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게이들아






1891년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개통식을 위해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던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 (후에 니콜라이 2세로 즉위)는 중간에 일본을 방문한다 






나가사키에서 인력거에 앉아있는 니콜라이 황태자 1891년




 

나가사키와 가고시마를 거쳐 고베에 상륙, 교토를 방문하고 명승지인 비와 호수를 관광하고 돌아가던 니콜라이 황태자를 경호대의 일원인 일본 경찰 츠다 산조가 갑자기 소지하던 장검을 빼어들고 공격한다










니콜라이 황태자를 공격하는 오쓰 순사와 이를 방해하는 게오르그 그리스 왕자








츠다 순사는 니콜라이 황태자에게 2군데의 상쳐를 입혔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니콜라이 황태자와 동행하던 그리스의 왕자 게오르그의 신속한 반격과 이들을 태우고 가던 인력거 운전수들의 도움으로 암살 미수범 츠다 순사는 현장에서 체포된다






후에 러시아 제국의 '성 안나 훈장'을 수여받은 니콜라이 황태자와 게으르그 왕자의 인력거 운전수







암살 미수 소식에 깜짝 놀란 일본 측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메이지 천황이 직접 니콜라이 황태자를 병문안하고 


니콜라이가 머물던 러시아 순양함 '아조프 기념'호에 직접 승선하여 사죄 인사를 청하기도 하였다


강대국 러시아의 왕위 계승권자를 방문 중에 상해를 입힌, 아직 약소국에 불과한 일본으로선 전쟁을 치를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니콜라이 황태자가 머물던 러시아 순양함 '아조프 기념'호로 일본 각지에서 사죄 진상품이 답지했다






츠다 산조는 자신의 행동은 '일본 천황과 일본 문화를 무시하는 듯한 니콜라이에게 화가 나서 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고


니콜라이 황태자와 그리스의 게오르그 왕자가 일본의 군사 시설을 시찰하며 정보를 수집하는 스파이 행위를 한 것에 응징한 것이라고 진술하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한다




츠다 산조




츠다는 재판을 통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홋카이도의 교도소에서 사건 발생 4개월 후 폐렴으로 옥사했다







니콜라이 황태자가 타고 여행하던 러시아 제국해군의 순양함 '아조프 기념'호






후에 러시아 제국의 총리를 지낸 세르게이 비테의 회고록에 의하면 이 암살 미수 사건 이후 니콜라이 황태자 (황제)의 일본관이 완전히 변했다고 한다


일본 측의 거듭된 사죄와 방문 일정을 계속해 달라는 요청에도 니콜라이 황태자는 일본 방문을 중단하고 바로 블라디보스톡으로 귀국한다







그 후 니콜라이 2세는 오쓰의 검에 입은 상처의 후유증으로 평생 두통에 시달리게 되었고


비테 총리의 증언에 의하면 니콜라이 황제는 항상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위치가 어딘지 알게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하였다고 한다


또한 일본인들에 대해 경멸적 태도를 보였으며 종종 일본을 무시하는 발언을 공식 석상에서 하곤 한다





향후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 (러일 전쟁 등)이  니콜라이 2세의 개인 감정 때문 만은 물론 아니었으나


니콜라이 2세의 일본에 대한 경멸과 적대심이 러시아 제국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건 확실하다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