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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유광석


예명: 하나오카 짓타(花岡じった)





AV 3대 남자배우 중 한명으로, 워낙 테크닉이 좋아서 아키호 요시자와 등 A급 배우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대 배우 중 한명으로 알려져있다.





아버지는 조총련계로서 김일성의 열렬한 추종자였지만, 유광석은 북한 체제를 매우 혐오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부분의 조총련계 재일교포 2세, 3세들은 일본 국적을 택하거나 조선 국적(즉, 무국적)을 유지하지만, 유광석은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현재 공식적인 국적은 한국인이다.)



초창기에는 한국인에 대한 차별로 인해 주로 아마추어급이나 마이너 레이블 위주로 활동했으나 완벽한 테크닉과 연기력으로 현재 ideapocket, s1, sod, moodyz, alice japan, max-a, maxing 등의 메이저 레이블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으며, 고도의 연기력을 요구하는 대형 레이블 attackers의 남자 간판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랑스러운 한국인 유광석은 활동중이며, 유광석을 거쳐간 AV배우만 3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수많은 일본녀들을 자신만의 위안부로 삼고 있는 유광석의 항일운동은 오늘날 본토의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다.






단 그가 2000년대 후반 들어 단골로 맡고 있는 건 '야수' 캐릭터다. 양복을 입은 샐러리맨이지만 흠모하는 그녀의 출입을


지켜보다가 침입해 겁탈하는 그런 캐릭터다 (몇 일본인 배우들도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그들이 보이는 야비함이


없다는게 광석의 장점이다). 이를 한국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반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점점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또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확실히 일본의 초식남 문제 때문이라 하겠다.




즉, 부드러운 매너에 심지어 화장과 눈썹 손질까지 하며 오는 여자나 기다리고 가는 여자는 안 잡는 밍밍한 일본의


요즘 남자 대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충실한 육식남, 짐승남에 여성들이 심지어 남성들도 끌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남성들은 자신들이 도저히 그러지 못 하는 모습을 작품에서 보여주는 광석에게 경탄과 함께 존경마저 표하고 있다.




이미 몇 AV감독들이, '꽃미남류의 요즘 남배우들이 자아가 강하고 나르시스트여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아쉬운 반면,


광석만은 자신의 욕구를 강렬히 표현한다'고 칭찬하며 같이 찍고 싶은 최고의 배우로 꼽고 있다.




광석을 업계에서 전설적 인물로 만든건그 왕성한 성욕인데 여러 재미있는 일화가 존재한다. 제일 대단한건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로 허벅지뼈에 금이 가 입원한 그가 금단을 견디지 못하고 촬영을 자청해 강행 했다는 일화이다. 이런 일화는 섹스를


직업으로 두어 정말 최선을 다하는 그것은 오히려 어려워진 남배우들 사이에서 존경을 끌어낼 정도이다.




이 외에 감독에게 자신이 원하는 섹스를 하게 해 달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게 그의 특징이며


촬영이 끝난 후 사적인 섹스를 요청해 가지기도 한다고 한다. 팬들은 그의 강렬한 야수성에 더해 구체적으론 강한 사출력과


가슴털을 매력 요소로 꼽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일본이 계속 초식화되어 가는 한 그 반작용으로 육식남에 대한 선호는 늘어날 것이며 광석을 대신할 배우가


나타나지 않는 한, (또 그의 체력이 허락하는 한) 그는 일본 AV계의 대표주자로 계속 활약할 것으로 본다. 어쩌면 육식남 중년,


또는 육식남 할아버지라는 이전에 없던 캐릭터를 창조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터뷰 동영상 등을 통해 드러난 실제 성격은


매우 매너 좋고 부드러운 사람이다. 그리고 제임스 딘처럼 다섯살 남자아이같은 순진함이 인상적인 친구이다.




이제 광석 개인의, 읽는 이를 다소는 우울하게 할 수도 있는 개인사를 소개한다.




올해 40초반인 것으로 알려진 유광석은 도쿄 인근 사이타마 출신으로 많은 형제들 가운데 그리 유복하지는 않은 조총련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포 2세로 열성적인 김일성 추종자이며 집에서는 가정폭력을 흔히 일삼는 폭력가장 이었다고


광석은 회고한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에 대해서 광석은 일본사회에 충격을 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피와 뼈'의 가장의 모습


그것이었다고 말할 정도이다. (가정폭력이라는 것, 영화 '똥파리'를 본 분은 우울하게 다가올 것이다.)




광석은 이런 아버지에 대한 작은 첫 반항을 국적을 본인 의지하에 택할 수 있게 된 시기에 대한민국 국적을 택함으로써


실행한다. 그 후 북한을 열렬히 찬양하는 아버지와 관계가 좋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다른 가족이 봉양을 거부하는


아버지를 AV배우 생활을 하며 번 돈으로 모시며 살고 있다.




이른바 '조선적인 것'은 후진적이라는 인상을 가진 교포 아동으로서 그는 가장 일본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취향을 갖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일본의 모든게 허용되는 성문화였다. 학교 졸업 후 트럭 운전사를 하게 된 그는 번 돈을 자주 도쿄 시내의


코스프레 클럽에서 쓰게 되는데 거기서 평생의 직업을 찾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AV관계자와 인연을 맺게 되어 그의 권유로


곧 남배우로 데뷔하게 된 것이다. 예명은 TV쇼에서 유명했던 캐릭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며 예명을 제외하고는


일본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데뷔 직후의 필모그래피는 다른 남우와 비교해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 말에 일본발의 해외전용 무수정


포르노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이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일본 포르노와 달리 남배우와 여배우가


모두 야성적인 연기를 펼친 작품들을 만든 프로덕션의 하나인 V&R에서 그는 '헬리콥터맨' 미키와 더블샷을 찍는 영광을 얻었다.


'헬리콥터맨' 미키는 그의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연출과 캐릭터로 은퇴한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어떤 일본의 여배우보다


월등한 검색회수를 구글에서 자랑하고 있는 전설적인 남배우이다. 좋은 스승 밑에 좋은 제자가 있다고 본능에 충실할 것을


온몸으로 보인 미키와의 만남은 적잖이 광석에게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된다.




좀 더 광석 개인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는 정신적으로 일본인이나 한국어는 전혀 못 한다. 할 줄 안다. 일본 스타를 숭배하고


후지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자신의 일본스러운 취향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등의 모습으로 살짝 한국계의 민족의식을


예상한 일본인이마저 실망감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나 뭐든 일본적인게 더 낫다고 보는 그런 그의 한일관은 자라면서


본 부모세대의 전근대성 특히 폭력성으로 환멸을 준 아버지의 영향이 형성한 것이며 세계 교포사회에서 다반사이므로


이해의 여지가 없지않다.




아무튼 체력이 허락하는 한 광석은 일본 최고의 배우로서의 위치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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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앞에서 원정녀니 그딴 개소리하는거는 

 

건희형앞에서 동녀 슈퍼마켓사장이깝치는거지