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짧은 임펙트 있게 역사썰을 쓴다. 뭐 해방후 친일파 청산을 하지 않은것을 가지고

이승만이 친일파와 결탁했다고 민족 반역자라는 개 잡썰을 써댄다. 그래 이승만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았다. 그는 관용을 베풀었고 반공국가에 참여하도록 독려를 했다 이것이 잘못된것인가?

그 어떤 신생 독립국가에서 식민지 잔재를 청산을 했단 말인가?


2차 보어전쟁에서 영국군으로 참전한 마하트마 간디 




이승만이 친일파라고 말하는 분탕빨갱이들이게 묻고 말하고 싶은것이 있다.

독도 실효지배는 친일파가 할짓인가? 이승만은 뼈쏙까지 반일이였으며 

또 아이젠하워가 미국까지 초청해서 한일관계를 개선할것을 의견개진을 했다.


이승만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는 아이젠 아워

 


이승만은 정색하며 " 생전에 그런일은 있을수 없다" 고 단언 했고 아이젠 아워는 빡쳐서 문밖으로 나가고

이승만은 그런 아이젠 아워를 보고 "저런 고얀 *이 있나"라고 일갈했다는 전설적인 썰을 일화를 남겼다.

이것이 친일파가 할짓이란 말인가? 항일 운동가 였지만 개선장군도 아니였으며 해방의 지분도 없던것을 

이해했던 이승만은 약 반세기를 식민지로 살아온 이들에게 관용을 보여준것은 매우 합당한 처사다.  



항일의 영웅 김구 센세 썰




중국 임시정부 인사들중 일부는 고압적이였으며 개선장군처럼 다녔다고 한다.

실제로 임시정부 환영 연회에서 임시정부 인사들과 조선내 민족 운동가들과의

대립은 유명한 일화이며 이일이 있은후 송진우는 암살 당했다. 


서대문 형무소 시절 송진우




김구는 환국후 죽을때까지 경교장(일제시대 죽첨장)을 사저로 사용했다. 

이 경교장은 당대 최대의 거부 최창학이 무상임대를 해주었으며 김구와

한독당에 재정적 후견인 역할을 했다. 


그럼 경교장을 애국지사 백범 김구에게 임대해준 최창학은 누구일까? 

평안북도 출신으로서 일제시대 광산개발을 통해서 거부가 된 조선인이다.  


호랑이 사냥도 하고 다녔던 최창학

 


최창학이 일제시대 무엇을 했는지 간략하게 언급 해볼까?


1937년 7월 조선군사령부 애국부에 비행기 1대 헌납 (동아일보)

1938년 2월 애국비행기 명명식 참석 (동아일보)
1939년 2월 경성부 육군 지원자 후원회 이사 

1939년 6월 국민 정신총동원 운동 위원회 평의원

1940년 6월 시국 운동비 5만원 헌납 

1941년 7월 300만원 기부 (이중 국방헌금 40만원 헌납 )  매일신보[每日申報] 

나라에 헌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으며~~~~~ (기사내용) 





1945년 환국지사후원회의 돈 900백만원을 부정한돈으로 보고 거부했다가 받은건 이해한다쳐도

일제시대 거부 최창학의 행적을 알고 있음에도 후원을 받은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반민특위때 최창학의 친일파 군상에 이름이 올랐지만 조사는 안받았지 말입니다.

누구는 포승줄에 묶여서 질질 끌려다니고 인증샷까지 박혀서 후세에 친일파로  ㄱ ㅅ ㄲ

낙인 찍히며 잘근잘근 씹히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간과하지 말아야할 사실은 해방후부터 한국전쟁 지금까지 친일청산을 

일관되게 외치는 부류들은 놀랍게도 빨갱이들이란 사실이다. 


김승학의 친일파 군상에 등재된 최창학 

1. 10만원 이상 금품헌납자

昭15.6.3 / 50,000 / 시국운동비 / 崔昌學 / 竹添町 1丁目 / 軍部


반민특위 조사기록에는 없음 (ㅊ)

http://db.history.go.kr/item/level.do;jsessionid=A33969E26CAB9BE8D922EA146CBEA06C?itemId=an


요약 - 

친일청산은 시대 정의가 아니였다.

친일청산은 정치적인 의도에서 시작했다고 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