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특급


전라도 시골 토박이 채원과 민주는 단 한 번도 동네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없다. 어른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갈 때 데리고 나갈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을 특성상 항상 마을 밖으로 나가는 어른들만 나갈 뿐이고, 학교도 마을 내 분교로 등교했다. 더군다나 텔레비전은 볼 수 있어도, 인터넷과 신문은 끊겨있었다. 민주는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왜 자신은 동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것인지 의문이 쌓이기 시작했고, 유일하게 동네를 자유롭게 출입하는 이장의 차에 몰래 타 마을 밖으로 나갈 계획을 세웠다. 보통 이장이 무슨 일이 없지 않는 한 이장과 그가 가장 신뢰하는 동네 청년 둘이서 차를 타고 매주 월요일 밤에 나가 수요일에나 돌아오는 것을 알게 된 민주는 월요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월요일 밤, 민주는 어른들이 논두렁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잡담하는 사이에 설레는 마음으로 차 트렁크를 열어 몰래 몸을 구겨넣으려고 하는데, 트렁크를 여는 순간 풍기는 냄새가 헛구역질을 유발했고, 민주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토막난 시체 두 구 였다. 두뇌 회전이 빠른 민주는 비록 시체가 토막난 상태였지만, 이들이 누구인지 단숨에 알아챘다. 지난 토요일, 길을 잘못 들었다며 사람 좋게 웃으며 신세 좀 진다고 했던 젋은 부부였다. 민주를 유난히 예뻐하며 지금 임신한 상태인데 민주 같은 딸을 얻게 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을 것 같다고 언니처럼 예뻐해주던 그 여자와 남편이었던 것이다. 민주는 황급히 트렁크를 닫고 쏠리는 속에 입을 틀어막은 뒤에 아무렇지 않은 척 조용히 자리를 뜨려고 하는 그때, 뒤에서 누군가 툭 툭 민주의 어깨를 치는 바람에 민주는 화들짝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 여기서 뭐 해?"


채원은 코를 훌쩍거리며 민주에게 물었다. 민주는 채원이 자신을 여태까지 속일 만큼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동네 어른들의 실체를 모르는구나 싶어 채원에게는 자신이 목격한 시체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냥... 소화가 안 돼서 걷고 있었어요."
"너두? 나두... 아까 먹은 전이 조금 그랬나? 그거 하영이네 아주머니가 한 건가? 맛은 있었는데..."


그 후, 두 사람은 나란히 논을 따라 걷는데, 주로 채원이 대화를 주도하고 주절거리면 민주는 간간히 끄덕였지만, 딱히 채원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 채원은 정말 별거 아닌 얘기로 주저리 주저리 떠드는 사람이었고, 상대방의 대답을 바라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조용하고 말 없던 채원은 어느 순간부터 민주에게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민주는 동네에 몇 안되는 사람들과 두루두루 다 친했지만 유독 채원은 불편하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이 이제 컸다고 채원이 자신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건가 싶어서 민주도 자기만의 노력으로 채원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채원 언니. 감기 걸렸어요?"
"엉? 아, 아니. 비염이 왔나 봐. 자꾸 코가 불편하네."


투박하게 손가락으로 코 밑을 쓸고는 사람 좋게 웃어 보이는 채원이 민주에게 한마디 했다.


"민주야, 언니한테 관심이 많네?"


민주는 그동안 자신이 불편한 티를 많이 냈었나 새삼 반성하게 되었다. 채원에게는 "네 뭐..." 하면서 가볍게 넘기고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아까 목격한 시체를 한참 생각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연관되어 있는 걸까...그 부부가 머물렀던 집은 지헌이네 집, 하영이네, 그리고 이장네 댁. 남는 건 우리집과 채원 언니네 뿐인데... 우리 엄마, 아빠가 그 일에 가담했을까? 채원 언니네 부모님도 결국 같은 사람인 걸까? 정상적인 사람은 나랑 언니뿐?"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민주는 고개를 도리 저어댔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민주는 성인이 되었고, 마을에 발을 들이는 외부인들은 절대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사실을 방관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 어울리는 외부인이 술을 마실 때 민주는, "그러면 간 상할 텐데..." 하며 본인도 모르게 남의 장기 걱정을 하고 있어 자신이 드디어 미쳐가는구나 싶었다. 채원은 여전히 무해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민주의 정신은 하루가 지날수록 까맣게 썩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안유진 이라는 신입기자가 출장 나왔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며 마을에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유진이 휴대전화도 안 터지는데 하루만 묵고 갈 수 없겠냐고 부탁하자, 친절한 언행으로 유진을 맞이했다. 민주는 유진을 처음 본 순간,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일이 생길 거라는 것을 느꼈고, 그건 채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 채원과 민주가 앉아 있었고, 이윽고 이장이 유진을 데리고 들어왔다. 채원은 유진에게 눈을 떼지 못했고, 유진도 쭈뼛거리며 들어오면서 채원과 눈을 마주쳤다. 덩치 크고 건장한 사내들 사이에 앉는 게 당연히 불편했던 유진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채원이 편하게 느껴져서 채원의 바로 옆에 앉았다. 유진의 얼굴만 보면서 멍때리던 채원은 코를 훌쩍이며, "여기 앉으세요." 라면서 유진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민주는 그 맞은편에 앉아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유진은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동안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채원이 테이블 아래에서 유진의 손을 툭 쳤다.


"나갈래요?"


두 사람은 급하게 식사를 끝내고 밖에 나와 걷는데, 유진은 이제서야 조금 편해졌는지 채원에게 이것 저것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유진은 자신이 이제 갓 기자가 된 신입이고, 운전도 서툴러서 혼자 지방 출장을 와 본 적도 없는데, 자기 혼자서 전라도 지역 사건들을 취재하고 오라는 부장 때문에 빡친다고 하자 채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빡친다고요?"
"네 진짜 빡쳐요. 정의 구현하러 기자가 됐지, 지방 돌면서 허드렛일이나 하러 온 줄 아나? 어이없어."
"......빡친다구요..?"


살면서 빡친다는 말을 처음 들어본 채원은 갸웃거리면서 계속 그 단어에만 집중했지만, 유진은 그런 채원이 왜 그러는지 모르고 계속 빡친 이야기를 이어갔다. 채원은 유진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반은 알겠고 반은 모르겠는데, 유진이 화가 나서 열심히 떠드는 것을 보니 너무 귀여워서 웃어 주며 손가락으로 코를 훑으며 자기도 모르게, "귀엽네요." 라고 말해 듣는 유진과, 말을 뱉은 채원 둘 다 당황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눈만 껌뻑였다. 유진은 뒤늦게 채원의 어깨를 퍽 쳤다.


"낯 간지럽게 무슨 소리예요."
"히히, 그냥요. 귀여워서요."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채원은 능글맞게 구는데, 그 모습을 본 유진은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은 한참 걸어서 동네 끝까지 도달했고, 채원은 정확히 동네 끝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유진이 물었다.


"뭐 해요 거기 서서?"
"아니에요. 늦었으니 돌아가요."


유진은 채원과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 더 걷고 싶었지만, 돌아가자는 채원 때문에 살짝 서운함을 느끼는 바람에 말수도 줄어들어, 서로 말 없이 묵묵하게 걸어 돌아왔다. 한참 걷다 보니 마을회관 앞에 도착했고, 때마침 둘을 찾아 걸어나오던 민주와 마주쳤다. 두리번거리며 둘을 찾는 민주를 먼저 발견한 채원은 다짜고짜 유진의 손을 잡고 민주를 불렀다.


"민주야, 거기서 뭐 해?"


유진은 갑작스러운 채원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호감 가는 사람의 손길이 싫지는 않았다.


"언니, 어디 갔었어요? 걱정돼서.."


민주는 말로는 채원을 걱정했다면서 눈빛은 유진을 향하고 있었고, 꼭 붙든 두 사람의 손을 보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민주가 언니한테 관심이 많네?"


채원은 민주가 걱정하는 것이 자신이 아닌 것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민주의 머리를 쓱 쓰다듬어 주고는 들어갔다. 채원과 민주는 유진이 오늘이 지나면 떠나야 할 사람이지만, 묘하게 보내기 싫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희 집에 공실 있어요. 거기서 주무세요."


두 사람의 걸음에 맞춰 나란히 걷던 민주가 입을 떼었고, 유진은 고맙다며 신세 좀 지겠다고 할 때, 채원이 끼어들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잘래요? 나랑."


채원의 제안에 마음이 크게 흔들린 유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민주에게 잘 들어가라면서 일어나면 인사하러 가겠다고 했다. 사실 마음이 불안한 민주는 이상하게 유진에게 마음이 쓰였다. 자신에게 아침에 인사하러 온다던 외부인들은 단 한 번도 인사하러 온 사람이 없었고, 토막난 시체가 되어 눈에 띄는 게 유일한 안부였기 때문이다. 유난히 유진에게 관심 주는 채원이 의심스러운 민주는 잠 만큼은 두 사람 따로 자게 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불안함에 입술을 깨물며 창문 넘어로 보이는 채원의 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슨 인기척이 나면 바로 나가 보는 거야. 살인도, 토막도 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까. 분명 내가 막을 틈이 있을 거야."


민주는 느리게 꿈뻑 꿈뻑 졸린 눈을 참으며 불 꺼진 채원의 방을 주시했지만, 길게 눈을 감고 결국 침대에 픽 쓰러졌다. 민주가 고르게 호흡하는 소리가 방 안을 채울 때 쯤, 채원의 방에 환한 불이 들어왔다가 툭 꺼졌다. 아침이 밝았고 창문을 통해 강하게 비추는 햇볕이 민주를 깨웠고, 그제서야 자신이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닳은 민주는 허겁지겁 채원의 집으로 향해 문을 두드렸다. 한참 인기척이 없자, 민주는 채원도 결국 동네 어른들과 같은 사람이었구나 싶고, 분명 유진을 살릴 기회가 있었는데 바보같이 잠든 자신이 밉고, 입술 깨물면서 넘어오는 울먹임을 참으려고 하는 순간 덜컥 문이 열렸다. 고개를 들자 눈에 보이는 유진이 칫솔을 입에 물고 멀뚱히 서서 민주를 보고는 "울어요?" 하자, 민주는 유진의 품에 휙 안겼다. 민주가 터지는 눈물샘에 한참 훌쩍이자, 유진은 칫솔을 입에 물고 어설프게 민주를 토닥토닥 안아주었고, 때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는 채원과 눈을 마주치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눈물을 그치니 민망해진 민주는 로봇마냥 어설프게 유진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아직... 안 가셨네요..."


유진은 그런 민주가 귀여워서 웃음이 터졌다.


"새벽 일찍 가려고 했는데 차 타이어가 터졌어요. 언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아까 보니까 차 퍼졌더라고요. 이장님이 내일 시내에 나가시는 날 이라고 해서 타이어 부탁하려고요. 그래서 하루 더 묵게 됐어요."


하룻밤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도, 외지인이 하루를 더 묵고 간다는 것도 전부 이례적인 일 이었다. 민주는 정말 다친 곳이 없는지 아무 일도 없는지 유진을 살폈는데,  목덜미에 울긋불긋한 붉은 자국 외에는 외상 없이 깨끗했다. 민주는 채원이 미쳤구나 싶어 실소가 터졌다.


"누구는 사람 죽을까 걱정하는데 누구는..."


민주는 처음으로 모든 진실을 모르는 채원이 부러웠다. 아무 걱정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있는 만큼 애정을 보여줄수 있었더라면, 어젯밤에 자신이 유진을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민주는 채원이 얄미웠지만, 그런 채원을 동네의 살인 전통과 전혀 관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유진이 무사히 하룻밤을 보냈지만, 아직 머무는 날이 하루 더 남았기 때문에 불안함을 떨칠 수 없는 민주는, 채원과 같이 있으면 동네 어른들이 함부로 유진을 건드릴 수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하루 종일 둘을 따라다니는 바람에, 아침도 같이, 점심도 같이, 산책도 같이, 저녁도 같이, 셋이서 하는 데이트가 되어버린 하루였다. 슬슬 민주가 귀찮아진 채원은 코를 훌쩍거리며 다른곳에 한 눈 팔고있는 민주를 보고는 유진의 손을 잡으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리 도망갈래요? 감시자 피해서."


채원 때문에 키득 키득 웃음이 터진 유진은 조용한 발걸음으로 채원을 따라 민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민주가 고개를 돌려보는데 아무도 없자, "언니...?" 하고 불러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잠깐 한 눈 파는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진 두 사람 때문에 불안감이 커진 민주는 유진 뿐만 아니라, 채원까지 토막난 시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괴롭혔고, 급한 걸음으로 동네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도착한 이장네 앞마당 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술 한잔에 도란도란 얘기를 안주로 시간을 축이고 있었다. 민주는 이들을 믿어도 될까 싶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였다.


"저... 채원 언니 못 보셨어요?"


민주는 그 와중에 채원이 유진과 같이 있다는 정보를 흘리기 싫어, 채원에 대해서만 물어보았다.


"채원이 저 작업실 내리갔는데?"


술에 취한 아저씨가 얘기하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아저씨의 어깨를 퍽퍽 때리며 "작업실 얘기를 왜 하는데? 취했어 당신?" 하며 아저씨를 입단속했다.


"작업실?"


채원이 작업실이 필요할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나 의문이 든 민주는 채원과 사이가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어도 작은 동네에 그런거 하나 모를 사이였나 싶었다. 그 시각, 채원과 유진은 자신들의 데이트를 방해하는 민주를 피해 건물 사이 골목으로 뛰다가, 차오르는 숨 때문에 뛰는 게 벅차진 유진이 멈추었다.


"잠깐만, 잠깐만..."


유진이 멈추면서 채원도 걸음을 멈추고 마주 서서 숨을 정리하는데, 살짝 땀방울 맺힌 유진을 바라보다 입술로 시선을 내렸다. 채원의 시선을 느낀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 아무도 없죠?"


채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대로 팔로 목을 감싸오는 유진은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차분히 키스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밤공기에 땀방울은 식어가는데, 채원과 유진은 달아오르고, 짙어지는 입맞춤에 유진의 눈이 풀리면서 천천히 떨어지는 입술 끝에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채원이 코 훌쩍이더니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내 작업실 갈래요?"


유진은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장소로 자신의 작업실을 언급한 채원에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급해 보이는 채원의 걸음을 겨우 맞춰 걸음 가는 길에 이장네 앞마당을 스치며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지나갔다. 유진은 오르막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채원에게 물었다.


"동네분들이랑 다 가깝고 친해서 좋을 것 같아요. 도시는 그런 정이 없으니까."
"다 비즈니스죠. 시골도 각박한 건 마찬가지예요."


때마침 도착한 곳은 채원의 집이었다. 유진은 작업실 가자더니 집을 말한 건가 싶은데, 채원은 유진의 표정을 읽었는지 굳게 잠겨 있던 현관 옆 작은 문을 열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유진의 눈에 들어왔다.


"우와! 집 아래 채원씨 작업실이 있는 거예요?"


채원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작업 하는 거예요? 혼자서 해요? 나중에 작업하는 거 보여줄 수 있어요? 그런데 지하라 그런가 약간 퀴퀴한 냄새도 난다. 어두운데 여기 조명이 어디 있지?"


유진은 계단을 내려가며 채원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채원은 그런 유진에게 말 없이 웃어주고는 들어왔던 문을 굳게 닫고 자물쇠까지 채웠다. 철컥 소리에 유진이 뒤돌아보자, 채원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작업할 때 방해받는 거 싫어해서요. 조명은 계단 끝에 있어요."


계단을 내려가고 지하 작업실에 도착한 채원은 유진의 어깨에 손을 올린채 벽에 있는 스위치를 켰다. 딱 소리와 함께 확 밝아지는 시야에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겨우 뜨는 유진이 물었다.

 
"작업하는 곳 맞아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이상하게 풍기는 역한 냄새에 코를 막으며 적응되는 시야 사이로 열심히 실내를 훑는 유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벽지도 없는 시멘트 벽과 조명, 정 가운데 놓인 의자 하나, 그리고 구석에는 창고처럼 보이는 아주 작은 방도 하나 있었다.


"전에 하던 작업이 다 끝나서 정리했거든요. 잠시만요 여기 앉아 있어요."


채원은 정 가운데 덜렁 놓인 의자에 유진을 앉히고는 그 작은 창고로 들어갔다. 유진은 서늘한 공기가 몸을 감싸 닭살까지 올랐지만, 일단 채원의 말을 들었다. 한참 창고에서 부시럭 거리더니 코를 훌쩍이며 나오는 채원이 고개도 못 들고 휘청이는 모습에 유진이 놀라 "괜찮아요?" 하면서 다가가려고 하는데, 문에 가려져 있던 채원의 오른손에 쥐여져 있는 망치, 그리고 채원이 고개를 들자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하얀 가루들이 유진의 시선에 들어왔다.


"네, 괜찮아요. 이제 작업 시작해 볼까요?"


그리고 채원은 광기어리게 웃기 시작했다. 유진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채원을 바라보며 뒷걸음질 치다가 의자에 걸려 넘어졌고, 그제서야 드는 정신에 본능적으로 문쪽으로 뛰었지만, 자물쇠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유진이 살려달라고 문 밖을 향해 외치는데, 채원이 뒤에서 천천히 다가왔다.


"왜 그래요? 유진씨는 나랑 있는 시간 즐거웠던 거 아니에요? 나 그쪽 좋아하나 봐요. 어제 하루로는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타이어에 대못도 박아 버렸는데... 그렇게 얻은 소중한 오늘이잖아요. 그런데 그걸로도 너무 아쉬운 거 있지. 그래서 말인데 유진씨, 나 유진씨랑 영원히 같이 있으려고요."


드르르륵 계단에 망치 끌리는 소리를 내며 한발자국씩 올라오는 채원 때문에 패닉인 유진은 뒤로 더 도망갈 수도 없고 앞은 올라오는 채원이 있어 눈을 질끈 감은 그 때, 유진의 귀로 퍼지는 민주의 또렷한 음성이 들려왔다.


"유진씨, 거기 있어요?"


때마침 주변을 뒤지던 민주 목소리에 유진은 문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쳤다.


"여기야! 여기! 민주씨 살려줘!"


살려달라는 말에 필살적으로 반응한 민주는 문에서 피하라고 외치고는 있는 힘껏 몸으로 밀어 문을 부수어 들이닥쳤고, 세 사람은 우당탕 소리와 함께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여전히 약에 취해 흐느적 거리는 채원이 신음 소리를 내며 일어나지 못하는 동안, 민주는 재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유진을 부축했다. 민주가 절뚝거리는 다리로 유진을 부축하며 계단 올라가려고 하는데, 채원이 민주의 발목을 잡아왔다.


"민주야, 언니한테 관심이 많네?"


채원은 킬킬 웃으며 민주를 잡고 겨우 일어섰다.


"왜 그래? 여태 방관해놓고?"


채원이 옷을 툴툴 털고 일어나서는 다시 망치 쥐어드는데, 민주는 자신이 방관했다는 채원의 말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동안 민주는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왔지만, 흔들리지 않는 말투로 채원에게 되물었다.


"언니가 죽였던 거예요? 언니는 관련 없는 줄 알았는데..."


민주의 목소리는 있는 힘껏 잡았어도, 흔들리는 동공은 채원에게 들켜버리는 바람에 채원은 큭큭거리며 웃었다.


"모든 일의 시작이 나야. 민주야, 약 살 돈이 부족해서 그냥 용돈벌이로.."


채원은 또 코를 훌쩍였다.


"김채원, 제대로 미쳤구나."


민주는 이장의 집에 갔을 때 훔친 차키를 꺼내어 유진의 손에 쥐어주고는 타고 도망가라고 했다.


"어떻게 나만 가.. 민주씨, 같이 가."
"유진씨, 제발 가! 얼른 가서 경찰 불러오라고!"


민주의 말을 듣고 유진은 뛰어 올라가는데, 채원은 눈이 돌아 유진을 쫓았다.


"안유진 씨발년아! 내 손가락 먹고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어디 가?"


민주는 필사적으로 채원을 막았고, 유진은 뛰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는 정도로 정신 없는 상태로 겨우 이장의 차에 올라타고 동네를 빠져나왔지만, 근처의 경찰서를 찾는데 아무것도 없는 산길의 연속이었다. 한참 가다 보니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렀고, 유진은 그제서야 찾은 도시 안 경찰서로 들어가 꺼이꺼이 울며 제발 민주를 살려달라고, 빨리 안 가면 죽는다고 경찰들에게 애원했고, 그렇게 유진이 탈출하고 네 시간이 지나서야 동네에 다시 돌아온 유진과 경찰들이 사건이 있었던 채원의 작업실로 내려갔다. 하지만 작업실은 유진이 처음 봤던 그 상태 그대로고, 채원과 민주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너무 늦은 깜깜한 새벽이라 어두워서 뭐 하나 보이지도 않는데, 동네는 조용하고 유진이 신고한 곳에도 큰 이상이 없으니 경찰들은 의아했다. 결국 경찰들은 이장의 집을 찾았다.


"어르신, 김채원씨랑 김민주씨 아세요?"


하지만 이장은 그런 사람 모른다고 했다.


"여기는 다 늙은 노인네들만 사는 동네여. 며칠 전 젊은 처자가 묵을 곳 없냐 그래서 묵고 가라고 했는데 또 헛것을 본 모냥이네. 여기가 묘지가 있던 자리라 기 약한 사람들이 와서 자면 꿈이 흉흉해. 순사님들 늦은 시간에 고생하지말고 어여 들어가요."


유진은 자신이 본 게 전부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헷갈리기 시작했고, 자기 차의 타이어가 터진 것을 확인하러 갔는데 네 바퀴 다 멀쩡해서 더 혼란스러웠다.


"진짜 내가 귀신 들렸던 건가..."


그 때, 경찰 한 명이 논을 보고 이장에게 말했다.


"이장님, 저기 물 도랑 좀 파야겠어요. 물 너무 많은데? 저러다 썩겠다."
"어어 고마워요. 어여 들어가세요."


유진도 혼란스럽지만 차라리 귀신이나 헛것이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차를 끌고 서울로 돌아갔고, 경찰들도 그저 그런 해프닝으로 사건을 정리했다. 그렇게 다시 잠잠해진 동네는 이장이 시내 나가는 날에 차에 시동을 걸고, 이장의 명령에 지헌은 물이 가득 찼던 논에서 물을 뺐다. 그러자 물 아래 감춰져있던 시체 두 구가 눈에 보이고, 지헌과 하영은 시체를 차분히 들어 이장의 차 트렁크로 옮겼다.


"민주만 아니었어도 우리 채원이 나 죽기 전까지 잘 써먹었을 텐데...어릴 때부터 약 슬슬 타맥이며 정성 담아 기른 도구여. 이렇게 쑥쑥 잘 커 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는데 망치로 박살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지. 그냥 몇 년 전에 민주가 우리 일을 눈치챈 것 같았을 때 죽였어야 하는 건데, 입 다물고 잘 지내길래 일거리 하나 쥐어줄까 싶었던 내가 멍청했어."


담배를 피우며 트렁크 속의 채원과 민주를 보던 이장이 지헌을 불렀다.


"지헌아, 그 젊은 처자 말이야. 사는 곳이 어디라고 그랬었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