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게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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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7월 30일 파리의 로케 형무소의 사형 집행장에서 단두대인 기요틴으로 39세 마리-루이자 지로가 참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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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인 기요틴


그녀는 낙태금지법에 의해 목이 잘린 최초이자 마지막 여자 사형수 였다 (1943년 말 남자 사형수 1명도 낙태금지법 적용되어 기요틴으로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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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프랑스 북부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지로는 선원인 남편과 2자녀를 두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파출부와 세탁부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으나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고 남편은 군에 징집되며 생활 형편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생계 유지의 방안으로 골방을 창녀들에게 월세방으로 임대하던 중 한 창녀의 낙태를 도와주며 낙태가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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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에서는 독일 등 이웃나라들과의 인구 증가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고 전쟁으로 감소한 인구를 보충하기 위해 '낙태금지법'이 시행되고


1923년부터는 낙태를 한 여자와 낙태를 도와준 자에게 벌금 1만 프랑과 최대 5년의 징역을 줄 수 있었으나


1939년 2차대전 발발 직전 부터는 낙태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며


1942년 나치의 괴뢰정권인 비시정부에서는 낙태를 국가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정도로 까지 인정되어 사형을 판결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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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창녀들의 낙태 시술을 해주던 지로는 주위에 당시 '천사의 재단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불법 낙태 시술자로 알려지기 시작하자 


군에 징집된 남편이 있지만 임신한 여자들과 독일군과의 관계에서 임신한 여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그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다


금액에 상관없이 낙태를 원하는 여자들이 지로의 집 앞에 줄을 서면서 지로는 큰 돈을 벌게 되고 이를 시기한 한 이웃 여자의 밀고로 체포된다


1943년 체포되어 재판을 받던 지로에게 프랑스 검찰은 사형을 구형하고 파리시법원 역시 사형 판결을 한다


마지막 희망으로 프랑스 정부 수반 페탱 원수에게 사면을 빌어보지만 사면은 각하되고 결국 단두대에서 목이 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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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로 처형되어 목이 잘린 마지막 프랑스 사형수가 된 마리-루이자 지로에 관한 이야기는 


1988년 프랑스에서 '여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어 여주인공인 이자벨 유페르는 그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