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6일, 오늘이다.
서해바다 차디찬 물속에 수장된 46 명의 젊은 꽃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바로 직전, 그들의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 그들의 사랑하는 연인과 문자를 주고받던 바다의 청춘들이
간다는 말 한마디 할 새도 없이 회오리바람 타고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아, 애통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바친다.
부용산(芙蓉山) 노래는 1974년, 박기동 씨가 24살 꽃 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누이의 주검을 전남 벌교의 부용산에 묻고 돌아와 쓴 제망매가(祭亡妹歌)인데 당시 목포 항도여중에서
함께 재직하던 <엄마야, 누나야>의 작곡가 안성현 씨가 중학교 제자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노래로 만들었고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와 어우러져 당대 애창곡이 되었지만, 무용가 최승희 등과 더불어 안성현 씨가 월북하자
이 노래는 공식적인 무대에서 사라졌다.
작곡가가 월북했다는 이유로, 호남의 빨치산들이 즐겨 불렀다는 이유로, 굳이 누가 금지하지도 않았건만,
쉬쉬하며 입으로 부르지 못하고 가슴으로만 구전된던 노래.
50년 넘게 숨죽이고 묻혀있던 노래가 연극인 김성옥 씨의 노력으로 세상에 나왔다.
연극배우 손숙 씨의 남편인 김성옥 씨는 이 노래의 탄생배경을 추적하고 목포에서 부용산 음악제를 개최하는 등
이 노래가 햇빛을 보게 한 일등공신이다. 김성옥 씨는 호주로 이민한 작시자 박기동 씨를 수소문 끝에 찾고 직접 찾아가
2절 가사를 제의하자, 박기동 씨가 이를 받아들여, 드디어 2000년 5월 29일 목포 부용산 음악회에서 최초로 부용산 2절이
공개되었다.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있으니' 이 대목에서 책상에 앉은 채 30분을 엉엉 울었다던 팔순의 노옹(老翁)은
그해 10월 벌교 부용산 시비 제막식 참석차 귀국하였으나, 2004년 향년 88세로 별세하였다.
회오리 바람타고 바다속으로 사라져간 46명의 젊은 장병들에게 이 부용산 노래를 바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