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대량복제판화가 미국 문화의 아이콘인 것처럼


우키요에는 일본 문화를 상징하며 나아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동양 미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특별히 일본 문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위 그림들은 어디에선가 본 듯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하니까.


위 작품을 제작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 양반. 


위 그림은 노년기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이 양반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서 


우키요에가 뭔지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우키요에는 목판화다. 


그 제작과정을 보면 오늘날의 현대미술처럼 분업화가 이루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화가가 목판에다가 그린대로 깍아내는 중


가장 실력이 좋은 사람이 얼굴과 머리카락 등의 디테일이 필요한 부위를 담당한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에 널리 퍼졌는데 일본이


개항을 한 후로는 서구에도 전파되었고 서구의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 중 하나다. 


그는 우키요에를 접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동양의 신비"로 동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키요에를 직접 유화로 모작하기도 했는데




왼쪽이 원작, 오른쪽이 반 고흐의 모작.


그 결과물이 이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지금도 서구의 박물관에는 우키요에가 20만 점 이상 보관되어있고


보스턴 미술관에만 5만 점이 보관되어있는데, 외국 미술품이 이만큼


수집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우키요에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우키요에에 있어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예술가라는 말씀.


호쿠사이는 에도 외곽 가추시카 지역의 한 시골 마을에서 거울을 만드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6살 때부터 그림을 익혀 거울을 장식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15살 무렵에는


책방에서 일하며 우키요에 기술을 익히고 카츠카와 순쇼의 제자로 본격적인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화, 서양화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고 이를 본인의 작품에 투영시키고자 했던


호쿠사이는 라이벌 관계에 있던 화단의 그림체까지 습득하여 스승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호쿠사이에게는 리미터 해제, 물만난 고기가 되는 계기였다.


화단에서 쫒겨난 호쿠사이는 이제 내 마음대로 예술을 하자는 각오로


93회나 이사를 하였고 30회 이상 호를 바꾸면서 예술에 매진했다.


이는 자리잡은 곳에 메이지 말자는 그의 소신 때문이였다고 한다.


그는 삼라만상을 다 그린다고 자부했기에 실제로도 장르를 넘나들었다.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미인도는 물론이고




꽃그림




이런 짐승들도 곧잘 그렸으며


  


풍경화도 운치있게 표현하였다.




그렇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것은 춘화(春畵)였다.


그리고 가츠시카 호쿠사이가 오늘날까지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나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호쿠사이 만화'라는 이름의 그림책인데


이미 여기에서부터 콧김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등의


만화적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호쿠사이는 일본 망가의 시초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호쿠사이는 민담 속에서 떠도는 요괴들을 그렸다.


어떤 요괴는 웃기기도 하고 어떤 요괴는 행여나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섬뜩하다.


즉 오늘날 일본이 요괴천국이라는 평을 받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한 촉수물의 원조이기도 하다. 


위 그림은 영화 '아가씨'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그림인데


거대 문어가 해녀를 덮치고 있는 장면이다.




호쿠사이의 과감한 시도는 후배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서


이같은 작품들이 탄생했다. 얼른 봐도 화려하고 현란해서 이목을 끈다.




이처럼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예술가는 단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호쿠사이는 90까지 살았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물론이요 현대의 기준으로 봐도


장수한 셈인데 노인이 되어서도 기운이 빠지지 않았는지 열정적이였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인 부악 36경, 부악 100경도 칠순이 지나서 완성한 작품이다.




호쿠사이의 자화상


이렇게 열정적으로 활동하며 평생 3만 점이 넘는 작품을 완성하였으나


구순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 남긴 유언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5년의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진정한 화가가 될텐데..."


였다고 한다.


한줄평


누구에게나 인생은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