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예수에 대해 알아보자2

2편이 노무 늦어서 미안하다 게이들아ㅠ

근데 브금 모아놓은 곳 없어져버렸노? 구글링해도 안나오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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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댓글들 중에 본문 관련해서 몇 가지
의문을 갖는 게이들이 있길래 우선 그에 대한 답변부터 할게.

 

 

1. 예수는 A.D(기원후) 1년에 태어난 거아니냐?

 

 

1편 본문에 기원전 4년 혹은 6년 경에 예수가 태어난 것처럼

써져 있어서 이에 의문을 갖는 게이들이 있었어.

 

 건 2편에서 설명하려고 했던 건데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야.

 

"으잉?? 그럼 예수탄생년을 기점으로 기원전/후를

나누는 건 뭐노??" 하는 게이들도 있을거야ㅎ

 

사실 예수탄생년에 관한 성경의 기록들이 서로 달라서

예수가 정확히 몇년도에 태어났는 지는 아무도 몰라.

때문에 죽었을 때 몇 살이었는지도 모르지. 

(그저 30대 초반이라는 것 정도)

예수 탄생년을 기원후1년으로 삼은것도 사실 6세기의

어느 신학자가 부활절 날짜 계산하면서 임의로 정한 게

그대로 반영이 된 거라 오늘날 학자들 중 예수가 딲!

기원후 1년에 태어났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

 

대신 성경의 기록들을 가지고 서로 기원전 4년설,기원전 6년설,

기원후 2년설, 기원후 7년설 등을 주장하고 있지.

 

그나마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게 기원전 4년 설이라 그렇게

쓴 거임ㅎ

 

 


2. 요세푸스 기록은 주작으로 밝혀진 거 아니었냐??

 

 

이에 대한 대답은 "거의 맞다"야. ㅎㅎ

 

이게 뭐냐면 요세푸스의 기록 중에 갑자기 뜬금없이

머중이가 정일이 빨듯 예수를 찬양하는 구절이 있어.

 

 

"이 시대에 예수라고 불리는 현인이 있었다.

그의 행실은 선하였고, 그의 학식은 뛰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다른 나라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는 그를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되었던 자들은

그의 제자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지 삼일만에 그들에게 나타났고, 그가 살아났다고

보도하였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선지자들이 놀라움으로

자세하게 말했던 메시아였을 것이다.

그리고 소위 그의 이름을 따서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던

그리스도인들 족속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 [유대고대사]

 

이 거지.

 

근데 이게 요세푸스의 출신성분과 종교(유대교), 그리고

전반적인 그의 입장 등을 놓고 봤을 때 아무래도 의심스럽기 때문에

이 예수 찬양 구절은 후대의 필경사가 요세푸스 글을 손으로 베껴서

옮겨 적다가 삽입한 주작이라는 게 정설이야ㅎ

다만 1편에서 내가 말한 기록은 여러 기준에 부합되기 때문에

요세푸스의 진짜 기록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거지.

(자세한 기준은 1편 참조)

 

 

"그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아나누스는

베스도가 죽었고, 알비나스가 아직도 오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호기를 맞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산헤드린의 판관들을 소집하였고,

그들 앞에 그리스도(메시아)라 불리는 자인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어떤 다른 자들을 불러내어 율법을 범한 자들로

고소하고, 그들에게 돌로 치는 형벌을 받게 하였다."

--- [유대 고대사]

 

 

암튼 그래서 요세푸스 기록이 주작이라고 알고 있는 게이들이

잘못알고 있는 건 아닌데 속사정은 이렇다는 것도 알아두면

 거 같아 ㅎㅎ

 

 

 

자 그럼 2편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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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대왕 사후 세 아들들이 상속받은 영토>

 

 


앞서 말했듯이 예수에 관한 기록이래봤자

성경이 전부이기 때문에 인간예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도 기본베이스는 성경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어.

바로 성경 66권 중 예수의 일대기에 관한 기록인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 이 네 권이지.

 

헌데 여기서 유의할 점이, 이 네 권은 20여년의

시간차를 두고 서로 다른 저자들에 의해 쓰여

졌다는 거야.

 

 

또 실제로 성경이 쓰인 순서도

마가- 마태/누가- 요한 복음이지.

 

 

즉 마가복음이 기원후 약 70년 경으로 가장 먼저

쓰여졌는데 그 분량이 노무노무 적어서 후에

다른 사람들이 내용을 추가해 마태/누가복음을 썼고

그 후에 한 번 더 내용을 추가해 요한복음이 완성된 거야.

 

그리고 새삼 당연한 말이지만, 저자들이 이 복음서들을

쓴 이유는 예수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예수가 신의 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주장하기

위한 예수 전도용 마케팅 팸플릿이기 때문에 나중에 쓰인

책일수록 황당무계한 내용들이 많이 수록돼ㅎ


그래서 가장 먼저 쓰여서 그나마 덜 황당한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마태/누가/요한복음과 비교하면서 예수에 대해

알아보는 식으로 갈 거야.

 

 

 

그럼 시작!!

 

 


----------탄생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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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탄생에 관해 마태/누가복음에 각각 기록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곧 태어날 예수가 장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라는 느낌을

받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수를 찾아 유대왕국으로 왔는데

이를 들은 헤롯대왕이 혹시라도 자신의 왕위를 빼앗길까봐

예수를 죽일 작정으로 동방박사들에게 예수가 태어나면

자기도 축하해주고 싶으니 꼭 좀 알려달라고 함.

 

한편 그 시각 예수 가족은 로마제국이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예수 아버지

요셉의 고향 베들레헴에 가 있었고 마침 여관에 방이

없어서 마굿간에서 예수를 낳음.


그 후 지져스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헤롯대왕은

베들레헴에 그즈음 태어난 사내아이를 모조리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예수일가는 이 무시무시한 명령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갔다가 후에 헤롯대왕이 죽자 유대로 다시 돌아옴.

 

 

이야ㅎㅎ

 

 

 

오오미 역시 갓 지쟈스 슨상님은 출생부터 남다르당께?

 

 

 

 

 

헌데 최조의 기록인 마가복음에는 이런 내용이 없어.
마가복음은 예수의 탄생~무명시절 이야기는 관심도 없다는 듯

대뜸 예수가 본격적으로 신들린 후의 이야기 부터 시작하지.

 

그도 그럴만한게, 위의 이야기들은 사실이라고 하기엔

작이 노무 뻔하거든ㅎㅎ

 

 

 


우선 게이들도 동의 하겠지만 예수일가가 '인구주택총조사'

때문에 고향에 갔다는 거 부터가 말이 안돼.


저당시의 인구조사란 해당 지역별로 담세력을 가진 납세자의

숫자와 재산현황등을 파악해 세금을 걷으려는 목적이었는데

뭐하러 홍어들 7시 몰려가는 것 마냥 고향으로 집합하라고 하겠노??

 

거기다 교통수단이라곤 두 다리밖에 없던 시절에?

 

 

 


때문에 상식선에서만 생각해봐도 위 기록은 그냥

주작이라고 볼 수 밖에 없어ㅎ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왜 마태/누가복음 저자들이

저런 주작을 했을까?"이지.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내려오던 메시아 신앙에는

 '메시아가 되기 위한 조건'이란 게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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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차피 민담 + 전설 등이 오랫동안 섞여서 전해지던 거라

지역별/종파별로 그 조건만도 20여가지가 넘었다고 하는데
 
이 조건들 중 가장 널리 퍼진 게 바로

 

[유대인들의 전설적인 왕 '다윗(다비드)'의 혈통을

이어받을 것] 이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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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야 ㅎㅎ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미가 5:2)

---성경 속 메시아 고향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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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즉 나사렛 마을 출신인 예수를 어떡해서든

저 조건에 끼워맞추기 위해 실제로는 저 즈음에

있지도 않았던 인구조사가 있었다고 설정하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걸로 주작한 거야.

고향세탁 ㅍㅌㅊ?

 

 

 


물론 이와 함께 마태/누가 복음서의 저자들은

뜬금없이 예수의 족보를 욱 적어 다윗왕이랑

예수의 혈통이 이어지는 것처럼 써놓는 센스도

발휘해놨어. (근데 이마저도 저 두 복음서가 쓴

계보가 서로 달라 주작 들통남ㅎㅎ)

 

 

 

 

사실 이 탄생신화주작은 복음서 속의 수많은

메시아주작 중 하나에 불과해. 저자들은 정말

눈물의 주작쇼를 복음서 여기저기에 심어놓았거든ㅎㅎ

 

 

복음서가 쓰일 당시인 기원후 1세기 중후반경에

신흥 종교인 기독교의 주 타겟은 어디까지나

유대인들이었어. 헌데 유대인들은 99%가

유대교를 믿고 있었고 때문에 메시아 전설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

 

 

이런 유대인들을 상대로 예수가 메시아라고

주장해야했기 때문에 책까지 새로 써가면서

주작을 해야 했던 거야ㅎ 


 

 

재미있는 건 요한복음서에 실제로 예수가

출신지역 때문에 공격을 당하는 장면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는 거야.

 

[요한복음 7장]을 보면 누군가가 예수에게

 


 

"메시아가 오는 곳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해설 : 됐고 너 나사렛 촌놈이잖아?

 

라고 비난해. 당시 메시아 조건 중엔

베들레헴설/아무도 모름설 이렇게 두 가지가

있었나봐ㅎ

암튼 고향어택을 받은 예수는 기가 막힌 답변을 하지

 

 

 

"당신들은 모두 나를 알고있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도 잘 알고 있소"
해설 : 그래 나 나사렛 출신이다.

 

 

"(하지만)나는 내 마음대로 여기 온 것이 아니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오. 당신들은 그 분을

모르지만 나는 그 분을 알고 있소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오"

해설 : 나는 내가 메시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거랑께??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사렛에서 태어난 것도 하나님 뜻인거임!!"

 

 

 즉 자신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걸 인정하는 듯 하면서

순식간에 땅 위의 호적문제를 천상적 기원 문제로

완전히 바꿔버린 거지.

 

게다가 '그분은 참 되시다''는 말은 즉 어차피 메시아를

보내는 건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나사렛으로 보냈다면 거기에 복종해야지 이거 가지고

트집 잡으면 하나님이 참되다는 걸 인정하지않는다는

거고 그건 신성모독이다!라는 무언의 협박?이었어ㅎㅎ

지쟈스 말빨 ㅅㅌ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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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메시아 전설과 맞지 않는 고향문제 때문에

예수의 메시아 주장은 당시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논란거리였어.

 

요한복음 7장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어떻게 메시아가 갈릴리에서 나올 수 있겠노!!!" 라며

예수를 사기꾼이라 비난하고 있지.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수 사후 약 90년 후 쓰인

마태/누가복음 저자들은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
이 출신 공격을 아예 차단해버리기 위해 마가복음에는

없던 출신지역 & 다윗왕 혈통 인증 문제를 삽입해
놓은 거야 이기이기 고향세탁 지리노ㄷㄷ


 

 

 

 

 

 

"근데 저 헤롯대왕 유아학살은 뭔 일이노?

저것도 주작같은데?"

라고 궁금해하는 게이들도 있을 거야.

 

물론 저 명령도 구라야ㅎㅎ 저런 극악한 사건이

있었다면 다른 기록에 안나올 리가 없지.

 

요세푸스의 글에도 저런 내용은 없어.

 

 

물론 헤롯대왕을 악당으로 만들기 위한 극적 장치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저 주작의 진짜 이유는 바로

'이집트 도피'야.

 

 

유대인들에게 이집트는 바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난 출애굽기(엑소더스)의 배경이었고 그 중심엔

바로 '모세'라는 인물이 있었어.

 

통째로 끌려가 염전노예 당하듯 혹사당하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야훼신으로부터 십계명과 율법을

받아온 민족의 영적 조상인 바로 그 초대 메시아인 모세를

예수와 결부시켜 예수야 말로 새로운 모세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장치인 거지.

 

 

위와 관련된 구약 성경 속 메시아 예언으로는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 (호세아 11:1)"

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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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예수 탄생에 관한 저 스펙타클한 이야기는 사실

구약성경 속의 메시아조건들을 예수에게 끼워 맞추기

위한 주작이었다는 거지.

 

정리하면 인간 예수의 탄생이라고 해봐야 그냥

나사렛 마을에서 엄마 마리아의 뱃속에서 달을

다 채우고 나온  평범한 출생이었다는게 팩트인 거고.

 

이 외에 처녀잉태가 말도 안되는 거야 뭐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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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통찰력 있는 게이들 중엔 이런 의문을 갖는

게이들도 있을 거야.

 

"인구조사말인데, 저 당시 사람들이라면 누가 봐도

저게 구라라는 걸 알지 않았겠노?다들 인구조사를

받아본 경험들이 있을텐데"

 

 


여기서 바로 고대인들과 현대인들의 의식 차이가

드러나. 과학적 합리성의 바탕 위에 사고하는 게

당연한 현대인들은 어떤 주장을 들으면 일단

팩트체킹부터 하지.

(물론 씹머중쩔뚜기새끼보고 눈물 좇물 흘리는

홍어새끼들이나 우리이니 하고 싶은 지랄 다

하라는 좌좀병신년들은 예외)

 

특히나 그게 종교와 관련된 거라면 더더욱

엄격하게 따져 볼 거고.

 

 

허나 저 당시의 고대인들에겐 신화와 현실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어.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걸

기본 전제로 깔고 사고했기 때문에 저런 주장들도

그냥 두리뭉실 받아들일 수 있던 거지.

 

물론 저 당시에도 떨떠름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저 책들이 예수 사후 약 90여년 뒤에 쓰였다는 점에서

적당히 타협했을 거고.

 

 

실제로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 신들의 거주지는

올림푸스 산이야.

헌데 이 올림푸스 산은 어디 전설속의 먼 곳에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땅에 있었어.

때문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올림푸스산을 올라가

볼 수 있었고 그 곳에 신과 신들이 사는 화려한 궁전따윈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

실제로 알렉산드로스대왕, 아우구스투스황제 등 많은

인물들이 올림푸스산에 올라가봤어ㅎ

 


허나 그리스인들 중 이 점을 문제삼은 이는 아무도 없었어.

그들은 인간들이 오는 걸 알고 신들이 모습을 감춘 거다

라는 식으로 적당히 타협을 한 거지. 왜냐하면 "어쨌든 신(들)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신에 관한 이야기 중 오류가 있고 좀 이상하다 해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던 거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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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푸스산>

 

 

 

이처럼 위의 복음서는 역사기록을 목적으로 쓴 게 아니라

애당초 예수가 메시아임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쓴

종교서적이었고 그 대상인 고대인들은 신들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저런 허술한 기록이

널리 인정되고 받아들여진 거야.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성경이라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오랫동안 의심조차 되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져올 수 있던

이유인 거지.

 

 

 

 


-----------12월 25일----------

 

 

모태솔로 진성 일게이들에게 가장 괴로운 날인

12월 25일은 다들 알다시피 예수가 태어난 날이야ㅎ

 

헌데 몇년도에 태어난 지도 모르는데

며칠에 태어난 지는 알겠노?ㅋㅋ

 

사실 예수 생일이 며칠인지는 기록도 없을 뿐더러

성경의 기록을 감안해도 12월 25일에 태어났을

가능성은 없어ㅎㅎ
(성경에도 예수가 태어날 때쯤 목동들이 양떼에 풀 먹이고

있었다고 함. 12월말에 풀은 무슨ㅉ)

 


사실 12월 25일은 로마의 태양신인 미트라의

축일이었는데 그냥 예수도 최고고 태양신도 최고니까

적당히 이 날로 잡자!! 하고 은근슬쩍 태양신 축일을

예수탄생일로 삼은 거야ㅎㅎ

 

아마 예수랑 태양신이랑 동급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서

로마인들이 예수 짱짱맨!!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려는

의도 였을듯ㅎㅎ 마케팅 ㅅㅌㅊ?

 

 

아무튼 실제 예수는 그냥 나사렛에서 평범하게 10달

 다 채우고 나왔다!고 보면 돼ㅎ

 

 

 

 

 

 

---------유년시절---------

 

 


예수를 낳을 당시 어머니 마리아는 처녀였다!!는

주장이야 뭐 논할 가치도 없는 얘기고, 실제로

마리아의 부부생활은 매우 활발했던 듯 해ㅎㅎ

 

 

성경에 나오는 형제만 해도 넷(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에 누이도 몇 명 있었다니대충

10여명안팍의 대가족이었던 거지.

 

 


헌데 재미있는 건 예수의 아버지라 알려진

'요셉'이라는 인물이야. 그는 위의 탄생신화때

빼고는 아예 종적을 감춰버려서 대부분은 그냥

예수가 어렸을 때 죽었나보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그렇게 보기엔 좀 충격적인 기록이 있거든.

 

 


가장 이른 기록인 마가복음에서 예수가 신들린 후에

고향 나사렛으로 가 전도활동을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사람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가!?" 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어.

 

 

저 당시엔 동명이인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이름 앞에

보통 그 사람의 출신지역이나 아버지의 이름을 많이

붙여서 불렀어 (누구의 아들 예수/나사렛 예수)

 

 
허나 상식적으로 절대 해선 안되는 금기가 바로

어머니의 이름을 붙이는 거였지.

 

일게이들이 짱짱맨!!을 외칠 정도로 ㅈㄴ ㅆㅅㅌㅊ

가부장 사회였던 저 당시에 아버지의 이름이 아닌

어머니의 이름을 붙인다? 게다가 맏아들에게??

 

이건 "야 이 애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새끼야" 라는

욕이나 마찬가지인 거거든.

 

그래서 그런지 어떤 필사본에는 이 구절을

"이 사람은 목수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가?"
라고 바꿔서 기록을 했지.


 

 

일게이들이 낄낄대는 '마굿간 콜걸'이라는 디스가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
게이들도 있을 거야.

 

허나 사실 저 당시 유대의 풍습에 비춰보면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ㅎㅎ 그리고 예수 사후에
그의 바통을 형제와 사촌들이 이어받은 걸 놓고

봤을 때도 예수만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었다는 건
말도 안되지.

 

 

 

때문에 저 충격적인 발언은 예수의 전도활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마을 사람중 하나가 어그로를
끌기 위해 지껄인 말일 가능성이 큼ㅎㅎ 

마리아가 정말 문란한 여자였다면 저당시 풍습과

율법상 재/결혼해서 저렇게 자식들 많이 낳기는 커녕
살아남을 수도 없었을테니까.

 

 


재미있는 건 예수가 사생아(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놈 즉 근본없는 놈) 였다는 비방이

기원후 2세기 경에도 여전히 어그로로 쓰였다는 거야.

 

당시 지식인들 중 대부분은 자기 신만 진짜고

다른 신들은 없다는 씹어그로를 끌고 다니는

기독교인들을 개독새끼들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중 켈수스라는 사람은 "내가 어떤 유대인에게

들었는데 예수가 군인출신 남자의 사생아라더라!!"

라는 주장을 해.

 

물론 이 것도 팩트는 없는 어그로를 끌기 위한

수위높은 비방일 뿐이지만 이처럼 한 세기가 넘는

시간차에도 여전히 예수에 대한 이런 류의 비방이

성행했다는 건 지금이나 저때나 제일 큰 어그로는

부모욕이었구나 싶네ㅎ
 

 

 

 

 

 


-------소년시절--------

 

 

 

 

나사렛에 대한 발굴결과를 보면 예수가 살던

당시의 나사렛은 약 100여가구에 불과한 아주

작은 마을이었어. 갈릴리 호수랑도 떨어져 있어서

 농사밖에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워낙 작은 마을이라 마을회관조차 없었지.

 

 

때문에 어린시절의 예수는 당시의 평범한 아이들이

그러했듯 정규교육은 꿈도 못꾸고 그저 집안에서

부모님에게 율법과 성경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을 거야.

 

그리고 어느정도 큰 다음부턴 곧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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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직업은 '목수'로 알려져 있어.

사실 성경 전체에서 예수가 목수였다는 구절은

딱 한 번 나올 뿐이지만 예수가 설교중에

반석,집 같은 건축비유를 종종 든 걸 봤을 때

딱히 목수가 아니라고 볼 이유도 없지.

 

 

다만 이 목수를 무슨 나무공예장인으로들 생각하는데

쉽게 말해 그냥 일용직 노가다꾼이라고 보는게

더 타당해.(일베 최고존엄직업이노ㅎ)

 

 

 

목수를 뜻하는 그리스어 '테크톤'은 목수뿐만 아니라

석공을 의미하기도 했어. 즉 한마디로 '빌더'라는 뜻으로

통용됐지.


거기다 로마에선 최하층 일용직이나 문맹소농을

의미하는 속어로도 쓰였거든
(우리나라 말에서 백정이란 단어랑 유사하지)

 

게다가 나사렛 마을의 규모나 생활수준으로 봤을 때도
전문목수가 있을 환경도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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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나사렛>

 

 
근데 같은 이유로 이 작은 마을에 일용직노가다꾼이

산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ㅎㅎ

에수는 도대체 왜 산골마을에서 농사는 안짓고 노가다를 했을까?

 

 

 

 

 

 


--------세포리스--------

 

 

 


나사렛은 궁핍한 시골이었지만,

다행히 하루 정도 거리에 갈릴리 지역의

정치행정 중심지이자 수도인 세포리스라는 도시가 있었어.

 

약 4만명이 거주하던 이 도시는 철저히 로마식으로

세워져 상하수도 설비에 포장도로, 목욕탕 경기장 등

그야말로 부유함의 대명사로 알려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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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발굴 중인 세포리스>

 

 

 

허나 이 아름다운 도시가 예수 탄생즈음 잿더미로

변해버리는 사건이 있었어.

 

바로 헤롯대왕 사후 전국에서 일어난 민란때문이었지.

 

 

 

 

 

 

 

 

 

-------갈릴리 반란--------

 

 

 

 

예수탄생직후 예수의 고향 갈릴리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어.

 


헤롯대왕의 폭정에 신음하던 유대인들은

헤롯대왕이 죽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도처에서 민란을 일으켰는데 그 중

가장 격렬했던 지역이 바로 갈릴리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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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반란군을 이끈 건 '갈릴리의 유다스'라는

인물로 그의 아버지는 약 40년 전 자기가 메시아라고

선언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헤롯대왕의 화려한 데뷔식의
희생물이 된 '헤제키아'라는 인물이었어. (1편 참조)

 

이 집안사람들은 뒤에도 자주 언급될텐데, 
이 집안에서 얼마 뒤 바로 저 유명한 암살집단

시카리의 창설자가 나오기 때문이야.


삼사대에 걸쳐 오로지 반란을 업으로 삼은 독특한 집안이지ㅎㅎ

 

 

 

암튼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신이 메시아다!!라고

주장하고 다니던 이 갈릴리의 유다스가 남달랐던 건

바로 로마에 대한 저항에 본격적으로 '신앙"을

접목시켰다는 점이야.

 

그의 주장은 "우리는 선택받은 야훼신의 백성이고

이 땅은 야훼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다.

때문에 이민족을 모두 몰아내야한다!"
라는 거였지.

 

 

즉 자신들의 행동은 반란이 아니라 신의 뜻을

따르기 위한 투철한 신앙활동이며 신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거였어.

 

(재미 있는 건 이 유다스의 주장이 오늘날 이슬람의

성전주의자들의 주장과 똑같다는 거야.

게다가 유다스의 아들 손자들이 결국 '시카리'라는

암살집단을 만들어 테러를 자행하고 다녔다는 점까지도

흡사하지ㄷㄷ)

 

 


유다스의 이 주장은 안그래도 열성적이던

유대인들의 마음에 불을 치폈고 유다스는

이 기세를 이용해 세포리스를 기습점령하는데

성공했어.

 


세포리스는 갈릴리의 행정중심지였기에

병기와 식량도 많았거든.

 

게다가 당시 갈릴리를 포함한 유대왕국을 물려받은

헤롯대왕의 세 아들들이 하나같이 무능해준 덕분에

유다스의 반란은 기원전4년~기원후6년까지

10여년이나 이어질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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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빡친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유대지역을

로마의 직할지로 바꿔버렸고 로마군단을 투입해서

반란군을 모조리 진압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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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황제>

 

 

 

이 와중에 유다스의 본거지인 세포리스 역시

철저하게 파괴당하고 불살라져야했지.


수많은 사람들이 살육당했고 무려 2000명이

넘는 반란군이 십자가형을 당할 정도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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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반란이 진압된 얼마 후 헤롯대왕의

아들 '헤로데스 안티파스'가 갈릴리를 통치하기

위해 세포리스로 도착했지.

 

 

 

그렇게 세포리스 재건 사업이 시작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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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포리스는 철저히 로마식으로 설계되었어.
물론 외관뿐만 아니라 주민 구성 역시 로마식이었지.

 

로마제국 내의 다양한 인종들이 무역을 위해 이 곳으로
몰려들었고 세포리스는 다양한 인종,풍습,문화,종교의

박람회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번영했어.

 

그리고 왕이 사는 곳이니만큼 귀족과 부유층들도

너도나도 이주해왔고.

 

허나 이 휘황찬란한 번영의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안엔
인근 지역에서 일감을 찾아 흘러 들어 온 젊은 노동자들이

자리하고 있었어.

 

 

그들은 무려 10년동안이나 갈릴리 전역의 유대인들, 특히
젊은 남자들을 들끓게 만들었던 유다스의 목소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지.

 

 

야훼신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이 약속의 땅에

로마인들을 위해 로마식 도시를 세우다니!!

 

 

비록 십자가위에서 새떼에 반쯤 뜯어먹힌

2000여 구의 시신들에 대한 기억 역시 또렷했지만

그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불타고 있던 원한의

불씨를 꺼뜨릴 수는 없었지.

 

 

 

물론 그들의 분노가 단순히 신앙적인 이유

때문이었던 것 만은 아니야.

세포리스에 인구가 늘어날 수록 부유층들은

주변의 농장, 어장 가축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였고

주변 지역을 철저히 식량공급지로 삼아버렸지.

수요가 늘어난다고 해서 당시의 가난한 소농들이

권세높은 부유층들을 상대로 가격을 높여 받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의 빼앗기다시피 토지를

수탈당해야했던거야.

 

게다가 가뭄이라도 들면 당장의 끼니를 위해

부자들에게 빚을 져야했고 결국 터무니없는 이자

때문에 허덕이며 고생해야 했던 거지ㅠㅠ

 

 


맏아들인 예수가 농사가 아닌 노가다를 했어야 한

이유 역시 이런 상황 때문일 수도 있어.

 

뭐 분명한 건 당시 세포리스 인근의 다른 마을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 자신들의 것을 빼앗은 자들을 위한 집과

도시를 지어야 했던 가난한 갈릴리 노동자들

사이에 예수도 있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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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했듯 나사렛 마을은 세포리스에서

불과 하루거리밖에 떨어져있지 않았어.

갈릴리 전역을 10여년 간 휩쓸었던 유다스의

메시아운동 (유다스도 자신이 메시아라 했음)

중심지에 있었던 거지.

물론 저 당시의 예수는 1세~10세 정도의 로린이였지만

어쩌면 세포리스 인근에 세워진 2000개의 십자가 위에

나사렛 마을 출신 남자들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 남자들은 예수가 살던 집의 이웃들이었을 수도 있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찬란함으로 가득한 세포리스와

빈곤하고 적막한 나사렛을 매일매일 오가면서 성장기의

예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훗날 그의 설교 중 유독 부자에 대한 혹독한

비판과 비난,가난한 자들에 대한 무한한 긍휼과 자비가

두드러지는 이유를 이런 성장환경과 결부시켜 생각해

볼 수 있지.

 

 

어쨌든 이러한 경험들이 소년 예수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 것이 장차

인간세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아직 예수 자신도

모르고 있었어.

 

 

그 모든 것은 오직 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었지.

 

 

 

 

 

 

우리는 3편에서 알아보자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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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리스를 재건하고 수도로 삼은

헤로데스 안티파스는 성경에도 자주

나오는 인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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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로 세례요한을 죽이고, 끌려온 예수를

조롱한 후 본디오 빌라도에게 돌려보낸

바로 그 '헤롯'이지.

 

 

아마 소년시절의 예수도 그 또래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공공행사에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는

'자신들의 왕'을 보기 위해 종종 하던 일을 멈추고

몰래 광장으로 달려나갔을 거야.

 

자신과 동료들이 입고있는 넝마조각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저 눈이 부시도록

하얀 얼굴과 화려한  옷차림의 왕을 보고

예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분명한 건 이 후의 행보와 언행을 볼 때 예수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동경과

찬미로 가득한 눈으로 안티파스를 보진 않았다는 거야.

 

 

 

성경에서 예수는 헤롯안티파스를 '여우같은 자'라

힐난하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