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못배우고 상식 부족한 일게이들아
내가 오늘 친히 니들이 모르고 있거나 혹은 잘못알고 있던 상식에 대해 꼬집어 주려 한다.
바로 아름다운 우리문자, 한글 창제에 관한 상식이다.
(아름다운 한글)
한글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하자면 한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자와 창제일을 알고 있는 유일한 문자이다.
그리고 한글은 그 원리가 심히 과학적이고 사용이 용이하며 표현하지 못하는 소리가 없다.
사진은 한글이 세계문자올림픽에서 2연패를 한 모습이다.
한글은 이 세상 그 어느 문자보다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알려주고 싶은 상식은 한글 창제에 관한 상식이다.
흔히 한글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창제하였다.
혹은
세종대왕께서 지시하시어 집현전 학자들이 창제했다.
라고 알고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틀렸다.
조선왕록실록에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창제에 관여하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세종대왕께서 친히 한글을 창제하시었다는 기록만이 존재할 뿐이다.
놀랍지?
당시 조선의 엘리트들이 모두 모여있는 집현전을 놔두고 세종대왕께서 친히 한글을 창제하셨다니 말이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당시 조선의 지배계층은 양반이었고 그 양반들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던게 바로 한자다.
한자는 표의문자로 문자 하나하나의 뜻을 모두 알아야 쓸 수 있는 문자다.
따라서 배우는 데 오래걸리어 가난한 백성들은 한자를 배울 수가 없었다.
한자는 양반과 백성을 나누는 큰 장벽이었다.
이에 한글을 만들어 백성들이 너나할것 없이 문자를 쓰게 된다면 양반들의 권위가 추락하고 양반의 지배력이 상실되겠지?
이때문에 양반들이 백성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한글 창제에 반대했던 것이다.
물론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에 전혀 관여를 안한건 아니다.
집현전은 세종2년(1420) 세종이 궁궐안에 설치한 학문연구기관으로 왕에게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경연,세자를 교육하는 서연,도서 수집보관 및 이용, 학문 활동등을 하는 기관이었다.
세종은 이 집현전에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선발하여 배치하였고 이들은 세종의 총애를 받고 각종 특권을 얻으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대표적으로 정인지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최항 강희안 이개 이선로등이 있고 이들은 세종의 명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제작하였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인지 역으로 나온 박혁권씨)
정인지는 개새끼인게 나중에 세조가 권력잡고 집권할때 김종서 죽이고 단종죽이고 남이 제거하고 사육신 죽일때 관여하여 공신에 오른 인물이다.
나중일은 차치하고 이 정인지가 훈민정음 서문을 만들고 해례본 제작에 주도적인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훈민정음(즉 한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 역할)에 관여 한거지 한글 창제에 관여한 것은 아니다.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친히 발성을 연구하시어 직접 창제하시었다.
여기에 아들 문종과 딸 정의공주와 함께 매일 밤마다 소리를 연구하시고 발성기관의 모습을 보시어 만드시었다.
한글은 고대글자 모방설, 고전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나왔는데 모두 사실이 아니고 세종께서 발성기관의 모습을 따와 만드신 것이다.
세종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세종 25년(1443) 12월 3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