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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1991년 설립된 단체로 역사를 바로세운다는 명목하에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것으로 유명

 

이들이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 전신이란 것으로는 구차하게 까지 않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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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1939년 『만주일보』의 보도를 인용하여 박정희가 일본 천황에게 혈서를 바쳤다는 사실을 최초로 주장

 

이것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파 논쟁이 불끓듯이 일어남. 기사는 아래와 같음.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만주국-편집자)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나라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피로 쓴 반지(半紙)가 봉입(封入)된 등기로 송부되어 관계자를 깊이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고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아무쪼록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만주신문』 1939.3.31. 7면)


좌좀들은 이에 물만난 고기처럼 박정희 대통령을 일제에 영혼을 판 악질 친일파로 매도하고 비난.

 

민족문제연구소는 복사본을 방송에서 공개하였고,  원본은 일본의 국회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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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본 결과 『만주일보』는 1908년에 폐간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짐

 

이것때문에 조작되었는 논란이 심화되자 이 비열한 새끼들이  혈서기사는 『만주일보』가 아니라

 

 『만주신문』이라고 말을 바꿈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9F12CC7F718E0FE29614BFDFFABFB84B5DB2&outKey=V1298c5a72a80ff69f02dacb9dc3074b7360c74ee3b530c478ae7acb9dc3074b7360c

 

 

 

 

이에 일부 보수 단체나 신문사, 커뮤니티 등에서 『만주신문』은 1935년 폐지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나도 여기 낚임)

 

실제『만주신문』은 1944년까지 존속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주장은 이미 효력을 상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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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순히 신문사 이름을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꽤나 오랜 기간동안 『만주일보』라는 표현을 사용했기에 이들의 주장은 이미 신뢰성을 상실함

 

 

 

덧붙여 혈서에 대해 또 하나 의심스러운 것은 1939년 2월 24일에 만주군관학교 합격자가 발표되었는데

 

왜 기사(3월 31일)는 한달 뒤에 박정희가 지원혈서를 썼냐는 정황상의 의문점이 남아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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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서 떡밥은 혈서의 진본이 발견되거나 직접 일본의 국립박물관에 가서 확인하지 않는한

 

뭐라고 함부로 결론내리기 힘듬.

 

 

 

 

 

 

웃긴 것은  이 민족문제연구소가 진짜 웃기는 단체인 것이 친일파 청산 역사 바로세우기를 주장하면서

 

해방이후 반민특위에도 처벌대상에도 없었던 박정희를 친일인명사전에 올려놓은 것.

 

 

당시 반민특위에서는 친일파를 '적극적 친일'과 '소극적 친일'로 구분해서 '적극적 친일'을 처벌하기 위해 법으로 규정함

 

(일제치하 자그마치 35년인데 소극적 친일까지 처벌대상으로 한다면 온국민을 다 들쑤시고 때려잡아야 할 판)

반민특위에서 '적극적 친일'을 규정한 기준은 아래와 같음

 

 

제4조 다음 호 각 호 중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5년 이하의 공민권을 정지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 수 있다.
1.습작한 자
2.중추원 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가 되었던 자
3.칙임관 이상의 관리가 되었던 자
4.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5.독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거나 그 단체의 수뇌 간부로 활동했던 자
6.군,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고등관 3등관 이상, 훈 5등급 이상)
7.비행기, 병기, 탄약 등 군수공업을 책임 경영한 자
8.도, 부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로서 일정에 아부하여 그 반민족적도 죄적이 되는 자
9.관공리가 되었던 자로서 그 직위를 악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
10. 일본 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 단체 본부의 수뇌간부로서 악질적인 지도적 행위를 한 자
11. 종교, 사회, 문화 , 경제 기타 각 부분에 있어서 민족적인 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본침략주의와 그 시책을 수행하는 데 협력하기 위하여 악질적인 반민족적인 언론, 저작과 기타 방법으로써 지도한 자
12. 개인으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일제에 아부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위의 조항에서 박정희는 하나도 해당하지 않으며, 실제로 반민특위 처벌대상에서 적용되지 않았음.


굳이 박정희를 친일파로 처벌하려고 한다면 4조에 6항이 해당되겠지.

 

그러나 저6항은 어디까지나 고등관 3등관 이상에만 해당(참고로 2등급이 도지사급임)되는 것이고

 

만주국에 군관으로 있었던 박정희는 계급이 소위이기 때문에 고작해야  8등급에 불과함.

 

 

 

그런데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면서 고등관부터는 모조리 친일이라고 규정함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6107.html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당시 일본군 소위는 ‘고등관’으로서 판사와 비슷한 등급”이라며 주장했음

 

 

세상에 아무리 전시 체제라 해도 어떻게 소위랑 판사랑 어떻게 동급이냐....?;;;;;;;;;;;;;;;;;;;;;

 

만약에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일제시대 공무원으로 일했던 사람들은 모조리 다 친일파고 전부 죽여야 할 판.

 

 

 

 

박정희를 친일파로 규정하자면 적극적 친일이 아니라 '소극적 친일'임

 

근데 그것은 민족 반역죄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것임.. 

 

 

 

이들은 역사를 바로세우는 단체가 아니라 그저 박정희를 친일파로 몰아서 죽이려고 작정한 단체임

 

과거를 현재의 관점에서 자신의 이익에 따라 마음대로 이용하고 조작하는 비열한 놈들

 

 

친일파라서 박정희를 까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박정희라서 까는 거임.

 

그것을 위해서 대한민국의 영웅을 친일파로 규정하여 역사의 죄인으로 만들어 놓음

 

 

아직도 많은 좌좀들이 이들에게 낚여 박정희 대통령을 혈서드립치면서

 

 친일파라고 함부로 욕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