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승만은 1875년에 태어난 인물로 출생일 기준으로 이승만과 정조 사망(1800년)의 시간적 거리가 2019년인 오늘보다 더 짧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의 인물이다.














2. 이승만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의 창립자이다.












3. 이승만은 스무살 때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그 원수를 갚겠다는 (춘생문 사건) 계획을 세웠다가 발각되어 피신한 적이 있다. 














4. 이승만은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20대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다.
투옥 도중 탈옥 시도를 한 적이 있으나 다시 잡혀 곤장 100대를 맞았고 같이 탈옥시도를 했던 사람은 사형당했다. 당시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 안면경련증에 시달렸다.














5. 이승만은 투옥 도중 성서를 읽으며 영한사전을 집필했고, 계몽운동의 연장선으로 '독립정신' 52편을 저술했다. 










6. 이승만은 29살 석방되고 42년이나 미국에서 생활하였다. 미국에서 조지워싱턴 철학 학사, 하버드 영문학 석사, 프린스턴 국제법 박사를 취득했는데 이는 대한민국 1호 박사 학위다.  










7. 이승만은 미국에서 활동할 때 미국인들보다도 더 반공주의자인 것으로 유명했다. 










8. 이승만은 일본인이 보낸 밀정의 저격을 받은적이 있다. 2~3발의 총성이 있었으나 불발이라 살아남았다. 










9. 이승만은 하와이에 있을 때,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숯 사업을 한 적이 있다.













10.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을때 나이가 74살,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했을때 이승만의 나이는 76살이었다.



총 3편까지 올릴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