박사'라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권력을 잡은 후, 독자들의 반응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괴벨스는 왕성한 저술활동을 했는데 그는 14권을 책을 썼다. 나치시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괴벨스의 논문들은 현실성이 없고 궤변이 많다고 한다. 괴벨스는 자기 딴에는 철학적인 논술이라고 그런 주장들을 썼지만 대부분 종교적인 신비주의로 해결한다고 해서 전형적인 '데우스 마키나'(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막판에 기계 신이 등장해서 다 해결한 것에서 비롯된 말로 필연성이 없는 결론, 즉 행복회로)식 주장이라고 하는데 괴벨스 책을 직접 읽어볼 정도로 시간 남는 게이 있노?


육체에 대한 열등감,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 문돌이의 열등감, 그리고 여성들이 자기를 멀리한다는 열등감에 시달리던 괴벨스는 '초인'에 집착하게 된다. 기존 사회를 때려엎는 영웅을 찾던 그는 1924년 뮌헨 폭동 혐의로 재판을 받던 히틀러에게 주목하고 그에게 심취하게 된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세력을 불려갈수록 괴벨스의 사회적 지위도 올라갔다. 무엇보다도 여자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1920년대 후반, 괴벨스는 베를린의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그는 마치 분풀이를 하듯이 여자들과 관계를 맺고 또 여자들을 갈아치웠다. 심지어 자신을 버렸던 그 3살 연상의 여자와도 관계를 갖고 내버렸다. 사실 괴벨스 뿐만 아니라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당의 주요 멤버들은 모두 여성 문제를 갖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겉으로는 항상 게르만 민족의 미덕인 가족주의를 내세우니 참 뻔뻔한 놈들이다.


괴벨스의 엽색행각은 1931년 요한나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이혼녀를 만나면서 좀 진정된다. 막달레나는 괴벨스와 결혼하면서 마그다 괴벨스로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마그다는 남편, 아이들과 함꼐 음독자살을 한다. 독한 년이다.




괴벨스 패밀리. 맨 위의 군복 입은 놈은 괴벨스의 아들은 아니고 마그다가 전남편 사이에서 얻은 아들.








거듭 강조하지만 이건 김제동과 손석희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괴벨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괴벨스를 되짚어가다 보면 김제동과 손석희와 존나게 비슷하다.
다리에 장애가 있었던 괴벨스처럼 김제동은 얼굴에 장애가 있다.
자신이 위대하다는 착각 속에 살며 그 환상을 위해 무슨 거짓말이든 할 수 있었던 괴벨스처럼 손석희도 자신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지금도 거짓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